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04/23/18  

한국의 괄목할 만한 경제화 속도와 수준에 전 세계는 찬탄을 아끼지 않는다. IT와 자동차 강국, 세계 최고의 전자제품을 생산하는 나라, K-Pop과 K-Drama, K-Beauty, K-Food를 앞세워 세계 문화를 선도하는 나라. 세계는 지금 바야흐로 한국에 열광하고 있다.

  

그리고 그런 만큼 한국 사회에도 과거에 비해 긍정적이고 합리적인 변화가 빠르게 일고 있다. 그런 변화는 미국에 살면서도 여러 매체를 통해, 혹은 기회가 있을 때 한국 방문을 통해 직·간접적으로 경험할 수 있다. 하지만 아직 한국 사회 전반에서 그런 변화를 느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아직도‘빨리빨리’로 대변되는 조급증으로 인해 발생하는 사회 문제는 심심치 않게 발생하고 있고, 타인에 대한 배려의 마음은 아직도 갈 길이 멀어 보인다. 그러다보니 나만 잘 되면 다른 사람이야 어떻게 되든 상관이 없다는 식의 개인주의적인 행동들도 줄어들지 않고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집안에 일이 있어 한국을 찾았다. 일을 마무리하고 개인 용무를 보기 위해 여기 저기 다니고 있다. 은행에 들어서기 위해 문을 열고 있었다. 뒤에서 인기척이 나 돌아보니 할아버지 한 분이 조급한 걸음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할아버지가 육중한 문을 열기에는 힘에 부칠 거라는 생각이 들어 열고 있던 문을 잡고 있었다. 할아버지는 조급한 걸음걸이였지만 몸이 불편한지 걸음은 좀 느렸다. 할아버지가 은행의 문을 들어서기까지의 시간이 제법 길게 느껴졌다. 할아버지는 고맙다고 하면서도 좀 이상하다는 듯이 쳐다보면서 은행으로 들어갔다. 할아버지가 은행 안으로 들어선 후 문을 닫으려 하니 이번에는 한 아주머니가 숨을 몰아쉬면서 급히 오고 있었다. 기다리는 김에 아주머니가 은행에 들어설 때까지 문의 손잡이를 잡고 있기로 했다. 아주머니는 아무 말도 없이 눈도 마주치지 않고 은행으로 다급하게 들어갔다.

 

아주머니를 따라 들어섰다. 할아버지는 이미 번호표를 빼서 자리에 앉아 있고 아주머니도 번호표를 뽑으려고 급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할아버지와 아주머니는 나보다 먼저 은행 직원들을 만나 일을 보았다. 한 순번이라도 빠른 번호표를 뽑기 위해 그들은 자기들을 위해 문을 잡고 있었던 나는 안중에도 없었는지 모른다. 아니 도리어 이상한 사람으로 여겼을 수도 있다.

 

이런 일도 있었다. 친구와 롯데 월드 타워의 모 식당에서 만나기로 했다. 지하철 잠실역에서 내리면 금방 찾을수 있다는 말만 믿고 수월할 것이라 생각했지만 한참을 찾아 헤매야만 했다. 지하의 거리에서 어디로 가야할 지 도무지 알 길이 없었다. 푯말을 보고 롯데월드로 시작되는 여러 곳을 가보았지만 약속 장소는 발견하지 못했다. 마지못해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물었지만 누도 속 시원하게 안내해 주지 않았다. 그냥‘쭉’가라고만 했다. 물어물어 겨우겨우 식당에 도착했을 때는 약속시간보다 20여 분이나 지난 뒤였다.

 

또 이런 일도 겪었다. 친구를 만나 그의 차로 모 음식점을 찾아갔다. 주차장은 만원을 이루고 있었다. 운 좋게도 눈앞에 주차 공간이 하나 있었다. 친구는 그곳에 주차를 하려고 준비하고 있었다. 그런데 뒤에서 쫓아오던 승용차가 갑자기 앞지르려 하여 차를 멈췄다. 그러자 앞질러 가려고 하는 줄 알았던 뒤차가 급히 친구가 들어가려던 공간에 차를 주차시키는 것이 아닌가.

 

깜짝 놀랐다. 친구가 주차시키려고 잠시 머뭇거리는 사이에 앞질러 갈 것처럼 친구의 차 앞으로 쑤욱 나가더니 친구가 주차하려던 공간에 후방주차를 하는 것이 아닌가. 어처구니가 없었다. 다행히 마침 근처에 주차해 있던 차가 빠져 나가는 바람에 친구는 헤매지 않고 주차할 수 있었다.
화가 치밀어 올라 혼잣말로 투덜대자 친구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말했다. 젊은이가 급했던 모양이라고. 그러면서 덧붙였다. 아마 그 사람도 왼쪽의 차가 나가려고 한다는 사실을 알고 그랬을 거라며 화내지 말라고. 하지만 영 마음이 편치 않았다.

  

혹시 오랫동안 미국에서 살다보니 한국적이지 않은 시각으로 한국의 사회현상을 바라보기 때문일까 자문도 해 보았지만, 결코 그런 것은 아니었다. 과도기라고, 점점 나아지고 있다고 변명한다면 아직도 문화적으로 선진국 대열에 들어서지 못했음을 인정하는 것이다. 비록 한국이 특정분야에서 기술적으로 선진국 대열에 들어섰다해도 사회·문화적으로 선진 대열에 들어서지 못하면 결코 선진국일 수 없다.

  

청년 실업, 저출산, 세계 최고의 자살률 등의 사회 문제만이 심각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여유 있는 삶, 타인에 대한 배려의 실종과 같은 사회적인 분위기가 더욱 심각하다. 왜냐하면 여유 있는 삶, 타인에 대한 배려를 되찾으면 청년 취업도, 출산률도 오를 것이고 자살률은 떨어질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작아 보이는 것이 오히려 더 클 수 있다는, 일견 모순돼 보이는 이 명제에 대한 한국 국민들의 공감대 형성이 필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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