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05/29/18  

남편과 단둘이 여행을 다녀왔다. 우리는 부부가 되기 이전에 어릴 적 동창이었고 오랜 친구였기 때문에 둘이서 꽤나 죽이 잘 맞고 서로를 잘 아는 편이라 언제나 최고의 여행 파트너로 손색이 없다. 2박 3일간의 여행이라 멀리 갈 수 없어서 가까운 나라 일본을 선택했다. 첫날은 규슈 오이타현 유후인에서 하루를, 둘쨋날 후쿠오카로 이동해서 마무리하는 일정이었다.

 

일본에서 여섯 번째로 큰 도시인 후쿠오카는 한국의 여느 도시와 많이 닮아있는데다가 한국인 관광객이 넘쳐나고 있어서 편리하긴 했지만 이국적인 느낌을 받을 수는 없었다. 검색해서 찾아간 맛집에는 보란듯이 식당 손님의 90%는 한국인이었고 한국인들이 많이 구매한다는 인기 제품들은 모두 한국어로 표기가 되어 있고 그 옆에 1인당 구매 한도도 명시되어 있었다. 이번 여행에서 후쿠오카보다는 작은 시골 마을 유후인이 훨씬 내 마음에 들어왔다.

 

온천으로 유명한 유후인은 후쿠오카에서 버스로 대략 한시간 반쯤 걸리는데 유후인 역에서 긴린코라는 호수까지 아기자기한 다양한 상점들과 미술관, 식당 등이 쭉 이어지며, 주요 거리에는 역시나 관광객들이 넘쳐나고 있었다. 인적이 드문 골목골목 사잇길을 골라 걸으니 훨씬 정답고 운치가 있었다.

 

유후인의 진짜 매력은 우리가 예약한 료칸(일본식 여관)에 들어서면서부터 시작되었다. 중심지에서는 조금 떨어져있지만 만 평이 넘는 넓은 부지 위에 자연 그대로의 정취를 담아낸 료칸이었다. 전 객실 독립 별채, 절경을 볼 수 있는 노천탕, 직원들의 친절한 서비스, 예술 작품 같았던 가이세키(작은 그릇에 다양한 음식이 조금씩 순차적으로 담겨 나오는 일본의 손님 접대용 코스 요리) 등 모든 것이 훌륭했지만 이 모든 것을 더 완벽하게 완성시킨 것은 바로 자연이었다.  

 

해가 지고 어둑어둑해지니 빗소리가 더욱 정겹게 들려왔다. 숲속에서 듣는 빗소리는 도시에서 듣던 빗소리와는 완전 다르다.  또롱또롱 악기처럼 소리를 내는데 이에 맞춰 개굴개굴 개구리와 맹꽁이 소리도 꽤 우렁차게 울려 퍼졌다. 야단스럽게 울어대는 개구리들의 합창이 이토록 듣기 좋은지 처음 알았다.  괜히 정겹고 그냥 좋다. 비만 오면 어머니 무덤이 떠내려갈까 울어댄다는 전래동화 속 청개구리도 생각나고 개구리들은 도대체 평소에는 어디서 무얼 하다가 비만 오면 이리도 요란하게 울어대는 것인지 궁금해지기도 했다.

 

비가 멈춘 아침에는 사방에 새소리가 가득했다. 내 수준에서 구별할 수 있는 꾀꼬리, 뻐꾸기, 까마귀 소리 외에도 이름을 알 수 없는 새 소리도 서너 종류 있는 걸로 봐서는 새 종류가 꽤 다양한 모양이었다. 조용하고 평화로운 숲속에 비온 후 맑은 공기를 가르며 들리는 새소리를 듣고 있자니 천국이 바로 이런 곳이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게 했다. 살아 숨쉬는 경이로운 자연 앞에서는 늘 할 말을 잃고 감탄할 뿐이다.

 

이번 여행으로 시내 비지니스 호텔의 좁은 방보다 자연을 품고 산 속에 위치한 료칸의 전통 다다미방이 훨씬 근사할 수 있다는 사실을 몸소 체험할 수 있었다. 도시 관광, 쇼핑, 호텔에 지쳤다면 새로운 힐링을 체험할 수 있는 료칸 여행을 추천한다. 저렴한 비용은 아니지만 나의 찬양과 탄성이 결코 과한 것이 아님을 깨닫게 될 것이다.

 

나무, 풀, 꽃, 새, 곤충, 개구리, 비, 별, 구름, 안개, 바람, 흙은 광대한 이야기를 품고 우리에게 다가왔다. 자연만이 만들어내는 수 많은 형상, 소리, 냄새로부터 예상치 못한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나는 이번 여행에서 내가 추구하는 여행의 색깔을 뚜렷하게 알 수 있었다. 아침이면 새소리가 들리고 바람이 불면 나뭇잎 춤추는 것을 내다볼 수 있으며 밤에는 별이 쏟아지는 것을 보면서 그 어느때보다 설레었다.  살아 숨쉬는 자연을 느끼고 그 안에서 쉴 수 있는 여행이 내가 가장 행복할 수 있는 여행임을 깨달았고 이제는 또 다른 여행을 준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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