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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에 달려 있다
04/23/18  

12월이다. 새해가 멀지 않았다. 연말연시를 전후해서는 각종 모임이 이어지게 마련이다. 이런 때임을 감안한 듯 점심식사 도중에 한 직원이 말했다. 모임에서 사람들이 가장 싫어하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아냐고. 모두 궁금해 했다. 내가 말했다. 잘난 척하는 사람, 자기 자랑하는 사람 아닐까? 집안 자랑, 돈 자랑, 자식 자랑, 부인 자랑, 기타 등등. 그러자 직원은 어떻게 알았냐면서 그럼 두 번째로 싫어하는 유형은 어떤 사람이겠냐고 물었다. 여러 대답이 나왔지만 답은 자기가 음식 값 지불할 것처럼 이것저것 시켜 먹고 계산도 하지않고 먼저 가버리는 사람, 회비도 안 내고 참석하는 사람 등 주로 돈에 인색한 사람들이었다. 세 번째는 모임에 온다 하고 안 오는 사람이라고 했다. 이어서 넷째, 다섯째로 이어졌다.

 

우리는 어떤 유형의 사람일까? 과연 나는?

 

이런 이야기가 나오는 것은 우리 안에 내재해 있는 욕심, 시기, 질투, 오만, 자만, 교만 등이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그 유형을 나누려는 사람이나 그 유형에 해당하는 사람이나 다 이런 마음의 지배를 받고 있다.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얘기를 들으며 자신과 비교한다. 내 집안은? 내 재산은? 내 자식들은? 내 아내는? 비교하다 보면 질투, 시기하는 마음이 생기고 그로 인해 은근히 심사가 뒤틀린다. 결국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내 마음속에서 내 생각이 문제를 만드는 것이다. 그러므로 자랑하는 사람보다 그걸 듣고 마음 상해하는 사람에게 문제가 있는 것이다.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있거나 일을 많이 해서 지치고 힘들다면 얼마든지 해결할 수 있다. 짐을 내려놓거나 일을 그만 두면 되니까. 또 사람으로부터 생긴 문제라면 그 사람을 만나 대화를 나누다 보면 저절로 풀어질 수 도 있다. 그러나 문제가 우리 마음속에서 생긴 것이라면 해결이 쉽지 않다.


세익스피어의‘오셀로’는 비뚤어진 마음 때문에 빚어진 비극을 내용으로 하고 있다. 오셀로는 선택의 순간마다 질투와 시기의 화신이 된 이아고가 쳐놓은 그물 속으로 자신을 밀어 넣는다. 자신도 모르게 스스로 미망의 늪 속으로 빠져 들어간다. 결국 오셀로는 부인 데스데모나에 대한 사랑의 기억들을 망각하고, 의심을 정당화시키고 현실을 왜곡하는 방식으로 짜 맞추어 나간다. 유혹에 한 발 한 발 빠져들면서 오셀로는 오히려 자신의 그릇된 판단을 옳다고 믿기 시작한다. 어쩌면 사람들은 기억의 기만이란 동굴 속에 스스로를 가둬 두고 그 안에서 편안해 하는지도 모른다. 그만큼 우리는 편견에 사로 잡혀 살고 있다. 한 번 빗나간 마음은 영원히 제자리를 찾을 줄 모르고 결국 참극이 벌어지고 만다.

 

글의 경우도 말의 경우와 다르지 않다. 글을 읽고 마음이 상했다고, 마음에 상처를 입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글은 글쓴이의 손을 떠나는 순간 더 이상 글쓴이의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글 속의 작가는 더 이상 실제 작가가 아니다. 독자수용비평(Reader Response Criticism)에서는 이를 숨겨진 작가라고 말한다. 숨겨진 작가 혹은 서술자(narrator)가 없는 서사체는 없다. 독자들은 바로 그들을 만나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이야기를 각자 자신의 지식과 경험을 바탕으로 자신만의 의미로 수용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어떤 글이든지 하나의 주제로만 귀결될 수는 없다.

 

이렇게 본다면 어떤 글을 읽고 마음이 상한 독자가 있다면 그것은 온전히 그의 몫이다. 글쓴이(실제 작가)가 그걸 강요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글이 마음을 상하게 한 것이 아니라 내가 그 글을 읽고 기분이 언짢아진 것이다. 물론 서사의 역량은 실제 작가의 몫이지만, 독자가 어떻게 수용할 것인가까지 실제 글쓴이가 관여하지는 않는다.

 

같은 글을 읽으면서도 그 느낌은 사람들마다 다 다르다. 저마다 수용의 모습이 다르기 때문이리라. 매주 칼럼을 쓰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기왕이면 모든 사람들이 만족할 수 있는 글을 쓰고 싶다. 이는 글 쓰는 사람의 인지상정이리라. 또 내 글을 읽은 사람이 글에 대해 이야기할 때면 평소보다 더 크게 귀가 열린다. 혹시 그런 경우를 만나면 좋은 이야기, 서운한 이야기에 휘둘리지 말자고 다짐해 보지만 좋은 이야기를 들으면 기분이 좋아지고 서운한 이야기를 들으면 마음이 무거워진다. 그럴 때면 나이를 헛먹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연말연시 말과 글이 넘쳐나는 때이다. 이럴 때일수록 사람들의 말이나 글로 상처를 입지 않도록 스스로 경계해야 한다. 설령 누군가가 목소리 높여 자랑질을 한다고 그게 뭐 대수겠는가. 진정으로 그를 위해 박수를 보내주자. 그의 말이나 글이 자랑질인지 아닌지도 결국 내마음에 달려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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