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 것도 못 버리는 사람
04/23/18  

나는 아무것도 못 버리는 사람 중에 하나였다무엇을 버리려고하면그 물건과의 추억이 떠오르고 그 물건을 내게 준 사람의 얼굴이 떠오르고 언젠가 물건이 다시 필요하게 될지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아무 것도 버리지 못하는 나를 탓하거나 충고하려 드는 사람은 없었다적어도 결혼 전까지는방은 철저히 나만을 위한 공간이었기 때문에 나의 부모님께서도 방이 지저분하거나 잡동사니가 쌓여가는 것을 지적하셨지만 늘어가는 잡동사니를 문제 삼진 않으셨다때문에 나는 버리지 못하는성격이 크게 나쁘다고는 생각해보지 못 했다오히려 서랍에 고스란히 들어 있는 초등학교  1학년 때 전학가던 친구가 준 지우개를 바라보며 스스로를 자랑스러워 하곤 했었다.

그러다가 어느 날 법정 스님의 "무소유"를 읽고 나는 약간의 깨달음이 있었다베스트셀러라는 명성에 걸맞게 "무소유"는 대단히 좋은 책이었고 나는 모든 것이 부질없으니 최대한 많은 것들을 버려야겠다고 마음먹었다하지만 정작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 지 몰라 아쉽게도 실천에 옮기지는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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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결혼을 했다남편은 옷장과 서랍에 옷을 잔뜩 쌓아 두고도 입을 옷이 없어 고민하는 나를 보고 입지 않는 옷을 버리라고 충고했다내가 아쉬운 눈빛으로 "잘 두면 내가 아니더라도 누군가 입을 수있지 않을까?", "이건 내가 무척 좋아하던 옷이엇는데…..." 라고 중얼거릴 때면 그는 "지금 이 옷을 입을 수 있어입고 나갈 수 있어?" 라고 물었다그의 질문은 상당히 영향력이 있었다나는 도저히 입을 수 없을 것 같은 옷들을 커다란 쓰레기 봉지로 세 봉지 정도 챙겨 버렸다그러나 나는 이제는 다리 조차 집어넣을 수 없는 중1때 입던 청바지며 생전 입어본 적 없는 엄마가 물려주신 빛 바랜 브라우스 등을 아무도 몰래 서랍 깊숙히 잘 넣어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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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가 서점에서 아무 것도 못 버리는 사람이라는 제목의 책을 발견했고이 책은 내가 변화를 결심하는데 아주 큰 영향을 미쳤다캐런 킹스턴이라는 여류작가의 책으로서 그녀는 지난 30년 간 "공간 정리"에 대해 수많은 세미나를 열었고 또 책을 펴낸 이 분야의 선구자이다캐런은 주위에 잡동사니가 쌓여 간다면 삶에 분명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녀가 지적한 사람들이 잡동사니를 버리지 못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만일을 위하여 보관한다. 2. 나의 일부분이라고 생각한다. 3. 신분 과시용으로 여긴다. 4.물건을 소유해야만 안심한다. 5. 소유와 동시에 영역을 확장했다고 여긴다. 6. 부모에게 물려받은 수집벽이 있다. 7. 많을수록 좋다는 생각 때문이다. 8. 한 번 구입한 물건은 절대로 안 버린다. 9. 감정을 억누르기 위한 수단이다. 10. 언젠가는 쓰일지도 모른다는 강박관념이 있다.

 

나는 위에 나열한 이유 중 절반 정도는 충분히 공감할 수가 있었다. 10년 동안 한 번도 사용해 본 적이 없는 물건을 만일을 위하여 보관했었고, 6학년 때 처음 산 안경이나 운전면허 합격증서 등이 나의 일부라고생각해서 버리지 않고 보관하고 있었다그리고 친구들이 집에 놀러오면 이런 물건들이 마치 골동품이라도 되는 듯 소중히 꺼내 보여주며 자랑스러워 하곤 했던 것이다.

캐런이 지적한 잡동사니가 끼치는 영향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피로와 무기력을 가져온다. 2. 과거에 집착하게 한다. 3. 몸을 무겁게한다. 4. 몸무게를 불린다. 5. 혼란을 부른다. 6.상대방이 나를 대하는방식에 영향을 준다. 7. 모든 것을 미루게 한다. 8.주변 사람과 불협화음을 일으키게 한다. 9. 수치심을 갖게 한다. 10. 인생을 정지시킨다. 11. 우울증을 동반한다. 12. 잡동사니가 많아지면 짐도 많아진다. 13. 감성을 둔하게 하고 인생을 따분하게 만든다. 14. 노동력을 요구한다. 15. 허둥대게 만든다. 16. 중요한 일을 놓치게 한다.

이외에도 몇 가지가 더 있는데 이것들도 대부분 공감할 수가 있다이 책을 읽으며 내가 평생 동안 얼마나 잡동사니 속을 헤매었는지 절실히 깨달을 수가 있었다내 방만 잡동사니로 지저분했던 것이 아니라 내 마음도 육체도 여기저기 정리 정돈이 필요했던 것이다.

캐런은 나쁜 기억이 되살아 난다든지 지나버린 관계를 갖고 있는부정적인 영향을 주는 잡동사니는 가벼운 마음으로 버리라고 충고한다나의 경우 그동안 이런 잡동사니를 굉장히 많이 보관하고 있었다누군가에게 써 놓고 보내지 못한 편지들 (대부분의 보내지 못한 편지들은 분명 그 이유가 있다.), 나를 좋아했던 사람이 접어준 천 마리의 학(8년 동안 옷장에 넣어 두었다.), 나에게 상처를 준 사람들의 사진나 편지들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이 책을 읽고 나는 수 년 간 쌓아둔 잡동사니를 쓰레기통으로 보낼 수 있었다잡동사니를 보내며 내 마음도 훌훌 털어버릴 수 있었고 청소 시작과 동시에 마음이 가벼워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나는 이 책을 덮자마자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벌떡 일어나서 청소를 하기 시작했고 어느덧 룰루랄라 콧노래를 부르고 있었다짐이 늘어날 때쯤이면 나는 또 책꽂이에서 이 책을 찾기 시작한다대청소를 하게 되는 커다란 원동력이 되어주는 책이라 삶에 청소가 필요한 이들에게 꼭 추천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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