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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수지탄(風樹之嘆)
04/23/18  |  조회:152  

아버지는 양로병원에서 생활한다. 하루 종일 누워 있다. 대변 조절이 잘 안되어 기저귀를 차고 생활하다 보니 엉덩이에 염증이 생겼다. 그 부위가 가려우니까 자꾸 긁는다. 그리고 긁던 손으로 또 다른 부위를 긁다보니 손에 묻었던 균이 옮아 여기저기 피부에 문제가 생겼다. 병원에 입원해서 수술을 받아야 했다. 이런 사실을 전화로 알려주는 담당 의사에게 그 수술이라는 것이‘곪은 것을 짜내는 일’아니냐고 물으니 결국은 그런거라고 했다. 그래서 대단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아버지 병실을 찾았다. 점심시간이었다. 간호사가 아버지에게 음식을 떠먹여 주고 있었다. 아버지가 식사는 그만하겠다고 했다. 아이스크림을 드시겠냐고 간호사가 물으니 고개를 끄덕거렸다. 간호사가 아이스크림을 스푼으로 푸면서 밝은 목소리로“식음을 전폐하고 누워서 잠만 주무시다가 오늘 아침부터 식사를 했다”고 말했다. 이어 소변을 제대로 보지 못해 호스로 빼내고
있다면서 아직도 피가 많이 섞여 나온다고 했다. 침대 아래에 있는 오줌주머니로 이어지는 관을 보니 진홍색의 물이 계속 흘러 내려오고 있었다. 소변에 피가 섞여 나오는 것이었다. 심각한 상태라고 생각돼 의사를 만나고 싶다고 했지만 마침 담당 의사가 자리를 비워 만날 수 없었다.

 


다음날 담당 의사를 만났다. 그는 하나에서 열까지 아버지의 상태를 상세하게 설명해주었다. 아버지의 나이에서 이런 정도를 심각하다고 얘기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가볍게 여길 상황은 아니라고 했다. 언제쯤 퇴원할 수 있겠느냐고 물으니 아버지의 지금 상태로 퇴원해서는 훨씬 더 곤란한 상황에 처할 수 있으니까 며칠 더 상태를 지켜보자고 했다.

 

 

그는 말 한 마디 한 마디를 조심해서 하면서 듣는 사람이 불편하지 않도록 신경을 많이 쓰고 있었다. 그러면서 진심으로 아버지가 회복되기를 바라고 있었다. 아버지에게도 자꾸 호스를 건드리지 말고, 가렵다고 마구 긁지 말라고 당부했다. 워낙 심하게 긁으니까 양 다리는 나무를 대고 붕대로 감아 손을 대지 못하게 해놓았으나 머리와 다른 부위는 어쩔 수 없나 보다. 아버지는 머리를 틈틈이 긁고 있었다.

 


참을성이 매우 강한 분이다. 참을성이 없는 나를 나무라던 분이다. 그런 당신이 가려움을 참지 못하고 마구 긁고 있다. 아버지는 많이 쇠약해지셨다. 몸도 그렇지만 정신 역시 오랜 병상생활로 인해 약해진 것이리라. 게다가 출혈이 계속되고 있으니 더 기운이 없을 것이다. 젊어서 강인하고 씩씩했던 아버지가 노인이 되어 병들고 병상에서 신음할 줄은 전엔 상상하지 못했다. 마음속으로 눈물이 흘렀다.

 

 

풍수지탄(風樹之嘆)이란 말이 있다. 바람과 나무의 탄식이란 뜻으로 효도를 다 하지 못한 자식의 슬픔을 이르는 말이다. 우리에게 익숙한 많은 고사와 성어들이 풍부하게 담겨 있는 중국의 고서 한시외전(韓詩外傳)에 나오는 이 말은 다음과 같은 고사에서 유래됐다.

 

 

공자가 제자들과 함께 길을 가다가 몹시 슬퍼 우는 소리를 들었다. 울음소리의 장본인은 고어라는 사람이었다. 그에게 우는 까닭을 물으니 고어가 울음을 그치고 말했다“. 저에게는 세 가지 한이 있습니다. 첫째는 젊었을 때 학문을 한다고 집을 떠났다가 집에 돌아가 보니 부모님이 이미 세상을 떠난 것이요, 둘째는 섬기던 군주가 충언을 듣지 않아 그에게서 도망친 것이요, 셋째는 속마음을 터놓고 지내던 친구와 사이가 멀어진 것입니다.”

 

 

고어는 한숨을 쉬고 말을 이었다. 무릇 나무는 조용히 있고자 하나 바람이 그치질 않고(樹欲靜而風不止수욕정이풍부지), 자식이 부모를 봉양(효도)하고자 하나 어버이는 기다려주지 않습니다(子欲養而親不待자욕양이친부대). 흘러간 세월을 돌릴 수도 없으니(往而不可追者年也 왕이불가추자년야) 가시면 다시 뵐 수 없는 것이 부모님이지요(去而不見子親也 거이불견자친야). 고어는 이 말을 남긴 채 마른 나무에 기댄 채 죽었다고 한다.

 

 

부모와 자식의 관계는 천륜으로 맺어졌으며 사회와 가정의 근본이다. 부모는 온갖 사랑과 정성을 다해 자식을 기르고, 그런 부모에게 효도하는 것은 자식된 도리이다. 이는 선택 사항이 아니다. 그래서 공자는 효도를 실천하는 것은 인간 본연의 근본을 실천하는 것이라고 했다.

 

 

요즘 갈수록 연약해져 가는 아버지를 뵐 때마다 가슴속으로 눈물이 차오름을 느낀다. 받은 사랑만큼 돌려드리지 못했다는 죄책감, 지금까지 내 삶의 든든한 기둥이 되어 주신 것에 대한 감사. 이제는 마음에만 담아두지 않겠다. 다음에 아버지를 만나면 꼭 소리 내 말해야겠다“. 아버지,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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