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인 칼럼
홈으로 발행인 칼럼
고원 선생 10주기에
04/23/18  |  조회:154  

시인 고원 선생께서 세상을 떠난 지 10년이 되는 해이다. 요즈음 세상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는 노벨 문학상 후보였던 고은 시인이 아니고 고원 시인이다.

 

1925년 충북 영동군에서 출생한 고원(본명 고성원) 선생은 한국 주지주의 이미지즘 시의 대표 작가 김기림 시인의 제자이다.

 

선생이 동국대학 재학 시절 스승이었던 양주동 박사는 학생들에게“나는 국보급 천재다. 나를 이을 문단의 인재는 없다. 고원이라면 앞으로 내 뒤를 이을 수 있을지도 모르지”라고 말하곤 했다고 한다. 또 피천득 교수도 후배 문인들이 모인 자리에서“고원이야말로 청출어람이다. 나는 그의 스승이지만 도저히 고원을 따라갈 수는 없다.”는 말이 전해질 정도로 선생의 문학적 재능과 식견은 탁월했다.

 

선생은 한국전쟁 중이던 1952년 피난지 부산에서 장호, 이민영씨와 함께 3인 시집‘시간표 없는 정거장’을 간행, 시인으로서의 첫걸음을 내디뎠다. 1956부터 2년 동안 UNESCO 장학생으로 영국의 케임브리지, 옥스퍼드대학, 퀸매리대학 등에서 수학했다. 1961-1964 국제 PEN 한국본부 사무국장을 역임했다.

 

 1964년 1월 미국 아이오와대로 유학을 온 선생은 1974 뉴욕 대학(NYU)에서 비교문학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이후 LA 인근 라번대학교, UC리버사이드, 칼스테이트LA, 칼스테이트 노스리지 등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1986년에는 로스앤젤레스에 글마루문학원(시창작교실)을 창립해 2008년 타계할 때까지 한인들에게 글쓰기를 지도하여 많은 문인들을 배출했다. Kansas City Star Poetry Award(1966, 아이오와시인협회), 미주문학상(1993, 미주한국문인협회), 조국을 빛낸 해외동포상(1995, 한국 정부), 국어운동공로상(1997, 한글학회), 시조 월드 시조문학상대상(2003, 시조월드), 해외한국문학상(2007, 한국문인협회) 등을 수상했다.

 

타계할 때까지 약 20여 권의 시집을 발간했으며, 그 가운데 선생의 대표작으로 회자되는‘오늘은 멀고’가 수록된 시집 <오늘은 멀고>는 선생께서 미국에 거주하고 계시던 시절인 1965년, 한국의‘동민문화사’에서 간행됐다. 이처럼 선생은 비록 미국에서 사셨지만 한국어로 한국인의 정서가 오롯이 담긴 시를 쓰시고, 시집도 한국에서 간행하셨다.

 

고원 선생의 타계 10주기를 맞아 그의 업적을 기리는 기념 사업은 진행 중이고 상징적 의미로 고인을 기념하는 시비 건립 계획은 아직도 추진 중이다. 2016년부터 고원 선생의 고향 영동에 시비 건립 협의를 위해 영동군청을 세 차례 방문했다. 해마다 담당자가 바뀌어 있었다.

 

올해도 역시 담당자는 낯선 얼굴이었다. 방문 목적을 처음부터 다시 얘기를 시작해야 하는가 보다 싶었는데 그는 그동안 문학체육과 내에서 선생의 시비 건립과 관련해 논의가 있었다면서 심천면 고당리에 있는 영동군 소유의 건물을 보수하여 영동문학관을 조성할 계획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문학관 조성 후에 영동군에 산재해 있는 시비들을 문학관으로 옮길 계획이니 고원 선생의 시비도 문학관 안에 건립하는 것이 어떻겠냐고 물어왔다.

 

나는 기존 시비들이 향후 문학관 내로 이전되는 것과 상관없이 고원 선생의 시비를 건립하는 것이 먼저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그는 고원 선생의 시비를 문학관 안에 건립할 수 있을지 여부도 지금으론 확답을 해 줄 수 없다며 고원 선생의 시비 건립은 영동군 문학회 인사들의 협조가 있어야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의 말을 듣고 결국 나는 언성을 높이고 말았다. 미국에 살면서 3년 이상을 영동군청에 드나 들며 시비 건립을 위해 노력했으며 지난해 우리가 예산을 확보했다고 하자 전임자가 고원 선생의 시비 건립 부지를 찾아보고 알려주겠다고 해서 부지 선정 소식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연락이 없어 다시 찾아 왔는데 이렇게 담당자만 바뀌면 다시 시작해야 하냐고.

 

그러자 그는“선생께서 그동안 방문했기 때문에 영동문학관 건립 얘기도 나오게 되었고, 올해는 2억 원이란 예산도 배정 받게 됐다. 영동군 출신이지만 미국에서 주로 활동했던 시인의 시비를 영동군에 건립하기로 논의하기 시작한 것 자체가 대단한 성과 아닌가. 긍정적으로 생각하면서 서두르지 말고 기다리라.”고 말했다.

 

그의 말을 듣던 중 문득 고원 선생의 고향이 영동군이라고 해서 선생의 시비를 꼭 영동군에 세워야만 하는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선생께서 문인 양성에 헌신했던 이곳 LA에 시비를 세우는 것도 의미있는 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이야 어떻든 영동군에 고원 선생의 시비를 건립하기 위한 사업은 벌써 3년 전 시작되었고 그간 수차례에 걸쳐 방문했고, 문서등을 통해 협의한 바가 있으니, 영동군 측이 보다 전향적인 자세로 고원 선생의 시비 건립 사업에 나서주길 기대한다.

 

사실 영동군 출신 문인으로 1950-1960년대 한국 문단에 고원 선생만큼 큰 족적을 남긴 사람도 찾기 어렵다. 또한 한국문학의 불모지나 다름없는 미주에서 선생만큼 모국어에 대한 사랑을 일깨워 주며 후진양성에 헌신한 스승도 없었다.

 

평생을 한국문학에 몸바친 선생의 넋이 깃들 시비가 조속한 시일 내에 세워질 수 있기를 기원한다.

목록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