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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륙 횡단 여행이 결정되었다
04/23/18  

막내아들이 농구팀 훈련에 참여해야 한다며 크리스마스 날 밤 집을 떠났다.

 

아들을 공항에 내려주고 돌아서는데 측은한 마음이 들었다. 남들이 즐기며 쉬는 연말연시에 운동 연습하러 떠나는 아들을 보면서 마음이 편안한 아빠는 없을 거다. 그러나 본인이 좋아하는 운동을 하니까 즐기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돌아간 아들로부터 해가 바뀌기 전날 연락이 왔다. 학교생활이 너무 힘들다며 LA에 있는 학교로 편입을 하겠다고 했다. 1월 3일이 접수 마감이라 아버지와 의논하는 거라고 했다. 길게 얘기할 필요가 없지 않은가. 본인이 힘들다는데. 일단 무조건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했다. 며칠 후 아들은 원서를 접수시켰다고 알려왔다.

 

집에서 친구들과 신나게 놀다가 텅 빈 학교로 돌아가 아무도 없는 기숙사방에서 자면서 하루 종일 농구연습과 게임을 하며 지내다보니 힘들고 외로운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난 1년 반을 잘 적응한 터라 다시 학교가 시작되면 괜찮아 질 거라고 믿었다.

 

이미 지난 가을에 2017년 2월 초 아들을 방문하기위해 항공권을 끊어 놓았었다. 일주일 머물면서 농구경기도 보고 아들과 잠시 지내도록 일정이 잡혀 있었기에 그때 좀 더 깊이 있는 대화를 하기로 마음먹었다.

 

다시 만난 아들은 여러 가지로 힘들어 하고 있었다. 농구 훈련도, 일주일에 두세 번씩 경기하는 것도 힘들고, 공부도 힘들다고 자기 고충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입학하면서 함께 기숙사 생활을 했던 두 백인 학생들과는 2학년 올라오면서 헤어졌다. 한국에서 유학 온 학생과 그 동안 생활해왔는데 국방의 의무를 위해 한국으로 돌아갔다며 지금은 뉴욕에서 태어난 중국계 학생과 함께 생활하고 있었다. 백인이 대다수인 학교에서 백인들과 어울리지 못하는 눈치였다. 문화적 적응을 못해 힘들어 하는 것으로 보였다. 심각하다고 판단했다.

 

며칠 동안 서로 눈치만 보고 있었다. 떠나기 이틀 전에 아들에게 왜 편입하려고 하는가 물었다. 아들은 초중고를 아시안들이 대다수인 학교에 다녔는데 여긴 아시안이 거의 없는 대다수가 백인인 학교다 보니까 적응이 힘들다는 애길 하고 있었다. 그리고 농구하면서 공부하기도 너무 힘들다고 했다. 아들에게 단호하게 말했다“. 운동을 하기 싫으면 그만 두면 돼. 그러나 백인들과 어울리기 힘들어서 아시안이 많은 학교로 옮긴다는 것은 도피야. 도망가는 거야. 그럼 넌 영원히 도망가는 삶을 살게 될 거야.”아들은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그리고 너무 추워서 걸어 다니기 힘드니까 차를 한 대 사자고 했다. 다음날 우리는 중고차를 한 대 샀다. 아들은 자동차가 생겼다고 좋아했다.

 

이민자의 자녀로 살아가면서 자기 정체성에 대한 혼란과 소수 인종이 겪어야 하는 고통은 피할 수 없는 숙명인지도 모른다. 이런 혼란과 고통은 결국 같은 민족끼리, 혹은 동일 인종끼리 어울리도록 만든다. 하지만 이 땅에서 당당하게 살아가려면 이를 극복해야 할 것이다. 끼리끼리 어울려 살지 말고, 사회의 일원임을 자각하고 구성원 모두와 어울려 사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아들에게서 연락이 왔다. 다음 시즌부터 농구를 그만두겠다고 코치에게 말했고, 다음 학기는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공부하기로 했다고 알려왔다. 그러면서 기말고사가 끝나자마자 집으로 와서 지내다가 8월 말에 스웨덴으로 가겠다고 했다. 가만히 생각하니 자동차가 문제다. 아들이 없는 동안 차를 어디에 둔단 말인가?

 

자동차를 이리 갖고 오면 스웨덴으로 떠나기 전까지 아들이 타고 다닐 수도 있지 않은가?“아빠 생각에 자동차를 친구 집에 세워두기보다는 이쪽으로 타고 오는 게 좋을 것 같다. 아빠가 그리로 가서 너와 같이 타고 오면 어떻겠느냐?”

 

“아빠, 헌차로 그럴 수가 있을까?”“일단 정비업체에 가서 타이어를 네 짝 다 갈고, 전체적으로 이상이 없는지 점검해봐라. 그 다음에 아빠가 가서 다시 한 번 점검하지.”

 

이렇게 해서 대륙 횡단 여행이 결정되었다. 아들과 함께 동부에서 서부로 오고 아들이 스웨덴에서 돌아온 다음에 다시 서부에서 동부로 간다.

 

이제 아들의 농구 경기를 더 이상 볼 수 없게 되었지만 아들이 고민하고 있던 문제의 해결 방법을 찾은 듯이 보여 다행이다. 여행 기간 중에 좀 더 많은 대화를 하며 아들의 세계를 좀 더 깊숙이 들여다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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