땡스기빙
04/23/18  

추수감사절의 유래는 미국에 정착한 영국 청교도들이 이듬해 11월 추수를 마치고 3일간축제를 연 데서 비롯되었다고 한다나는 Thanksgiving이라는 단어 자체를 참 좋아한다. Thanks  giving이 합쳐진 이 단어가 주는 의미나 이날을 보내는 방법은 각자의 몫이겠지만 나에게 추수감사절,  이 무렵은 감사를 표현하는 시기라고 여겨진다.

 

대학교 2학년 가을 딱 이맘때였던 것 같다초보 운전 딱지를 뗀 지 얼마 안 되어 처음으로주행 중에 차 사고를 냈다빨간불에 차를 세우고 잠시 딴짓을 하다가 신호가 바뀌었다고착각하고는 엑셀을 밟는 순간 앞차를 들이박고 말았다태어나서 처음으로 낸 사고여서 그런가 몸으로 느껴지는 충격이 대단했다.  문을 열고 내리면서 앞차가 반파라도 된 줄 알고엄청 가슴을 졸였다근데 막상 차에서 내려보니 내차 번호판만 조금 찌그러지고 앞차는 스크래치조차 없이 멀쩡해 보였다안도의 한숨을 내쉬는데 50대쯤 되어보이는 동양계 중년남성이  앞 차에서 내려 다가왔다나는 처음 낸 사고에 놀라 어쩔 줄 몰라 얼이 빠져 있었는데 그는 꽤나 여유있는 표정으로 차를 살폈다분명 멀쩡해보이는데 꼼꼼히 차를 살피는모습에 괜히 가슴이 조마조마해서 사고를 낸 장본인임에도 사과를 잊은 채 그 옆에 멀뚱멀뚱 서있었다그때 이쯤하면 됐다 싶었는지 그가 다가와 뜬금없이 악수를 청했다그 동네어느 성당의 신부인데 자동차 명의가 성당 앞으로 되어있어 혼자 결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며  차가 아무 이상없는지 점검한 후에 연락을 주겠다고 했다헤어지며 그는 좋은 하루 보내라는 인사도 잊지 않았다불안한 마음에다가 차가 크게 이상이 없는데 깐깐하게 구는게 밉살맞게 생각되어 약이 올라 있던 나는 인사를 하는 둥 마는 둥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낭패였다내 과실로 가만히 있던 멀쩡한 차를 들이박았으니 부모님께 혼날 것도 걱정되었고차 수리비에 보험료도 인상될 거라 생각하니 눈물이 나기도 했다그의 전화를 기다리는 며칠이 이제 막 스물이 지난 나에게는 시련의 시간이였다

 

한 삼일쯤 지나서인가 그 신부님의 비서가 전화를 걸어 다행히 자동차에 아무 이상이 없음을 알렸다며칠간 가슴을 졸이며 기다렸는데 안도의 한숨과 함께 여러 가지 생각이 교차했다정작 사고는 내가 내놓고 사과는 커녕 깐깐하게 군다며 불편한 심기를 얼굴에 드러내고있었던 것이 마음에 걸렸다사고 당시에는 당황해서 아무 생각이 없었는데 모든 게 미숙했던 풋내기에게 차근차근 설명해 주고 여유를 잊지 않았던 점도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마침전화를 받은 며칠 후가 추수감사절이었다감사 카드라도 보내드려야겠다고 생각했다그리고 다음날 감사 카드를 구입하고 뭐라 적을까 고민하다가 깜빡 잊고 며칠이 지나버렸다.추수감사절 디자인의 카드를 구입했는데 막상 추수감사절을 넘기고 나니 그 카드를 사용하기가 애매해져서 카드를 다시 구입해야하나 망설이다가 또 시간이 흘러버렸다그리고 지금까지도 감사의 인사를 전하지 못했다.

 

지금은 세월이 너무 지나 메모해두었던 주소와 전화번호도 분실했고 알려주셨던 성당 이름도 도무지 기억나지 않는다그 부근에 성당이 족히 열 개는 넘고 또 세월이 흘러 신부님의임기가 끝나 다른 성당으로 옮겼을 가능성까지 생각하면 그 분을 찾을 수 있는 기회를 영영놓쳐버린 것 같다진작 인사를 미루지 않았더라면 이렇게 두고 두고 후회하지 않았을 텐데생각했지만그 이후에도 나는 타이밍을 놓쳤다는 핑계로 감사 인사를 미루다가 결국 두고두고 후회한 적이 몇 번 더 있었다.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가족이나 친한 친구들에게는 괜히 멋쩍어서 고마운 마음을 제대로전하지 못하고 어물쩡 넘어가는 경우가 허다했다그러나 남에게 친절이나 호의를 베푸는것만큼 감사를 전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깨달은 이후 나름 노력은 계속하고 있다.

 

상다리 휘어지는 추수감사절 만찬도 좋고 블랙프라이데이 대박 세일도 기대되지만 고마운누군가에게 감사드릴 때를 엿보고 있었다면 지금이 기회다진심을 전하는 간단한 메시지만으로도 가장 좋은 감사 인사가 되어줄 거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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