캠프 고르서치
04/23/18  

언젠가부터 이맘때가 되면 마음은 알래스카에 가있다. 과거 한 해 여름을 알래스카 Chugiak에 있는 보이스카우트 야영장인 캠프 고르서치에서 보낸 적이 있다.

 

그때를 생각하면 앵앵거리며 달려들던 모기, 온몸에 바르던 끈적끈적한 모기약, 쿵쿵 큰 소리를 내며 걸어 다니던 검은 곰, 강물을 헤엄치던 연어 떼, 캠프를 찾는 소년들을 위해 지칠 줄 모르는 열정으로 봉사하던 스텝들, 회색빛 강물, 아름다운 호수, 베어 마운틴, 결코 어두워 질 것 같지 않던 하얀 밤 등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것들이 떠오른다. 그 중에서도 특히 주말을 보냈던 몇몇 가정에서의 따뜻한 환대를 잊을 수 없다. 1987년 여름에 있었던 일이다.

  

미국 보이스카우트 연맹은 매년 여름 서머캠프를 연다. 이 캠프에는 ''인터내셔널 캠프 스텝''이란 프로그램이 있다. 보이스카우트 대원들에게 타국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고 이해를 돕기 위한 것으로 이 프로그램에는 전 세계의 보이스카우트 지도자들이 초청된다. 항공료와 체류 경비를 모두 미국 연맹에서 제공한다.

  

그해 한국 보이스카우트 연맹이 ''인터내셔널 캠프 스텝''에 참가할 보이스카우트 지도자를 선발한다는 소식을 듣고 참가를 신청했다. 선발 인원은 3명인데 수십 명의 보이스카우트 지도자들이 참가를 희망했다. 선발 과정에서는 미국인 심사위원들로부터 영어 회화 능력 테스트도 받아야 했다. 당연히 영어교사이면서 스카우트 지도자인 신청자들이 뽑힐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선발자 명단에는 내 이름도 들어 있었다. 문법과는 동 떨어진 영어였지만 당당하게 말한 것이 심사위원들로부터 후한 점수를 얻었으리라 생각했다.

  

미국연맹은 한국연맹에서 선발한 세 사람을 몇 군데 서머캠프에 파견했는데 내게 배정된 곳은 알래스카 Camp Gorsuch였다. 월요일 캠프에 입소한 대원들은 금요일 밤 캠프파이어를 마치면 캠프를 떠났다. 그렇게 4주 동안 매주 새로운 대원들이 입소했다가 4박 5일의 일정을 마치고 퇴소했다. 그래서 주말에는 캠프에 아무도 없었다. 그런 까닭에 캠프의 스텝들은 멀리 한국에서 온 지도자를 캠프에 혼자 둘 수가 없어 돌아가면서 자기 집으로 데려가서 알래스카의 여름을 구경시켜 주었다.

 

해마다 7-8월이면 사진첩을 보면서 그해 여름을 추억한다. 어제도 그때를 회상하다가 페이스북 찾기 란에다 무심코 ‘Camp Gorsuch’를 쳐보았다. 캠프 고르서치가 떴다. 바로 그 속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거기서 사진 한 장을 발견하고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30년 전의 내가 거기 있었다. 사진을 올린 사람이 누구인가 보니 나를 자기 집으로 데려가 금, , 3일간 보살펴주었던 친구였다. Dave Daly. 키가 크고 목이 길었던 그는 당시 17-19세 정도였다. 초등학교에 다니는 대원들이 참여하는 캠프에 스텝으로 봉사하면서 여름을 나고 있었다.

 

반가움에 댓글을 남겼다. 그러자 바로 Dave로부터 메시지가 왔다. 우린 그렇게 다시 만났다. Dave는 미군으로 한국에서 복무한 적이 있으며 그때 나를 애타게 찾았다고 했다. 하지만 찾지 못해 매우 슬펐다고 했다. 그때가 언제인가 물으니 1996년이라고 했다. 나는 1993년부터 미국에 이주해 살고 있었으니 못 찾았을 수밖에. 우린 한 시간 이상 문자를 주고받았다. 부모님 안부를 물으니 지금도 알래스카에 살고 계시며 어머니는 치매 초기라 힘들게 지내지만 아버지는 아주 건강하다고 했다. 자신은 오리건 주의 포틀랜드에 살고 있다고 했다. 내가 올라가든지 Dave가 내려오든지 다시 만나기로 약속했다.

  

영국의 세계적인 역사학자이자 정치학자였던 ''E.H ''는 그의 저서 역사란 무엇인가에서 역사는 현재와 과거 사이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말했다. 개인의 경우 나를 알고 기억하는 주변의 사람들 없이는 나를 이야기할 수 없다. 그들과의 사회적 관계가 나의 정체성을 결정한다. 이는 집단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역사를 공부하는 것은 단순히 과거를 알기 위함이 아니다. 과거를 통해 현재의 정확한 좌표를 알고 이를 바탕으로 미래를 준비하기 위함이다. 그래서 과거는 과거일 뿐이라고 치부하거나 혹은 과거를 왜곡하는 사회의 미래는 어두울 수밖에 없다. 과거에 눈감은 자는 현재에도 눈멀게 되고, 그래서 미래를 바라볼 수 없는 것이다.

  

그해 여름, 알래스카에서 만났던 Dave를 지금의 나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듯이 미래의 언젠가 다시 만날 Dave 역시 그럴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추억이 만든 현실은 미래의 언젠가는 또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을 것이다. 과연 Dave는 어떻게 변해 있을까? 그를 만나면 무슨 이야기부터 할까? 과거가 만들어 낸 현재 때문에 미래에 있을 일로 벌써부터 설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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