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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롱면허
05/08/18  |  조회:131  

내가 살던 남가주에서는 차가 없는 생활을 상상하기 힘들다보니 의례 나이가 되면 운전 면허를 취득하고 망설임 없이 운전을 한다. 나 역시 열여덟에 운전면허를 취득하고 스무 살이 되었을 무렵부터 운전을 해 왔지만 귀국 후 한국에서 운전을 하려고 하니 덜컥 겁부터 났다.

 

더욱이 서울은 워낙 대중교통 시스템이 잘 되어 있다 보니 운전을 하지 않고도 웬만한 생활에 불편이 없다. 그래서 지난 여름부터 쭉 운전하는 것을 미루며 서서히 장롱면허자 대열에 들어서고 있었다. 장롱면허란 운전면허를 딴 후 오랫동안 운전을 하지 않는 사람의 면허증을 일컫는 말인데 주위에는 이런 사람 천지였다. “면허는 있는데 운전은 못 하겠다.”는 사람들이 정말 많았고 그들이 운전하지 않는 이유에 나도 동감했다.

 

일단 주차가 어렵다. 어딜 가나 주차 공간이 많지도 않지만 어찌나 좁기까지한지 후방 주차가 필수인 주차장이 많은데 여태껏 후방주차 없이 주차해 온 나에게 이는 가장 자신 없는 종목이었다. 넓은 주차장에 주차 공간 걱정 없이 과감하게 주차하는데 익숙한 나에게 꼼짝달싹하기 힘든 공간에서 뒤로 앞으로를 반복하며 주차하는 것은 시작 전부터 겁나는 일이었다.

 

그리고 주행 중 변수가 너무 많다. 도로에 일반 자가용, 버스, 총알택시, 초보운전, 오토바이, 트럭 등 다양한 차량이 제각각의 방식으로 운전을 하다 보니 예상치 못한 변수와 위험이 늘 도사리고 있다. 배달 오토바이들은 신호도 무시한 채 불숙불쑥 튀어나오기 일쑤고 택시들은 아무데서나 정차를 한다. 짐을 잔뜩 실은 위태로운 1톤 트럭들, 무단횡단하는 노인들도 놀라게 하는데 한몫 단단히 한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나 혼자 아무리 능숙하게 운전을 한다 해도 철저한 방어운전 없이는 도로로 나설 수가 없다.

그리고 나는 자타공인 길치라 익숙하지 않은 서울 도로는 나에게 거의 미로 수준으로 느껴진다. 물론 네비게이션의 발달로 예전보다 길 찾기가 쉬워진 것은 인정하지만 트래픽 상황에 따라 네비게이션의 안내가 수시로 바뀌다보니 기본적인 지역에대한 이해가 전혀 없는 경우 봉변을 당하는 일도 종종 발생한다.

 

핑계거리를 찾다보면 끝도 없고 이러다가 나도 주위 사람들처럼 결국 장농면허 신세를 면치 못할 거란 생각에 용기를 냈다. 그래서 나는 “장농면허 탈출 여성운전자 전문”이라는 슬로건을 앞세운 운전 연수 업체를 찾아 연수를 세 시간 받았다. 그리고 비좁은 동네길 운전과 후방 주차에만 주력했다. 몇 달 만이지만 이십 년 넘게 운전을 해왔던 터라 습관처럼 몸이 기억을 하는지 주행에는 어려움이 없었다. 그러나 역시 처음해보는 후방주차만큼은 연습이 많이 필요했다. 그동안 워낙 대중교통 시스템이 잘 되어 있는 서울에서 차 없는 신세도 그닥 나쁘지 않았지만 이제 또 다른 옵션이 생겼으니 조금 더 편리해지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혼자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서 후방 주차를 연습하던 며칠 전, 주차장 입구로 들어오던 차 한 대가 있었다. 어찌나 음악을 크게 틀었던지 그 차도, 내 차도 창문이 끝까지 닫혀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노래소리가 온 지하주차장에 울려 퍼졌다. 물론 편견이긴하지만 대체적으로 이렇게 차에서 음악을 크게 듣는 경우는 음악의 장르가 팝, 힙합, 락인 경우가 많은데 귀에 익숙한 노래는 발라드였다. 지하주차장을 가득 메우던 구슬픈 노래의 정체는 조덕배의 “그대 내맘에 들어오면은”이었다.

 

“뛰어 갈 텐데 날아 갈 텐데
그대 내 맘에 들어오면은”

 

노래가 울려퍼지던 차는 곧 능숙하게 후방주차를 마치고 차에서 내린 50대의 여성운전자는 유유히 엘리베이터쪽으로 걸어갔다.  가슴을 뒤흔드는 이 애처로운 노래가 그날에 나에겐  마치 응원가처럼 든든하게 느껴졌다. 장농면허 탈출을 외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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