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성 통일전망대에서
04/23/18  
북한 김정은 노동당위원장과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한 치도 양보하지 않고 험악한 말 전쟁을 이어가면서 한반도에서 다시 전쟁이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그러나 한국민들의 일상은 최소한 겉으로는 평온해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 후 처음으로 가진 유엔총회 기조연설에서“미국과 동맹국을 보호해야만 하는 상황이 온다면(forced to defend) 우리는 북한을 완전히 파괴하는 것 외에는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라고 밝히던 날, 강원도 고성에 있는 통일전망대를 방문했다. 평일인 탓에 그곳을 찾은 사람들은 많지 않았다.
 
 
통일전망대 방문을 위해 절차에 따라 출입신고소에서 입장료와 함께 인적사항을 적어내니 출입증을 발부해 주었다. 전망대로 가는 길에 있는 검문소에서는 군인들이 탑승자들을 일일이 검문하고 차량을 검사했다.
 
 
통일전망대 관람지역 내에는 한국전쟁 당시 고성지역전투에서 전공을 세우고 산화한 전몰호국영령을 추모하기 위한 고성지역전투 충혼탑과 351고지 전투전적비가 있었으며, 해돋이 전망타워 공사가 한창 진행되고 있었다.
 
 
통일전망대 1층에는 한국전쟁 당시의 기록물이 전시되어 있었으며, 2층 전망대에는 그곳에서 보이는 북녁땅을 사진에 담아 사진에 담긴 산봉우리들의 이름과 무슨 시설들인지 한눈에 알아보기 쉽게 기록해 놓았다. 먼저 눈으로 북녘의 풍경을 바라본 후 이어 사진에서 그곳이 어딘지를 확인하니 더욱 실감나고 쉽게 이해가 됐다. 그렇게 사진과 눈앞에 펼쳐진 전경을 비교해가며 보고 있을 때, 하얀 와이셔츠에 검은 바지를 입은 청년이 다가와 눈에 보이는 곳들에 대해 직접 설명해주겠다고 했다.
 
 
저것이 북한 관측소이고 대남 방송을 하는 초소이고 멀리 보이는 봉우리들이 금강산이며 바다에 펼쳐진 바위섬들이 해금강이라는 설명을 했다. 눈으로 보고 사진을 통해 그곳이 어디인지 확인한 후 설명까지 들으니 눈앞에 보이는 북한의 모습에 대해 더 명확하게 알수 있었다.
 
 
아름다운 우리 땅이요 바다임에도 서로 오가지 못하고 총부리를 겨누며 분단된 채로 살아왔고 언제 통일이 될지도 모른다. 아니 통일이 점점 멀어지고 있는 느낌이 들어 가슴이 먹먹해오기 시작했다. 한눈에 봐도 세상 어느 곳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천혜의 절경임이 분명한 그 땅을 멀리서 바라보아야만 한다는 사실에 절망감마저 밀려왔다. 그리고 분단의 문제해결이 당사국인 남과 북이 아닌 다른 큰 힘들에 의해 좌우되고 있는 현실이 안타까웠다.
 
 
트럼프의 유엔 연설 후 김정은은 사상 최초로 북한 최고 지도자 명의의 성명을 내고 “트럼프가 무엇을 생각하든 그 이상의 결과를 볼 것”이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그러자 미국은 최신예 전투기들을 띄워 북한을 위협하는 비행을 했고, 이에 북한은 선전포고라며 북한 영토나 영공이 아니더라도 미국의 비행물체가 보이면 바로 격추시키겠다며 위협했다.
 
 
이런 일련의 사건들을 바라보는 세계의 불안한 시각과는 상관없이 한국에서 느끼는 현실은 그저 평온하다. 시기가 마침 열흘의 추석 연휴를 앞두고 있어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전쟁에 대한 공포보다는 추석 명절과 연휴를 어떻게 보낼지에 더 신경 쓰는 눈치이다.
 
 
최근 들어 언론들은 전쟁 발생 시 챙겨야하는 물품이 들어 있는 배낭이 잘 팔린다는 소식을 전하기도 했지만 외견상으로는 전쟁에 대한 공포를 전혀 느낄 수가 없다. 하긴 곧 전쟁이 터질 것이라고 호들갑을 떨며 긴장감을 조성하는 것보다 조용히 거기에 대비하는 것이 더 현명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도 설마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나겠느냐하는 안이한 생각은 너무 위험천만한 것임에 틀림없다. 이제 와서 전쟁 발생 시 대피할 수 있는 시설을 확충하고 전쟁불사를 외치며 안달할 필요는 없지만, 조용한 가운데 전쟁 위기에 대응해가는 국가적인 지혜가 필요한 때임에는 두말할 필요가 없어 보인다.
 
 
분단 이후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 정서는 거의 대부분 평화보다는 긴장 쪽에 더 가까웠다. 하지만 늘 전쟁의 그림자가 드리워진 가운데에서도 한국은 세계 10위권의 경제 대국의 반열에 올랐다. 세계 어느 나라도 이루지 못한 놀라운 업적이다. 그러나 이런 업적도 한순간의 방심으로 사라질 수 있다.
 
 
국가가 없으면 국민이 살아갈 터전도 없다. 우리가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아름다운 이 땅에서 우리의 후손들이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지금 한반도를 둘러싸고 있는 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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