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야 1.5세 아줌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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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니까
03/31/25  

3월 중순, 서울 낮 기온이 25도까지 오른다는 예보를 봤을 때, 내가 가장 먼저 떠올린 건 "그래서 창문을 열 수 없다는 거지?"였다. 날이 포근해지면 제일 먼저 하고 싶은 건 창문 활짝 열고 집 안 공기를 환기하는 일이다. 그런데 꼭 그런 날이면 한강 너머로 뿌연 먼지가 밀려오고, 기상청은 기계처럼 똑같은 멘트를 반복한다. “미세먼지 최악입니다. 외출을 자제하시고, 마스크 착용에 유의하세요.” 날씨는 따뜻한데 창문은 닫혀 있고, 거리엔 봄이 왔는데 나는 집 안에 갇혀 있는 기분이 든다.

봄은 원래 꽃이 먼저 오는 계절이라고 배웠는데 요즘 봄은 먼지와 함께 온다. 황사, 미세먼지, 건조주의보, 산불 뉴스는 심난하기만 하고, 알레르기 경보까지 더해지면 외출이 걱정스럽다. 반가워야 할 계절이 어느 순간 조심스러운 계절이 되어버린 것이다. 꽃보다 마스크부터, 알레르기약부터 챙기게 되는 게 요즘의 봄이다.

그런데도 거리엔 사람이 넘쳐난다. 동네길을 걷다 보면 반바지, 반소매 옷을 입은 사람이 보이고, 유모차를 밀며 햇볕을 즐기는 가족들이 있다. 산책 나온 강아지들의 발걸음은 더 발랄하고, 올림픽대로 한켠엔 성급한 봄꽃들이 조금씩 피기 시작했다. 테라스 있는 카페에는 빈자리를 찾기 어렵다. 햇살이 따뜻한 날이면 다들 집 안에 있기엔 뭔가 억울하다는 표정으로 나와 걷는다. 나도 그렇다. 눈이 간지럽고 목이 따가워도, 오늘은 나도 봄을 좀 즐기고 말 테니까.

날이 풀리기 시작하면 나는 자연스럽게 운동화를 꺼낸다. ‘이제 다시 걷자, 뛰자’ 다짐도 해보고, 장바구니엔 살 빼고 입을 새 옷을 담아두고, 운동과 식단 어플을 다시 깔아본다. 텀블러에는 레몬 한 조각 띄운 물을 채우며 나름의 의지를 굳혀보지만, 사실 일상은 크게 바뀌지 않는다. 운동화는 여전히 주인을 기다리고 있고, 체지방률도, 미세먼지 수치도, 내 결심도… 결국 그대로다.

거기에 요즘은 목까지 칼칼하다. 마스크를 열심히 쓰지 않아서 그런지, 알레르기 때문인지 미세먼지 때문인지 아침마다 목이 따갑고, 눈은 간지럽고, 재채기가 멈추지 않는다. 그래도 밖에 나가고 싶은 마음은 사라지지 않는다. 몸은 불편한데 마음은 자꾸 움직이려 든다. 그게 봄이다.

봄은 나를 설레게 하면서도 묘하게 피곤하게 만든다. 어디든 가야 할 것 같고, 뭘 해야 할 것 같고, 이 계절을 그냥 흘려보내면 안 될 것 같은 압박감. 날씨는 좋은데 마음은 복잡하고, 괜히 움직여야 할 것 같고, 바빠야 할 것 같고, 더 열심히 살아야 할 것만 같은 강박이 몰려온다.

그래서 자꾸 뭔가라도 하게 된다. 딱히 목적이 없어도 동네 마트까지 괜히 걸어가고, 평소엔 잘 가지 않던 동네 공원 벤치에 앉아 잠깐 하늘을 올려다보기도 한다. 시야에 꽃 한 송이만 들어와도, 얼굴을 스치는 바람이 조금만 덜 차가워도 그게 하루를 버티게 해주는 기분이다. 생각해 보면 이 계절은 뭔가를 완전히 바꾸진 않아도 나를 잠깐이라도 움직이게 만든다. 어쩌면 봄은 그런 계절인지도 모르겠다. 뚜렷한 변화보단 ‘움직이고 싶은 마음’ 하나만으로 충분한 계절.

그래, 누가 뭐래도 나는 이 계절을 좋아한다. 이 불완전하고 어딘가 어수선한 봄을. 먼지가 있고, 알레르기가 있고, 목이 칼칼해도, 봄은 이상하게 내 마음을 들썩이게 만든다. 겨울 내내 움츠러들었던 몸과 마음이 햇살 아래에서 살짝 풀리는 느낌이 좋다.

어제 근무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거리의 풍경이 어딘가 들떠 있는 것만 같았다. 그리고 그 짧은 순간만큼은 먼지도, 미세한 불안도 잊고, 그냥 지금 이 계절이 꽤 괜찮다고 느껴졌다. 올해도 봄은 미세먼지와 함께 시작했지만, 나는 그 틈을 비집고 나만의 봄을 조금이라도 붙잡아보려 한다. 요즘은 뉴스에서도, 거리에서도 가볍게 웃을 수 없는 날들이 이어지고, 산불처럼 마음을 답답하게 만드는 일들이 끊이지 않는다. 즐거운 일도, 특별히 재미있는 일도 없지만 그래도 봄은 온다. 피할 수 없는 계절이라면 콧물 좀 흘리고 눈물 좀 닦아내며 그 안에서 나만의 속도로 조용히 걸어보는 것. 그게 올봄, 내가 이 계절을 버티는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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