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월드
05/04/18  

얼마 전 한 동네에 사는 시어머니랑 백화점에 가서 쇼핑을 하고 점심도 사 먹고 왔다. 같은 날 오후에 만난 동네 엄마들에게 시어머니랑 식사한 이야기를 했더니 하나같이 반응이 별로였다. 무슨 특별한 날이어서 만난 건지, 불편하고 어색하진 않았는지 궁금해 했다. 내 생각으로 그들의 궁금증은 우리나라 기혼여성들이 가지고 있는 시댁에 대한 고정관념과 편견으로부터 기인한 것이었다. ‘시월드’란 말도 결국 기혼여성들의 그런 생각 때문에 생겨났을 것이다.  

 

아줌마들 대화에서 누군가 ‘시댁’이란 말만 시작해도 모두 대동단결하여 “뭐든 이야기해봐. 다 들어줄께. 시댁이 그렇지 뭐……” 하는 식의 진지한 분위기가 조성된다. 그러나 주위를 둘러보면 사실상 드라마에 나오는 막장 시어머니와 진상 시누이는 세상에 그리 많지 않다. ‘시월드’ 흉보기에 흔히 등장하는 시어머니들의 섭섭한 잔소리, 눈치 없고 얄미운 시누이들의 행동들을 이성적으로 하나씩 따져보면 내 친정엄마, 내 형제자매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도 알 수 있다. 남자들이 모이면 침 튀기며 군대 이야기하듯 기혼 여성들도 모이면 시댁 이야기가 빠짐없이 등장하는데 가만히 듣다 보면 크고 작은 사연들이 아무리 많아도 사실 다들 평범한 사람들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렇게 평범한 여자들이 모여서 가족을 이룬 것인데도 오랜 세월 고부간 갈등은 해결되지 않는 사회적 문제로 남아있으니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그 옛날 시어머니의 구박에 학을 떼어  ‘시’자 들어가는 모든 것에 몸서리를 쳤던 사람도 아들이 결혼을 해서 며느리가 생기면 무조건 ‘시월드’를 만들어 낸다고 하니 아들이 셋인 나는 벌써부터 겁이 난다. 남편은 농담처럼 나에게 “나중에 아들, 며느리 괴롭히지 않겠다!”는 각서를 써 놓으라고 한다. 아들에 대한 무한한 사랑이 지나치게 되면 결국 집착이 되고 그 어긋난 사랑으로 ‘시월드’에 입성하는 것은 시간 문제라는 것이다.

 

아들에 대한 사랑이 크면 클수록 며느리라는 존재는 사실 아무리 애를 써서 잘 해도 시어머니 성에 차지않는 존재가 되어버릴지도 모른다. 사위가 딸을 위해 부엌에서 설거지를 도와주면 흐뭇한데, 아들이 며느리를 대신해서 부엌에 드나들면 꼴보기 싫다 못해 오장육부가 뒤틀린다고 하니 말이다.  더욱이 자식을 통해서만 자기 가치를 높이고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다고 부추기는 사회에서 살아온 우리네 어머니들은 더욱 그러할 것이다.

 

우리 시댁 식구들이 섭섭하게 생각할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애초부터 주위 분위기나 사람들의 말에 휘둘려 무리해서 착한 며느리가 되려고 하지 않았다. 나 또한 처음부터 착하고 자랑스러운 며느리가 되고 싶은 욕심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한두 번 볼 사이도 아니고 평생 함께 갈 사람들인데 어줍지 않은 연기로 오래 버텨낼 자신이 없었다. 시댁에서는 무조건 고분고분해야 한다는 착한 며느리 콤플렉스는 분명 아름답지 않은 결말이 따를 것이라고도 생각했다. 불편한 마음은 부담을 키우고, 어느새 피해자처럼 억울해하며, 심해지면 상대를 미워하고 원망하며 결국 피하는 길을 선택하게되기 때문이다.

 

나는 열과 성의를 다하는 효부는 되지 못했지만 대신 시댁을 무조건 불편해 하고 이유 없이 색안경을 끼고 보는 마음은 일찌감치 버릴 수 있었다. 시댁 식구들을 만나면 오히려 다른 사람보다 공감할 수 있는 화제거리가 풍부해서 시간가는 줄 모르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 아이들을 예뻐하셔서 나보다 아이들을 더 잘 챙겨주시고 배불리 먹여 주시니 함께 있으면 편하고 좋다. 매일밤 잠자리에 들며 아이들과 함께 가족을 위해 기도할 수 있는 것도 행복하다.  

 

앞으로 아들 셋인 나만 잘하면 되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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