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장전입
04/23/18  

청문회에서 이낙연 국무총리 후보자 부인의 위장전입이 밝혀졌다. 이에 야당의 반발이 거세지자 대통령 비서 실장이“국민 눈높이에 미치지 못해 죄송하다.”며“선거 캠페인과 국정운영이라는 무게가 같을 수 없다는 말씀을 드리고 양해를 구한다.”고 사과했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도“청와대의 책임 있는 사과와 고백은 미래를 위한 인선 기준을 잡자는 것이다. 야당도 문재인 정부의 자성에 화답하는 넉넉하고 품격 있는 정치를 기대한다.”며 협조를 요청했지만 야당의 반발은 수그러들지 않았다. 이런 와중에 강경화 외교부 장관 후보자,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후보자 역시 위장전입 문제가 불거지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후보 시절‘5대 비리(병역면탈·부동산 투기·탈세·위장전입·논문표절) 공직 배제’원칙을 주장했다.

 

 

위의 다섯 가지 비리는 인사 청문회가 열릴 때마다 후보자의 자격을 따지는 단골 메뉴로 등장했다. 이로 인해 낙마된 사람이 하나 둘이 아니다. 오죽했으면 대통령후보자가 5대 비리 공직 배제 원칙을 선거 공약으로 주장했겠는가. 그러나 후보자에서 대통령으로 신분이 바뀐 뒤에는‘선거 캠페인과 국정운영’이 일관적으로 같을 수 없다며 국민에게 사과하고 양해를 바라는 모습을 보면서 안타까운 마음을 지울 수 없다. 전임 대통령들과 다른 점이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굳이 다른 점을 찾자면 반대를 해도 무조건 임명장을 수여하고 강행했던 전임자와 달리 양해를 구하는 점 정도라고나 할까.

 

 

인사 청문회 때마다 문제가 되는 이런 모습은 한국 사회의 단면을 여실히 드러내는 것이다. 자식을 군대에 보내지 않으려는 부모들의 마음이 병역면탈을 부추기고, 또 자식을 소위 명문이라고 불리는 학교에 보내기 위해 위장전입을 하고, 재산 증식을 위해 부동산 투자와 탈세를 한다. 그리고 논문을 표절하면서까지 학력을 높이기 위해 안간힘을 써야 하는 것이 한국 사회의 현실인 것이다.


위장전입이란, 거주지를 실제로 옮기지 않고 주민등록법상의 주소만 옮기는 것을 말한다. 자녀를 좋은 학군의 학교에 입학을 시키고 싶거나 부동산 취득을 통해 이득을 얻으려는 경우, 또는 선거법과 관련해서 요건을 충족시키기 위해 이용하는 경우가 많다.

 

 

자식을 좋은 환경에서 잘 키우려는 것은 시대나 지역을 불문하고 모든 부모들의 마음이다. 그래서 위장전입을 해서라도 내 자식이 남의 자식보다 더 좋은 환경에서 더 나은 교육을 받게 하려는 것이다.

 

 

필자의 부모는 수유리에 살면서 당시 명문이라는 혜화초등학교로 전학시키기 위해 명륜동 4가에 있는 친구집으로 거주지를 옮겼다. 그러나 그 지역은 혜화가 아니라 창경에 해당되는 지역이었다. 초등학교 4학년부터 수유리에서 종로구 이화동에 있는 창경초등학교까지 매일 통학을 해야 했다. 아침 제법 먼 거리를 걸어 나와 만원 버스에 시달리며 통학해야 했으니 큰 고통이었다.

 

 

그렇게 해서라도 좋은 학교에 보내려는 부모의 마음을 이해할 나이가 되었지만 내 아이들이 학교에 다닐 무렵 나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굳이 좋은 학교를 찾지 않았고, 동네 학교에 보냈다. 중고등학교도 거주지 내의 학교에 다니다가 미국으로 왔다.

 

 

미국에도 엄연히 학군이 있다. 미국에서 태어난 두 아이들도 동네 학교에 다녔으나 고등학교에 진학할 때, 자신들이 선택하도록 했다. 해당 학군의 학교에 다닐 수도 있고, 시험을 치른 뒤에 합격하면 타지역의 학교에 갈 수도 있었다. 두 아이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고등학교에 진학해서 졸업을 했고, 대학에 진학했다.

 

 

한국도 학군제를 종전처럼 운영하면서 타지역에 거주하는 학생들이 진학할 수 있도록 제도적 장치를 한다면 어떨까 생각했다. 그러나 한 학교로 우수한 학생들이 모여들게 되면 대한민국이 국가적인 차원에서 펼치는 평준화 정책에 어긋날 수 있다.

 

 

때문에 지금의 제도에서는 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사람들이 모여 사는 지역의 학교들의 교육환경이 좋아질 수밖에 없으며 이로 인해 위장전입의 문제는 끊임없이 계속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현행제도를 그대로 유지하는 한 위장전입의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 근본적인 제도의 개선이 필요하다. 알면서도 선뜩 나서지 못하는 것은 그 어떤 제도도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지 않기 때문이 아닐까.

 

 

개인의 우열을 가리고 학교의 서열을 정하려는 한국적인 풍토가 없어지지 않는 한 영원히 안고 가야 할 문제이다.

 

 

한국 법은 위장전입이 드러날 경우 3년 이하의 징역이나 1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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