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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적 해이
04/24/18  |  조회:164  

지난주 토요일 헌팅턴비치를 찾았다. 바닷가를 걷다가 스마트폰 케이스를 파는 노점을 발견하고 그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지금 사용하고 있는 스마트폰 케이스가 금이 가고 또 일부가 깨져 새 것으로 바꾸려고 마음먹고 있던 차였다. 이것저것 손에 들고 색상과 디자인을 비교하기도 하고 마음에 드는 몇 개는 내 스마트폰에 끼어보기도 했다.

 

그러다가 새 모델의 스마트폰으로 교체한 후 그것에 맞는 케이스를 구입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들고 있던 것들을 제자리에 두고 가게를 나왔다. 몇 걸음 걷다가 벗겨두었던 옛 케이스를 다시 전화기에 끼우려고 보니 전화기에는 이미 케이스가 끼어져 있었다. 노점에서 이것저것 고르면서 내 전화기 케이스를 뒷주머니에 넣는다는 것이 그만 그 가게의 것을 넣고 금이 가고 깨진 스마트폰 케이스는 그대로 두었던 것이다.

 

아주 잠깐 망설였다‘. 그냥 가도 주인은 모를 텐데......’ 하지만 이내 노점으로 돌아가‘나도 모르게 들고 나왔다’며 진열대에 스마트폰 케이스를 걸어 두고 발걸음을 돌렸다. 속이 후련했다.

 

지금도 부끄럽다. 비록 짧은 순간이었지만 소크라테스가 말한 다이몬의 소리, 즉 영혼의 소리가 마음속에서 사라졌던 사실에 자책하고 또 자책했다. 누구라도 마음이 흔들릴 만한 고가의 물건도 아니고 그까짓 스마트폰 케이스 때문이라니.

 

지난 6일 한국의 삼성증권은 우리사주 조합원 2,018명에게 현금 배당 28억1,000만 원을 지급하는 과정에서 담당 직원의 실수로 주당 1,000원을 1,000주로 잘못 입금했다. 이로 인해 지급할 총 3,980만 원의 배당금을 무려 112조 원어치 주식으로 입금시켰다. 그렇게 배당된 28억1,000만 주는 삼성증권 총 발행 물량(8,930만주)의 30배가 넘는다.

 

뒤늦게 사태를 파악한 삼성증권은 이 사실을 직원들에게 알렸고 착오 주식 매도 금지를 공지했다. 하지만 우리사주 조합원 16명이 잘못 입고된 주식 501만 3,000주를 주식시장에 매도한 후였다. 삼성증권 주식이 갑작스럽게 주식이 시장에 대거 풀리면서 삼성증권 주가는 한때 전일 종가 대비 약 12%가량 급락하기도 했다.

 

일반 배당과 달리 우리사주 배당은 비과세 혜택 때문에 예탁결제원을 통하지 않고 증권사가 직접 처리하는데, 삼성증권은 현금배당과 주식배당을 구분하지 않고 처리하는 시스템을 운용해 오다 실수를 저지르고 만 것이다. 이런 시스템은 금융 당국 관계자들도“잘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토로할 정도로 비상식적인 것이었다.

 

한 직원의 실수는 한국 사회에 큰 파문을 일으켰다. 있지도 않은 주식‘, 유령주식’이 실제 판매로까지 이어졌고,보유하지도 않는 주식을 판매하려 했을 때에도 회사와 금융당국의 감시 시스템이 가동하지 않은 탓이다. 거기에 더해 이 사건을 통해 증권사 직원이 마음만 먹으면 가공의 주식을 발행할 수도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사람들 사이에서는 증권 거래 시스템 전반에 관한 불안감이 확산됐다.

 

엄격히 따져보면 이번 사건의 핵심은 증권사 직원의 실수와 그로 인한 증권 거래 시스템 전반에 관한 불합리함이 세상에 드러났다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몇몇 직원들의‘도덕적 해이’에 있다. 자신의 계좌에 배당금이 주식으로 잘못 들어왔다는 것을 알았으면서도, 그 사실을 안 순간 바로 시장에 내다 팔아 큰 이익을 보려고 했다. 더구나 그들은 다른 사람들의 증권거래를 도맡아 대행하는 일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잘못된 배당을 받은 2,018명 가운데 16명만이 팔아치웠으니 불행 중 다행이라고 할 수 있는 것 아니냐고 반문할수도 있지만, 고학력자로 한국 직장인 평균 이상의 수입을 올리는 그들의 도덕적 해이를 결코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된다. 1%도 안 되는 사람들이었을 뿐이라고, 다행히 잘못을 일찍 발견해 사태가 더 확산되기 전에 막을 수 있었다며 대수롭지 않게 넘어가서는 안 된다. 비록 소수의 사람일지라도 그들이 도덕적 해이를 통해 큰 이익을 얻었다면, 다른 다수의 사람들도 그 행렬에 동참하려 들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도덕적 해이는 누구를 막론하고 가장 엄하게 다스려야 한다.

 

최근 들어 한국의 정치권에서도 도덕적 해이가 화두로 떠올랐다. 많은 사람들이‘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멘스, 남이 하면 불륜)을 들먹이며 대통령에게 얼마 전 금융위원장이라는 막강한 자리에 임명한 한 정치인을 파면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파면이 될지 사퇴가 될지 혹은 유임이 될지 아직 결론이 나지 않았지만, 결론에 이르기 위해‘국민의 도덕적 눈높이’라는 전제를 다는 것은 옳지 않아 보인다. 비록 작은 것일지라도 도덕적 해이는 국민의 눈높이를 따지기 전에, 용서할 수도 용서해서도 안 되는 잘못이기 때문이다.

 

스마트폰 케이스로 인한 찰나의 갈등은 영원히 마음속에 부끄러움으로 남아 있을 것이다.

안창해. 타운뉴스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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