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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비군 훈련과 불임시술
04/23/18  

한국에서 예비군 훈련을 받은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기억할 것이다. 예비군 훈련장에서 불임시술을 권장하던 시절이 있었다. 예비군 훈련과 불임시술이 무슨 관계가 있는지 모르겠으나 늘, 그것도 첫 시간에 불임시술 홍보를 하고 원하는 사람들을 한쪽으로 나오라고 했다. 꽤 많은 사람들이 지원했다. 아들 딸, 둘만 낳아 잘 기르자는 국가 시책에 호응하면서 훈련도 면제 받는 특혜가 주어지니 많은 사람들이 지원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지금 생각하면 말도 안 되는 이야기이지만 실제 있었던 일이다. 어쩌면 이글을 읽는 분 가운데에 그때 예비군 훈련장에서 시술을 받은 분이 있을지도 모른다.

 

불과 30~40년 전에 둘만 낳아 잘 기르자고 외치던, 예비군 훈련장에서 불임시술까지 무료로 해주던 나라에서 요즈음은 아이를 많이 낳자고 난리 법석을 떨고 있다. 일부 시도 지자체에서는 아이를 낳을 때마다 백여만원씩 현금을 주기도 한다. 인구가 심각하게 줄고 있는 가평군, 연평군, 양평군 등에서는 셋째, 넷째를 낳을 경우 1,000만 원~2,000만 원을 준다.

  

대한민국 정부도 출산율 높이는 것을 역점사업으로 펼치고 있다. 2005년 출산, 양육에 유리한 환경조성 및 고령사회 대응기반 구축이라는 목표에 따라 19조 7,000억 원을 투입해 영유아 보육, 교육비 지원, 방과후 학교 확충, 육아인프라 구축에 나섰다. 2010년에는 점진적 출산율 회복에 초점을 맞춰 결혼과 출산, 양육부담 경감과 일·가정양립 일상화 등에 60조 5,000억 원을 투입했다.

  

그러나 이런 대책에도 불구하고 세계 최저 수준의 출산율을 벗어나지 못하자 기본계획의 패러다임을 전환하기로 했다. 청년층의 결혼을 유도하고 안심하고 아이를 낳고 키울 수 있는 환경 조성을 위해서는 그동안 미시적, 현상적 접근에서 탈피해 통합적이고 구조적 접근이 필요하다는 지적에 따라 교육개혁과 청년일자리 대책, 주거 대책 등을 포함시켰다. 2016년 투입된 예산만 21조 4,173억 원이고 향후 5년간 108조 4,000억 원이 투입될 예정이다.

  

문제는 여전히 정책 목표가 일관되지 못하고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점이다. 예컨대 고령화 대응책에 언급된 ‘사회통합적 외국인력 활용’이나‘중장기 이민정책 수립’등은 저출산 해소에 필요한 양질의 일자리를 줄여 저출산을 되레 가중시킬 수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애 많이 낳으라고 정부가 북치고 언론이 춤춘다고 애를 많이 낳는 것은 아니다. 출산율을 높이기 위해 그렇게 많은 비용을 들여가면서 힘쓰지 말고 가정을 이루고 사는 젊은 부부들이 편하게 일하고 편하게 아이를 낳아 기를 수 있는 풍토를 조성해 줘야 한다.

  

그런데 요람에서 무덤까지 별 걱정 없이 편안하게 살 수 있는 나라들에서 출산율이 높은가 하면 그렇지도 않다. 재미있는 것은 출산율이 높은 나라들은 하나 같이 어렵고 힘든 생활환경에 처해 있는 나라들이다. 즉 출산율이 높은 나라들은 다 저개발국가, 경제적 빈국이며 심지어 내란으로 소요가 그치지 않는 나라이다.

  

좋은 환경이 애를 많이 낳을 수 있는 환경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이는 출산율 증가에 국가의 정책이나 노력이 큰 효과를 거두지 못한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막대한 돈을 들여 출산율 높이기에 몰두할 것이 아니라 그 비용을 다른 복지비용으로 전용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중학교 1학년 때 미국에 온 필자의 큰딸은 애를 넷이나  낳았다. 그렇다고 미국 정부로부터 지원금을 받은 적도 없다. 물론 아빠인 필자가 애 많이 낳아야 한다고 교육시킨 적도, 아이를 많이 낳았다고 도와준 적도 없다.

  

이런 것들로 미루어 볼 때 국가가 나서서 인구감소를 걱정하고 이에 대한 대책을 수립하는 것은 필요한 일이지만 출산율을 높이는 일에 국가가 앞장서 정책을 수립하고, 많은 예산을 투입하면서 실효성도 없는 일에 안감힘을 쓸 필요는 없어 보인다. 국민이 평안하게 잘 사는 여건을 만들어주는 것이 더 시급하다.

  

출산율 감소의 한 요인으로 학력이 높고 경제적으로 자리 잡은 여성들이 혼인을 꺼리고, 설사 혼인을 하더라도 아이 낳기를 기피하는 현상이 지목되고 있다. 이는 기혼여성에게 불이익이 주어지는 직장이나 사회 문화 때문이다. 그러므로 남녀가 동등하게 대우 받는 직장, 사회 풍토가 시급히 조성되어야 한다.

  

우스갯소리가 될지 모르지만 과거에 예비군 훈련장에서 불임시술을 해주면서 훈련을 면제해주었던 것처럼 훈련을 면제해주면서 애 많이 낳는 방법(출산율을 높이기 위한 방법)을 교육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지 모르겠다. 아니면 둘 이상 낳은 사람은 예비군 훈련을 평생 면제해주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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