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가주 한인중앙상공회의소에 바란다
04/23/18  

20년 전, 미국에 와서 처음으로 시작했던 소규모 사업체를 처분하고 새로운 일을 찾고 있었다. 이민생활을 힘들어 하던 아내는 이 기회에 처가 식구들이 살고 있는 산호세로 이사하기를 원했다. 필자 역시 장인, 장모와 처남, 처형 가족들이 살고 있는 그곳으로 이주하고 싶었다.

 

이사를 결정하고 처가로 올라가 며칠간 머무르며 우리가 운영할 만한 사업체를 물색하고 다녔다. 그러던 중 산호세 인근 도시들은 주택가격이 너무 비싸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산호세에 비해 주택 가격이 저렴한 인근의 도시에 정착하기로 마음을 바꾸었다.

 

처음 찾아간 곳이 바로 산호세 남쪽에 있는 마늘 산지로 유명한 농업중심의 작은 도시 길로이(Gilroy)였다. 하지만 무작정 발품을 팔고 다닐 수는 없었다. 설사 하루 종일 발품을 팔고 다닌다 할지라도 우리가 할 만한일을 찾는다는 보장도 없었다. 그래서 찾아 간 곳이 바로‘길로이 상공회의소’였다. 이곳으로 이주하려고 하는데 할 만한 사업이 있겠느냐고 물으니 길로이 상공회의소 관계자들은 각종 자료들을 펼쳐 보이며 아주 친절하게 이것저것을 설명해 주었다. 그리고 길로이에는 스시집이 없어 스시를 먹으려면 산호세까지 나가야만 한다며 스시집을 하면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상공회의소를 나와 거리를 돌아다녀 보니 정말로 스시집이 없었다. 이후 찾아간‘샌마틴’을 비롯한 몇몇 도시의 상공회의소에서도 친절하게 도시 소개와 더불어 우리에게 어떤 비즈니스가 가장 적합한지 그 이유와 현황에 대해 상세하게 설명해주었다.

 

하지만 그렇게 이주를 준비하던 아내와 나는 여러 형편을 고려해 결국 이사를 포기했다. 그래도 이사하려고 했던 지역에 대한 관심까지 사라지진 않았는지 그 지역소식이라면 귀가 쫑긋 세워진다. 들리는 소식에 따르면 허허벌판과 다름없었던 길로이 외곽에 아울렛이 들어서는 등 대단위 상권이 들어서 도시 발전에 기여하고 있다고 한다. 이런 상권 형성에 분명히 길로이 상공회의소가 많은 역할을 했을 것이다.

 

지난해 풀러턴, 부에나파크, 세리토스, 라하브라 등 오렌지카운티 중부지역 한인업주들이 뜻을 모아 남가주 한인중앙상공회의소(회장 정재준, 이하 중앙상의)를 설립했다. 한인이 밀집한 이 지역은 작년 말 부에나파크에 한인 자본이 투입된 대규모 쇼핑몰인‘소스몰’이 들어서는 등 한인 상권이 두드러지게 팽창하고 있다. 그래서 중앙상의의 역할에 더욱 관심이 갈 수밖에 없다.


진정한 상공회의소라면 그 지역에서 사업을 하려고 구상하고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실질적으로 도움을 줄 수 있어야 한다. 기업이나 비즈니스 업체의 건전한 성장과 발전을 돕고 경영상의 문제점에 대해 조언하고, 앞으로 기업·비즈니스를 계획하고 있는 사람들의 길잡이가 되어야 한다. 물론 도시 계획에 적극 참여해 지역 발전을 도모하고 그를 통해 주민의 삶을 개선하려는 노력도 게을리 해서는 안 된다.

 

중앙상의의 정 회장은 부에나파크시의 플래닝커미셔너로 오랫동안 재직하면서 시의 개발에 직접 참여하여 한인 커뮤니티뿐만 아니라 주류사회에도 많은 영향을 주었으며, 취임 전부터 중부상의 임원들과 함께 한인 커뮤니티에 도움이 될 만한 사업계획 등을 준비해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일천한 역사에도 불구하고 중앙상의에 대한 기대가 큰 것은 정 회장의 이런 이력 때문인지도 모른다.

 

당부하고 싶은 것도 있다. 자칫 아는 사람끼리 모여 담소하고 즐기는 허수아비 단체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끼리끼리 모여 단체를 만들고, 그 단체에서 어떤 감투를 썼다는 것을 이력으로 삼아 허세를 부리려고 해서는 안 된다. 다시 말해 여러 사람을 위해 설립했다는 단체를 개인의 입신양명을 위한 도구로 삼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몇몇 사람들이 중심이 돼 설립한 기존단체를 보는 사람들의 시선은 가지각색일 수밖에 없다.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테고, 무관심을 넘어 콧방귀 뀌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럴수록 의욕적으로 단체 설립을 주도한 사람들은 많은 사람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그를 통해 설립의 목적을 더욱 분명히 인식하고 행동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그 지역 한인들도 남의 일로만 치부하지 말고 중앙상의를 비롯한 한인 단체들의 성장을 위해 힘을 보태야 한다. 한인 단체의 건전한 성장은 결국 한인들의 삶의 질 향상에도 기여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20년 전, 이사를 계획하고 이사한 지역에서 무슨 일을하며 살아갈까 하는 생각에 막막했던 마음이 지역상공회의소 방문 후 한 줄기 빛을 본 듯 환해지던 경험을 했던 나이기에 중앙상의에 대한 기대는 더욱 클 수밖에 없다.

 

남가주 한인중앙상공회의소가 한인들을 위한 등대와 같은 존재로 탄탄하게 자리잡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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