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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마고우(竹馬故友)
04/23/18  

한국에서 친구 P가 왔다. 중학교 입학해서부터 평생을 가깝게 지내는 친구들 가운데 한 명이다. 문자 그대로 죽마고우로 고국에 갈 때마다 연락을 하면 아무리 바빠도 저녁식사를 대접해주는 친구이다. 사업상 가끔 미국에 드나들었지만 LA쪽은 처음이라고 했다.

 

그 시절 함께 어울려 놀던 친구들이 나를 포함해서 모두 8명이었다. 그 가운데 다섯 명이 LA에 살고 있다. 나머지 친구 가운데 한 명은 이미 세상을 떠난 지 10년이 지났고 다른 두 명이 한국에 살고 있으나 한 명은 소식이 단절된 지 오래 되었다. 그러니까 P는 8명 중 한국에 살면서 연락이 되는 유일한 친구인 셈이다.

 

대학을 졸업하고 교직에 몸담고 있을 때 일이다. 그해 나는 첫 졸업생을 배출하는 학교에서 내 생애 처음으로 고3 담임을 맡고 있었다. 대학 배치를 위해 학생, 학부모들과 면담하느라 정신없이 보내고 있던 어느 날, 손님이 찾아 왔다는 전갈을 받았다. 자녀의 대입 상담을 하러 온 학부형이려니 생각했다. 그런데 눈앞에 나타난 사람은 다름 아닌 P였다. 바바리 차림에 목에는 머플러까지 두르고 있었지만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이 흔히 나누는 몇 마디 말이 채끝나기도 전에 P는 자기가 대학에 가려고 한다면서 모의고사 성적이 이 정도인데 어느 대학에 가면 좋겠냐고 물었다. 의외였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남들보다 9년이나 늦게 대학에 가려고 했기 때문이다. 더구나 그런 경우라면 자신이 졸업한 학교나 사설 입시학원에서 입시 상담을 하는 것이 보통인데 P는 무슨 생각이었던지 나를 찾아왔으니 어안이 벙벙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제자들의 진학 지도를 위해 나름대로 신중하게 만들어 놓은 사정표를 살펴보았다. P가 원하는 학과에 안심하고 지원할 만한 서울소재 대학은 찾기 어려웠다. 친구에게 말했다“. 지방으로 내려가라. 서울에 있는 대학의 분교가 이번에 신설되었다. 그 대학에 입학하면 네가 첫 입학생이자 첫 졸업생이 되는 거다. 대학의 입장에서는 학교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첫 입학생들을 적극지원해 줄 것이다.”

  

P는 모 대학 지방 분교의 본인이 원하는 학과에 지원했고 우수한 성적으로 합격했다. 만학도의 길을 선택했지만 4년 동안 장학금을 놓친 적이 없었다. 졸업 후 대기업에 입사했고 부장으로 퇴사해 그가 근무하던 회사의 지원을 받아 자기 회사를 설립해서 운영하며 오늘에 이르고 있다. P와 관련된 일화를 이야기 하려면 밤을 새워도 모자라다. 그 가운데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2학년 겨울이다. 담임선생님은 조개탄을 지급하는 창고에 가서 떨어진 탄가루를 담아 오라고 했다. 당시 학교에서는 교실 난방을 위해 겨울이면 석탄가루를 어린아이 주먹만큼 뭉쳐 놓은 일명 조개탄(지금 미국 마켓에서 구입할 수 있는 차콜과 비슷하다)을 나누어 주었는데, 그양이 겨우 오전에만 땔 수 있을 정도로 적었다. 그랬던 시절인지라 담임선생님이 석탄가루를 담아오라는 것은 추위에 떨 제자들을 위한 마음에서였겠지만 그 일을 해야 할 학생으로 P와 나를 지명한 이유는 아직도 알 수 없다.

  

우리는 떨어진 탄가루를 양동이 가득 담아 날랐다. 선생님은 점심시간이 끝나고 5교시가 시작할 무렵 교실에 와서 그 탄가루에 물을 붓고 개서 금방이라도 꺼질것 같은 불길 위에 살짝 얹어 놓았다. 그러면 얼마 지나지 않아 난로를 벌겋게 달굴 만큼 불길이 활활 타올랐다. 덕분에 다른 학급은 난롯불이 꺼져 추워할 때도 우리 반은 따뜻하게 지낼 수 있었다.

  

죽마고우(竹馬故友). 대나무 말을 타고 놀던 벗이라는 뜻으로 어릴 때부터 같이 놀며 자란 절친한 친구를 일컫는 말이다. 그런 친구들은 성장 후 어디에 있든지 그들을 기억할 때마다 마음을 따뜻하게 만든다. 죽마고우는 10년이든 20년이든 세월의 흐름과 상관없이 언제 어디서 만나더라도 추억뿐만 아니라 정서적으로도 우리를 그 시절, 그때로 회귀시킨다. 그래서 죽마고우는 늘 현재진행형이다.

  

중학교 2학년 시절, 담임선생님이 우리가 주워온 탄가루로 사그라져 가는 불길을 되살려 우리가 집으로 돌아갈 때까지 추위에 떨지 않게 했던 것처럼 P와 나, 그리고 다른 친구들이 공유하고 있는 어린 시절 추억은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가끔 가슴이 식어가고 있다고 느낄 때, 우리 가슴을 다시 따뜻하게 데워주는 그 시절의 탄가루와 같은 것임에 분명하다. 그래서 그 시절사진을 꺼내 볼 때면 나도 모르게 얼굴 한 가득 웃음이 번지게 된다.

  

오늘 함께 나눈 브런치를 마지막으로 P는 고국으로 돌아갔다. 우리가 만날 때마다 함께한 시간들은 그 시절의 탄가루가 되어 식어져 가는 우리의 마음을 덥혀 주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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