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방문 3박4일
04/23/18  

3박 4일 일정으로 급히 한국에 다녀왔다. 이틀은 포항에서 잤고, 하루는 유성에서 잤다. 김해공항에 마중 나온 친구의 안내로 부산에서의 일을 마치고 은행을 찾았다. 금요일 4시가 조금 넘은 시간, 고객들이 드나드는 문을 닫고, 은행원들이 잔무를 처리하고 있을 시간이었다. 은행 일을 월요일에 할 생각으로 돌아서려는 데 친구가 뒷문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경비원이 문을 열었다. 오늘 처리해야 할 급한 일이 있으니 들여보내 달라고 했다. 일이 끝났다며 월요일 9시에 문을 여니 그 이후에 오라고 했다. 당연한 처사였다. 그러나 친구는 봐줄 수도 있는데 그런다며 섭섭해 하는 눈치였다.

  

일요일 저녁, 세종시에서 일을 마치고 하루 저녁 묵을 숙소를 찾았으나 마땅한 곳이 없어 유성으로 갔다. 택시 기사가 유성호텔 앞에 내려주었다. 방에 짐을 갖다 놓고 부지런히 대중탕으로 갔다. 시간을 보니 8시 50분이었다. 10시에 문을 닫으니 그 전에 나와야 한다고 데스크 직원이 말했다. 문 닫을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지만 목욕탕에는 사람들이 많았다. 목욕탕을 나오며 몇 시에 문을 여느냐고 물으니 오전 6시라고 대답했다.

  

다음날 6시가 되기 10분 전에 목욕탕에 도착했다. 요금을 지불하고 탕에 들어갔다가 깜짝 놀랐다. 분명 6시가 되기 전인데도 수많은 사람들이 북적대고 있었다. 6시에 문을 연다면서 그 이전에 온 사람들을 오는 대로 다 들여보낸 것이었다.

  

목욕탕에서 나와 아침 식사를 하고 은행을 향했다. 은행에 도착하니 8시 55분이었다. 일찍 온 사람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정확하게 9시에 문이 열렸다. 기다리고 있던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 들어가서 번호표를 뽑았다. 그런데 이미 창구 직원들 앞에 두 사람이 앉아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문을 열기도 전에 들어와서 일을 보고 있었던 것이다. 누군가가 혼잣말로 말했다“. 아니 지금 문 열었는데 벌써 들어와 앉아 있는 사람들은 뭐냐?”그러나 아무도 그 말에 응대하지 않았다. 맞장구 치는 사람도 없었다. 그저 뽑아 든 번호표를 보고 자기 차례를 기다릴 뿐이었다. 난 5번이었다. 문 열기 전에 들어와 있던 사람들을 눈여겨보았다. 두 사람 모두 서류정리가 끝났는지 007가방에 현금을 잔뜩 넣더니 앞서
거니 뒤서거니 자리를 떠났다.

  

은행과 거래하는 회사의 직원이 사전에 은행 측에 얘기해서 미리 들어와 업무를 보고 돌아가는 것이라고 짐작했다. 단골 고객들을 위해 편리를 봐주는 것이니까 얼마든지 가능한 한 일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내눈에는 이상하게 보였다. 만일 그렇게 편리를 봐주며 일을 하려면 일반 고객들의 창구를 이용하지 않고 다른 방법으로도 얼마든지 할 수 있지 않은가.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고객 한 사람이 일을 마치고 떠났다. 다음은 4번 차례였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창구 직원과 눈인사를 하더니 그 창구 앞에 가서 앉았다. 그는 번호표도 뽑지 않았다. 아마도 전화로 사전에 약속이 되어 있었던 모양이다. 이번에도 007 가방에 현금을 넣어 나갔다. 출발하면서 전화를 해서 바로 창구로 가서 통장 정리만 하고 현금을 찾아 가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은행은 큰 고객의 편의를 위해 최대한의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었다. 그들은 번호표를 뽑고 차례를 기다릴 필요도, 영업시간을 지킬 필요도 없었다. 번호표를 들고 차례를 기다리는 사람들의 마음을 은행 측은 헤아리려고 하지 않았다. 아울러 사람들도 그런 은행 측의 행위를 당연하다는 듯이 받아들이며 항의 한 마디 하지 않았다. 가진 것 없는 서민들은 줄 서서 차례를 기다려 볼 일을 보고, 있는 자 가진 자들의 시간은 소중히 대접받는 세상이 바로 거기 있었다.

  

있는 자, 가진 자들은 그렇지 못한 사람들에 비해 특별한 혜택을 누리는 사회.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는 약속한 영업시간이 아니더라도 더 일찍, 혹은 늦게까지라도 문을 열어주는 불편한 현실. 슬프고 안타깝지만 우리는 살아가면서 그런 일을 경험하게 될 때가 있다. 하지만 그런 일들이 관행이라고, 늘 있는 일이라고 눈감고 침묵한다면 그 사회는 더 이상의 발전을 기대하기 힘들다. 짧은 한국 방문 기간 동안 경험했던 모습들이 곧 한국 사회 전체의 모습을 대변한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그런 부조리를 경험하고도 아무 말 하지 않는 혹은 못 하는 사람들의 모습은 절망적으로 느껴졌다.

 

세계 11위의 경제 대국, 5천 년의 찬란한 문화 유산, 정치 민주화를 이룬 나라. 그 어떤 말로 치장하더라도 일상에서 느끼는 부조리들이 산재해 있다면 그 화려함은 그저 껍데기에 불과한 것이다. 국민들은 껍데기로 위로를 받을 수 있을지 몰라도 진정한 행복을 맛볼 수는 없다. 작은 부조리를 고치려는 사회 구성원들의 노력, 그리고 그런 노력이 당연하게 여겨지는 사회라야 행복한 미래를 기약할 수 있다. 바로 그런 나라가 진정한 선진국이요 복지국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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