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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 도덕, 그리고 윤리
05/02/18  

그는 머릿속이 꽉 찬 남자다. 수재들만 입학한다는 최고의 명문대에서 문과와 이과를 모두 섭렵하며 박사학위를 두 개나 받았으며 무려 3개 국어에 능통하다. 굳이 이력서를 들춰보지 않아도 엘리트의 정석 코스를 밟은 그의 박학다식함은 언행에서 묻어나온다. 무엇이든 물어보면 청산유수처럼 대답하며, 가끔씩은 물어보지 않아도 넘치는 지식을 나누어 준다. 나는 지식을 향한 그의 놀라운 열정과 끊임 없는 발전이 부럽고 존경스러웠다.

 

그런 그가 어느 날 한 정치인을 저주하듯이 비난하는 모습을 보았다. 그는 자신과 직접적인 연관이 없는 한 타인이 얼마나 가혹하게 심신으로 고통을 받아야 하는가를 사실적으로 표현했는데, 죄를 지었으니 혹독한 죗값을 감당해야 한다는 맥락에 담긴 그의 바람은 설득력이 있는 동시에 다소 잔인하고 섬뜩했다. 그 순간은 왠지 그의 해박한 지식이 그의 삶을 행복하게 해주는 약이 아니라 그에게 분노를 유발하는 독으로 작용되는 것 같았다. 차라리 아무것 도 모르면 화를 낼 이유도 없을 텐데, 아는 것이 남들보다 많은 그의 눈에는 남들의 잘못된 점들이 더 잘 보이는 것 같았다. 문득, ''''''''''''''''선하게 쓰이지 못하는 지식이 과연 훌륭한 지식일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도덕’이라는 관점에서는, 그런 생각을 하는 내가 잘못된 이상주의자일 뿐인지도 모르겠다. 어느덧 이 사회에서의 ‘죄’라는 것은 사람들이 만들어 낸 법의 관행적 여론으로 다스려지며, 바야흐로 타인의 비윤리적 행동을 방관하는 것 자체가 또 다른 범죄로 여겨지는 시대가 되었다. 똑똑한 그의 말대로 도덕적인 상식과 법치주의의 여론이 완벽하게 적용된다면, 죄명이 세상에 알려진 이상, 예외로 자비와 용서를 베푸는 것은 더 많은 지식인들의 화를 부르는 불공평함일 뿐이다. 직권남용을 한 정치인은 여생을 자신의 죄를 뼈저리게 후회하는시간을 보내야 이 세상의 속이 시원할 것이다.

 

도덕적 잣대가 나쁘다고 비꼬려는 게 아니다. 도덕이란 죄악이 판을 치는 이 세상에서 비교적 원만한 인간 상호 관계를 성립하고자 하는 의지들이 결합되어 탄생한 문명의 최선 아닌가. 문제는 수많은 이들이 너무나 마음대로 본인들의 잣대로 타인에 대한 비판과 오해를 일삼으며 살아간다는 사실이다. 물론 필자도 예외가 아니다. 외적으로 표출되는 단면적인 행동으로 한 사람의 전면적인 내면의 가치를 꿰뚫어 보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현실을 망각한 채로 모두가 모두를 끊임 없이 심판한다.

 

한 사람의 선택에 흠잡을 만한 결과가 수면에 오르며 질타를 받게 되는 기준이, 범법이나 불법이 아님에도, 그저 그것을 문제 삼는 이들의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문제 시 되며 가혹해졌다. 특히 공인은 더 ‘좋은 사람’으로 살기가 힘들다. 한 순간의 상황에 부적절한 인상만 사진에 찍혀도, 무심코 말을 내뱉어도, 멋모르던 시절에 실수를 했어도, 남들이 매일 하는 실수를 해도, 지극히 단면만을 겪어 볼 사람들로부터 미움을 사며 피해의식에 젖은 여론의 뭇매를 맞는다.

 

과연 우리는 무슨 억하심정으로 남들에게 양심의 가책이라는 채찍질을 가할까? ‘비록 내가 죄를 이만큼 지었지만, 옆집 이지연이는 상대적으로 훨씬 더 흉흉합니다!’ 라는 변론을 하기 위해? 우리는 눈에 보이는 기준으로만 서로를 판단하기에 급급한데, 언제부턴가 사람들이 생각하는 최고의 사회는 사랑이 아닌 비난이 넘쳐나는 곳이다. 우리가 이 탈진실의 시대에서 감정에만 치우쳐 너무 큰 에너지를 소모하며 실속을 찾는 법을 잊고 살아가고 있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감정으로만 믿는데 익숙한 우리에게 아무리 선의를 지니고 있어도 행동의 결과가 항상 그와 일치하기에 힘든 이 사회에서 진실이 정말 의미가 있을까 싶은 회의가 든다.

이지연 변호사. JL Bridge Legal Consulting, info@jlbridge.com, (213) 344-9929, (949) 477-3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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