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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움
04/23/18  

연방 공무원으로 일하다가 일찌감치 은퇴한 친구가 있다. 그는 만날 때마다 몸이 아프다고 하소연했다. 얼마 전 만났을 때도 병원에 다녀왔다며 자기가 앓고 있는 각종 병명을 열거하더니, 거기에 더해 외롭다고도 했다. 친구는 교회에서 운영하는 서예 교실, 노래교실에 다니고, 토요일이면 산에도 가고 주일이면 성가대에서 노래도 한다. 그런데도 외롭다는 것이다.

  

또 은퇴 후 한국으로 돌아가 고국의 농촌에서 노후를 보내겠다고 꿈꾸었던 친구도 있다. 그는 그의 바람처럼 은퇴 후 서울 근교에 집을 짓고 전원생활을 시작했다. 하지만 한국 생활을 한 지 2년여가 돼 갈 무렵 다시 미국으로 돌아왔다. 짐작컨대 그는 평소 친하게 지내던 사람들과의 단절과 그로 인한 외로움 때문에 꿈을 포기하고 다시 이곳으로 돌아왔을 것이다.

  

즐겨보는 한국의 TV 프로그램 중‘나는 자연인이다’라는 것이 있다. 주 내용은 도시 문명을 등지고 산속에서 약초를 캐고 개나 닭을 키우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을 소개하는 것이다. 가끔 40대, 70대도 등장하지만 주로 50대나 60대가 대부분이다. 그들은 대부분 사회에서 겪었던 일로 도회지 생활에 환멸을 느꼈거나 건강이 악화돼 산속으로 들어간 사람들이다.

  

아주 오래 전 그런 삶을 부러워 한 적이 있었다. 물소리와 바람소리, 새소리를 벗 삼아 지내고 싶었다. 먹을 것을 자급자족하면서 스트레스 없이 살고 싶었다. 하고 싶은 일을 참지 못하는 성격 탓에‘루손밸리’라는 외진 마을에 있는 대추 농장을 샀다. 방 3개에 화장실 2개, 밝고 깨끗한 1,800sq의 집까지 딸려 있었다. 별다른 일이 없는 한 금요일 밤에 가서 일요일에 다시 살고 있는 집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그 생활은 1년 만에 끝이 났다.

  

아버지와 나는 1주일에 이틀만이라도 전원생활 하는 것을 무척 즐겼지만, 그런 생활을 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다른 가족들은 모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기 시작했다. 아이들은 친구와 떨어져 주말을 보내는 것이 무료하다고 불평했고, 아내도 두 집일을 해내야 하는 고통에 더해 말벗 없음을 호소했다. 게다가 시도 때도 없이 담장을 넘어와 음흉하게 집 주위를 서성거리는 코요테
까지 아이들과 아내에게는 그곳을 찾지 말아야 할 이유였다. 아이들과 아내가 루손밸리에 가는 것을 싫어하는 이유는 외견상 다른 것 같지만, 결국은 외롭다는 것이었다. 친구가 없어서, 말벗이 없어서. 나는 자문해 보았다. 그럼 좋아하는 친구들하고 함께 있으면 외롭지 않을까? 그렇다면 여럿이 어울려 웃고 떠들고 즐거운 분위기 속에 있을 때 불현듯 찾아오는 외로움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군중 속의 고독’‘, 고독한 군중’이란 말은 왜 생겨난 것일까. 외로움은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것이지만, 어떤 사람은 그것을 느낄 겨를 없이 바쁘게 살아가고, 또 어떤 사람들은 그 외로움이 뼈에 사무칠 만큼 시간적 여유가 많은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두 집일을 하며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생활을 해야만 했던 아내의 불평은 어디에서부터 시작된 것일까.

  

사회신경과학의 창시자인 존 카치오포에 따르면 외로움은 대인관계에서 갖는 주관적인 느낌이다. 즉 다른 사람들과 유대감을 가지려는 욕구로부터 외로움이 생겨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들과의 사회적 유대감을 통하지 않고는 외로움을 극복하기 어렵다. 개인의 의지가 아니라, 촘촘한 사회적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것으로 외로움의 근본적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것이다. 카치오포는 고립된 개인은 외로움을 근본적으로 해결 할 수 없다고 말했다.

  

혼자여서 느끼는 외로움이든 사람들 속에서도 찾아 오는 외로움이든 궁극적으로 그것을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은 바로 자신이다. 나는 혼자여도 전혀 외롭지 않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이미 사회적인 인간망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그렇게 항변할 수 있는 것이다. 아니 어느순간 자신이 갖추어 놓은 인간망에서 벗어났을 때 맛 본 그 달콤한 해방감에 취한 탓일지 모른다. 하지만 그
인간망에서의 이탈이 오래 지속되면 결국 다시 그곳으로 돌아가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마치 여행 초기에는 여행지에서의 모든 것이 즐겁지만, 여행 기간이 오래 될수록 떠나왔던 집이 그리워지는 것처럼.

  

혼술, 혼밥으로 대변되는 혼자가 익숙한 사회, 사람이 아닌 애완동물과 교감하는 시대. 그래서 반대로‘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는 명제의 가치가 더욱 크게 느껴지는 시대.

  

더불어 사는 사회가 건강한 사회이다. 어떤 이유에서든 외로움을 느끼는 사람이 많은 사회는 결코 건강할 수 없다. 혹시 나의 인간망에 있는 누군가가 외로움을 느끼고 있지나 않은지 다시 한 번 관심을 가져보아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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