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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영장에서
04/23/18  |  조회:163  
친구와 풀러턴커뮤니티센터 수영장에서 만나기로 했다. 오전 7시 30분, 많은 사람들이 수영을 하고, 물속을 걷기도 하면서 아침을 즐기고 있었다. 친구를 찾았다.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 샤워를 하고 물속으로 들어간다. 따뜻하다. 다른 수영장에 비해 수온이 높은 편이다. 내가 걷기 시작한 레인에는 이미 세 사람이 걷고 있었다. 남자 한 사람, 여자 두 사람. 나도 팔을 천천히 돌리며 걸었다. 걷고 있었던 사람들에게 인사를 하려고 했으나 눈을 마주치려 하지 않는다. 아마 낯선 사람과 얘기하기를 불편해 하는가 보다.
 
 
자기들끼리는 웃으며 재미나게 이야기를 하면서 몇 번인가 왔다 갔다 하면서 걸었다. 나도 걸었다. 한 2분이나 지났을까 말까 한 남자가 물 밖으로 나간다. 곧 이어 부부로 보이는 두 사람도 물 밖으로 나갔다. 세 사람 모두 백인들이다. 그때까지는 백인인지 동양인인지 의식조차 하지 못하고 있었다.  
 
 
혼자 남게 되었다. 수영을 시작했다. 물안경을 준비하지 못해 불편하다. 다시 걷기 시작했다. 키가 큰 백인 여자가 들어왔다. 환하게 웃는다. 굿모닝! 반갑게 인사했다. 그 사람도 굿모닝하면서 환하게 웃는다. 아까 인사도 하지 않고 걷기만 하던 사람들과 비교해보며 나름 기분이 좋아졌다. 아, 그런데 그 사람 나보고 인사한 게 아니었다. 내가 있는 다음 레인에 자기 친구가 있었다. 레인을 구별하는 플라스틱 선을 사이에 두고 그 사람과 포옹을 하고 뺨까지 비비더니 플라스틱 선을 넘어갔다. 
 
 
나보고 인사하는 줄 알았다. 멋쩍어서 머뭇거리며 그들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는데 친구가 나타났다. 친구는 가운데 레인으로 들어가면서 나보고 그리로 오라고 했다. 뭐 그럴 필요 있는가. 지금 이 레인을 나 혼자 독차지 하고 즐기고 있는데. 동양인 여자 둘이 내 레인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잠시 후 동양 남자 한 사람이 합세했다. 결국 동양인 다섯 사람 중에 네 사람이 나와 같은 레인에 있고 친구만 가운데 레인을 이용하고 있었다.
 
 
백인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동양 사람과 함께 물속에 있는 것을 피하려 한 것인지 아니면 갈 시간이 되어서 간 것인지 궁금하지만 확인할 길은 없었다.  
 
 
수영장 안에 있는 인원 전체에서 다섯 사람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이 다 백인들이었다. 일부러 인종을 구별하여 헤아려 보지는 않았지만 기억을 더듬어 보자면 흑인과 히스패닉계 사람들은 보이지 않았다. 수영장의 안전요원도 백인이었다. 수영장 입구에서 문을 열어주는 직원도 백인이었다. 먼저 떠난 세 사람은 내가 동양인이어서가 아니라 자기들이 충분한 시간을 즐겼기 때문에 떠난 것이고, 뒤늦게 온 사람이 친구가 있는 레인으로 건너간 것도 내가 동양인이어서가 아니라 친구가 있기 때문에 그 레인으로 간 것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올해 초, 히말라야 지누단다 노천온천에서의 일이 떠올랐다. 탕이 세 군데 있었다. 맨 아래쪽이 제일 뜨겁다고 했다. 우리 일행이 도착했을 때 백인 남녀 대여섯 명이 그 속에 있었다. 일행 중에 한 사람이 탕에 들어서니까 한 사람이 일어나서 맨 위쪽의 탕으로 가고 이어서 나머지 사람들도 모두 그쪽으로 가버렸다. 잠시 기분이 좋지 않았지만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동양인들이 몰려오니까 편하지 않았을 것이리라.
 
 
문득 떠오르는 생각, 라미라다시의 로타리클럽에 동양인으로는 최초로 내가 가입했다. 아, 한 사람 더 있었다. 지금도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하와이 태생의 중국계 2세 웨인, 그는 치과 의사로 빠지지 않고 출석하고 있다. 그러니까 내가 두 번째 동양인이며 이민 1세로는 내가 처음이었다. 내가 가입한 이후로 많은 한인들이 가입했다. 한의사, 변호사, 과학자. 그러나 모두 도중에 그만 두었다. 모든 회원들이 백인이고 그 중에 몇 사람이 동양인이다 보니까 소외감이 느껴져서 그런 것일까? 아니면 또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인가.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무엇인가 느껴지는 것이 있어서일까. 사실, 불편한 점이 없지 않아 있기는 하다. 어디에서 연유하는지 모르는 서먹서먹함. 그것도 내가 갖고 있는 편견이라 치부하고 싶다. 사실 현재 미국의 인종편견이란 것이 이젠 꼭 집어 말할 수 없는 모호한 것이 되었다. 분명하게 드러나는 것은 아닌데 어딘가 불편한 느낌, 침묵 속에 암시되는 소외와 분리감을 느끼는 것이다.
    
 
수영장을 나와 친구와 근처의 유명한 멕시칸 식당으로 갔다. 이집은 브리또가 유명하다. 음식을 주문하고 기다리고 있었다. 근처의 하이스쿨 학생들이 갑자기 몰려 들어왔다. 음식을 주문하고 흑인, 백인, 동양인, 히스패닉 구별하지 않고 한데 어울려 웃고 떠들었다. 젊은이들을 보고 있으면 저절로 기분이 좋아진다. 친구와 함께 아침을 즐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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