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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한 추석
04/23/18  |  조회:146  

아버지는 추석과 설 등의 명절과 집안 어른들의 제사에는 빼놓지 않고 고향을 찾았다. 버스가 면소재지까지밖에 들어가지 않던 그 시절에 고향을 찾는 일은 그야말로 힘든 여정이었다. 서울에서 기차를 타고 예산에서 내려 버스로 갈아타고 청양으로 가서 사양(지금의 남양)행 버스로 갈아탔다. 그리고 사양에서 내려 매곡리까지 30리길을 걸었다. 특히 명절에는 거의 하루가 걸리는 여정을 온 가족을 데리고 갔다. 눈보라가 치고 비바람이 불어도 쉰 적이 없었다. 큰댁에서 차례를 지낸 후 조부모, 증조, 고조부모들의 묘소까지 찾아다니며 일일이 인사를 드렸다. 그리고 귀가를 서둘렀다.

  

생전에 듣지도 보지도 못한 증조부, 고조부의 제사를 지내고 험한 산을 오르내리며 묘소를 찾아가 참배하는 일들이 전혀 이해가 되지 않았으나 어른들께서 그분들과의 추억담이나 전해오는 이야기를 해주면 귀담아 들으며 가족 공동체의 일원임을 실감했다.

  

고국의 올해 추석 명절은 연휴가 열흘이나 된다. 북한의 연이은 미사일 발사로 온 세계가 전쟁 발발을 염려하며 난리법석을 떠는데도 한국민들은 추석의 큰 의미인 제사보다는 휴가를 어떻게 보낼 것인가에 더 신경을 쓰고 있다.

  

그러나 제사의 임무를 띤 사람들은 자유로울 수가 없다. 집집마다 제사로 인한 고민들이 예사롭지 않다. 흩어져 사는 자손들의 제사 참여, 제수 비용, 제사 수 조절 등을 놓고 타협을 모색하고 있다. 종교적인 이유를 들어 제사를 지내지 않고 추모의식을 행하는 집들도 늘어나고 있다 쉽게 답을 못 구할 경우, 근본으로 돌아가 제사의 의미를 묻는 것이 방법일 수도 있다.

 
제사에는 자신의 근본과 시작을 기억하려는 보본반시(報本反始)의 정신이 깃들어 있다. 제사가 가계 계승이나 가족 공동체 결속의 기능적 역할을 하기도 했다. 이처럼 한국인의 삶의 중심에는 제사가 있었다.

  

조상이란 그가 무슨 일을 했는가와 무관하게 존재 자체가 후손에게 의미를 지닌다. 따라서 제사는 자기 속에 깃든 조상의 실체를 확인하면서 동시에 자신의 존재 근거를 확인하는 일이다. 따라서 제사의 형식과 방법은 얼마든지 다르게 진행할 수 있다. 종교적인 의식으로 거행하건 우리 고유의 방식으로 하건, 가족들이 모여서 하든, 각자 흩어져 사는 곳에서 하든 크게 문제될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 즉 제사의 방법과 형식도 사람이 정한 것이기에 반드시 지켜야 할 절대 원칙이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제사의 법식을 수록한『예기』에는 이런 말이 있다‘. 어떤 제사든지 자주 지내지 않아야 한다. 자주 지내면 번잡해져 공경심이 없어진다. 하지만 제사를 너무 오랫동안 지내지 않아도 안 된다. 오랫동안 지내지 않으면 태만해져 잊어버리기 쉽다.’이것이 곧 일상과의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면서도 잊을만한 시점에 제삿날을 배치한 뜻일 것이다.

  

그렇다면 제사는 누가 어디서 어떻게 지낼 것인가? 제사를 구성하는 형식은 시대마다 늘 논쟁거리였다. 형식이란 시대적 상황을 담아내는 그릇이기에 늘 변할 수밖에 없다. 제사 자체를 폐기하지 않는 한 형식의 변화는 필수적이다.

  

각 가정의 상황에 맞춰 변화시켜도 큰 지장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필자의 경우, 모든 제사를 장손댁에서 지냈기에 큰 관심을 두지 않았으나 어머니가 1999년에 돌아가신 후 삼년 동안 제사를 모셨다. 상을 차려 놓고 한국에 사는 동생들에게 전화한 후에 어머니 사진을 향해 절을 하도록 했다. 3년이 지난 다음에는 각 가정들 나름대로 기리도록 했다. 동생들은 성당에서 미사를 통해 어머니의 기일을 기리고 있다고 했다.

  

지난 9월 1일, 아버지께서 세상을 떠났다. 3년 동안은 아버지 기일에 어머니 때와 마찬가지로 집에서 의식을 진행하고 그 후로는 성당에서 추모 미사로 모실 예정이다. 이번 추석부터 부모님의 차례를 함께 지내게 되었다. 아울러 그동안 홀로 모셨던 어머니를 아버지와 함께 합장해서 모실 예정이다. 다른 때보다 더 뜻깊은 추석이 될 것이다.

  

이 자리를 빌려 아버지를 위해 기도해주셨던 모든 분과 장례식에 참석해주신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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