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함도
04/23/18  

영화가 끝났다. 아무도 움직이려 하지 않았다. 말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불이 켜졌으나 그 누구도 밖으로 나가려 하지 않았다. 나도 멍하니 앉아 있었다.

 

경성 반도호텔 악단장‘강옥’(황정민)과 그의 딸‘소희’(김수안). 그리고 종로 일대를 주름잡던 주먹‘칠성’(소지섭), 온갖 고초를 겪으며 살아 온 위안부 출신‘말년’(이정현) 등 각기 다른 사연을 품은 조선인들이 돈을 벌 수 있다는 말에 속아 일본으로 향한다. 하지만 그들이 탄 배가 도착한 곳은 조선인들을 강제징용해 노동자로 착취하고 있던‘지옥섬’군함도였다.


일제강점기 조선인들이 끌려가 강제 노역한 해저 탄광 군함도는 일본 미쓰비시중공업이 1890년 매입해 석탄 채굴을 했던 나가사키현 인근 섬으로 혹독한 노동조건 탓에‘감옥섬’‘, 지옥섬’으로 불렸다.


남자들은 매일 해저 1,000 미터 깊이의 막장 속에서 가스 폭발의 위험을 감수하며 노역을 하고 여자들은 유곽에서 몸을 팔아야 하는 유녀(遊女)로 전락한다. 강옥은 딸 소희와 자신의 안녕만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살아간다. 칠성과 말년도 각자의 생존을 위해 고통스러운 삶을 이어간다.

 


한편 전쟁이 막바지로 치닫자 광복군 소속 OSS 요원‘무영’(송중기)은 독립운동의 주요인사인‘학철’(이경영)을 구출하라는 지시를 받고 군함도에 합류한다. 그러나 학철은 독립을 위해 투쟁한 인물이 아니라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해 조선인 광부들을 이용했던 철저한 위선자였음이 밝혀진다.

 


일본 전역에 미군의 폭격이 시작되자 일본 수뇌부들은 군함도에서 저지른 온갖 만행을 은폐하기 위해 조선인들을 갱도에 가둔 채 폭파하려고 한다. 이를 알게된 무영은, 강옥, 칠성, 말년을 비롯한 조선인 모두와 군함도를 빠져나가기로 결심한다. 처절한 전투를 거치면서 우리의 주인공들을 비롯해 많은 이들이 목숨을 잃는다. 탈출에 성공한 이들이 배에서 원폭투하로 피어오르는 버섯구름의 장대함을 보면서 영화는 막을 내린다.

 

 

인터넷 여기저기에 군함도에 대한 감상평이 많이 올라와 있다. 어느 영화나 그렇듯이 비판적인 시각도 있고 호평도 있었다. 지나치게 많은 홍보와 애국적인 영화라고 선전한 것에 비해 그 내용은 빈약했다는 비판들이 주를 이루고 있었다. 비판하는 이들은 역사적 아픔에 대한 접근과 이를 어떻게 극화했는가에 큰 기대를 걸었을 것이다. 그들은 상업영화의 속성에 부딪혀 식상했고, 비판적 글을 쓸 수밖에 없을 것이다. 역사적인 사건이라는 시각으로 어떤 사명을 띤 영화로 봐서는 곤란하다. 영화는 어디까지나 영화 아닌가. 즉 재미로 보는 킬링타임용 영화로는 손색이 없었다는 말이다. 하물며 크게 기대를 걸지 않고‘친구 따라 강남 가는 식’으로 영화 시작 2시간 전쯤에 아리조나에서 올라온 친구의 연락을 받고 인터넷에 들어가 표를 예매하고 급히 달려갔으니 큰 기대가 있을 리 없었다.

 

 

역사적인 사실로 그 내용 자체가 식민지 국민들의 처절한 삶과 돈벌이에 혈안이 된 자들에 관한 것이기에 전체적으로 어둡고 칙칙할 수밖에 없는 영화이나 그 속에 적절한 유머와 인간미를 가미해서 끌어가고 있어 나름 재미를 주고 있다.

 

 

출연 배우들이 중량급이라 산만한 역할 분담으로 영화의 집중도가 떨어지거나 그들의 역할이 다소 약화될까 우려했으나 처음부터 끝까지 각 배우들의 존재감이 훼손되지 않도록 잘 처리했다. 특히 나이 어린 배우 김수안은 관객들이 배우들과 하나 되어 가슴 졸이고 아파하면서 눈물을 글썽이려 할 때마다 웃음 짓게 하는 역할을 잘 소화했다.

 

 

영화 전체를 스토리로 엮어 깊게 뿌리 내리기에는 벅찬 시간 임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등장인물 각 개인 스토리의 전개까지 무리 없이 짜임새 있게 잘 만들었다

 

 

리드미컬하고 박진감 있는 극의 전개와 리얼한 사운드를 통해 영화의 몰입도를 높여주고 있다. 거기다 상당히 디테일하고 웅장한 규모의 세트장은 한국영화가 그렇지 하는 시각을 갖고 온 관객들을 압도하고도 남았다.

 

 

인간 내면에 잠재해 있는 이기심, 위선, 증오, 자만, 이로 인한 음습함이 영화 전체를 지배하는 가운데 사랑,인간애, 조국애, 애국심 등이 서로 엉켜서 관객들은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게다가 모진 풍파를 겪은 여자 아이가 부르는 노래의 가사와 가락이 우리 가슴을 후벼팠다. 영화가 끝났으나 영화 속에 머물고 있었다. 현실로 돌아오기까지 시간이 필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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