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등(equality)과 형평(equity)
04/23/18  
아들과 함께 Maine주 Brunswick에서 출발해 LA까지 미국 횡단 여행 중에 있다.
 
 
아들과 24시간을 붙어 있기는 처음이다. 떠나기 전에 아들에게 전화로 우리가 함께 여행을 시작하기 전에 서로 잘 모르는 부분들에 대해 이야기를 하자고 하니 우리가 서로 모르는 것이 무엇이 있냐며 아빠의 얘기를 한 마디로 묵살했다. 하긴 모르는 부분이 없는 것 같기도 했다.
 
 
모처럼 아들과 장시간 대화할 수 있었다. 아들은 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하고 있지만 다니는 대학이 리버럴아트스쿨이라 인문과학 분야에 대해서 필수 교양과목으로 지정된 여러 과목을 수강해야 했다. 그동안 인류학, 교육학, 환경학 등을 수강했으며, 우리의 대화는 그 강좌의 내용과 무관하지 않았다. 대화는 미국에서의 평등(equality)과 형평(equity)에 관한 것으로 시작됐다. 아들은 백인 가정에서 태어난 사람과 흑인 가정에서 태어난 사람은 결코 평등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리고 학업과 직업을 선택할 때 얻을 수 있는 정보의 차이를 그 이유로 들었다. 그러면서 백인 우월주의자들이 태생적으로 생길 수밖에 없는 미국의 여건을 이해한다고 했다.
 
 
미국에서 태어나 자란 아들이 백인과 흑인(혹은 다른 유색인종)이 태생적으로 평등할 수 없다는 말을 하고 있는 것에 조금 놀랐다. 이민 1세들처럼 문화적, 언어적 차이를 느꼈을 리도 없고 지금까지 온전히 미국 사회에서만 살아 오면서 자신이 차별을 받았다고 말한 적도없어 의외라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그가 그렇게 말한 것은 분명 그렇게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무엇이 그런 생각이 들도록 했을까.
 
 
미국에는 차별 철폐 조처라는 정책이 있다. 이는 정치적으로, 사회적으로 인종이나 피부색, 성별이 다르다는 이유로 차별 받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며, 누구나 자신의 권리를 존중받고 보장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처음이 정책이 태동했을 때에는 흑인에 대한 멸시와 차별을 없애고 인간으로서의 자유와 평등의 권리를 보장한다는 것을 의미했지만, 점점 여성에게까지 확대 적용됐다. 이 정책은 1800년대 인권법이 제정되면서 그 법적 효력을 갖게 되었으며, 미국 사회에 만연해 온 백인 우월주의, 남성 우월주의에서 비롯하는 인종 차별, 성 차별을 견제하며 유색인, 소수민족, 여성의 고용과 교육 기회의 균등을 장려하고 이들의 사회 진출을 촉진하는 법적장치가 되어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백인과 유색인종 간에 눈에 보이지 않는, 혹은 가끔은 아주 노골적인 차별이 엄연히 존재하는 것이 사실이다.
 
 
실제로 많은 연구들에서 백인과 유색인종 간에 취업률, 대학 졸업률, 수입 등에 많은 격차가 있고, 이는 유색인종에 대한 차별에서 기인한다는 사실이 밝혀지기도 했다.
 
 
미국의 인권자유연맹이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흑인의 실업률은 백인 실업률의 두 배에 달하며, 가족 일인 기준 소득도 백인의 소득이 흑인이나 라틴계 사람들의 소득보다 훨씬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직업의 유형도 마찬가지이다. 흑인들은 주로 단순 노동에 종사하고 있는 반면 백인들의 전문직 종사 비율은 흑인에 비해 월등히 높았다. 또 같은 수준의 교육을 받았다고 가정했을 때, 유색인의 임금 수준은 백인의 그것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았다. 특히 흑인 여성은 인종차별로 인해 가장 많은 불이익을 당하는 집단이었으며, 그들의 소득 수준은 모든 인종을 통틀어 가장 낮았다.
 
 
아들이 이런 보고서를 읽었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지금 대학 2학년인 그가 미국에서의 평등과 형평에 관해 이야기하며 선천적으로 백인과 유색인종간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고 말해야 할 만큼 미국 사회가 가지고 있는 인종 간 차별의 부조리를 직·간접적으로 겪었을 것이 분명하다. 그가 거의 백인학생들이 재학하고 있는 학교에서 생활하는 것에 힘들어 했던 이유도 바
로 그래서일 것이다.
 
 
인종차별을 금지하는 정책적, 법적 규정에도 불구하고 시도 때도 없이 불거지는 인종차별로 인한 갈등이 봉합될 날이 언제일지 알 수 없어 마음이 막막하다. 그리고 이런 마음은 아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길 위에서 보낸 하루가 저물어가고 있었다. 아들이 잡고 있던 운전대를 넘겨 받았다. 우리는 메사추세츠주의 Lee라는 작은 마을에서 하룻밤 쉬었다 가기로 했다.
 
 
식사를 마친 후 샤워를 하고 바로 취침했다. 아들은 19일까지 제출할 리포트를 쓴다며 책상에 앉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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