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의 토마토
06/04/18  

4월초 뒤뜰에 토마토 세 그루를 심었다. 매일 물을 주었다. 평소에 나갈 일이 없었던 뒤뜰에 나가는 시간이 많아졌다. 토마토는 아주 잘 자랐다. 잎이 무성하고 가지가 번지기 시작했다.

 

토마토 가지를 쳐주어야 줄기가 굵어지고 열매도 실하다는 남들 얘기를 듣고 가지를 쳐주었다. 그러다가 그대로 두는 편이 더 자연스러운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자라는 대로 두고 보기로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1미터 이상 커졌고 넝쿨이 옆으로 번지기 시작하더니 담장을 완전히 덮어버렸다. 전에 심었던 토마토는 이렇게 무성하게 번지지 않았기에 혹시 줄기와 가지만 무성하고 열매를 맺지 않는 것은 아닌가 걱정했다. 그러나 기우에 지나지 않았다. 토마토는 엄청나게 많은 꽃을 피웠고, 꽃이 지면서 열매가 되었다. 이제 그 열매들이 점차 붉은 빛으로 바뀌어가고 있다.

 

그 동안 방치해 두었던 알로에에도 물을 주기 시작했다. 고사 상태에 있던 알로에는 서서히 푸른빛을 띠기 시작했다. 죽은 줄만 알았던 알로에에 생명의 빛이 도는 것을 보니 신이 났다. 새 흙을 사다 뿌려주고 물도 자주 주었다. 이제 완전히 살아났다.

 

아침저녁 하루 두 번은 들여다보게 되었다. 그리고 하와이안 꽃으로 유명한 플루메리아 세 그루의 꺾꽂이에도 성공했다. 가지를 잘라다 심었는데 잎이 나오고 키가 쑥쑥 자라고 있다. 꽃이 피기를 기다리고 있다. 아름다운 꽃도 꽃이지만 그 향기가 기대된다. 뒤뜰에 있는 시간이 점점 길어졌다.

 

뒤뜰에 한참 몰두 해 있던 5월 중순에 여러 가지 이유로 연락이 닿지 않았던 선배 두 분과 만났다. 한 분은 17년 만에 만났고, 다른 한 분은 8년만이다. 두 분도 서로 연락하지 않고 살았다. 예전에 가깝게 지냈기에 차 한 잔 마시는 동안 지난 날로 돌아갈 수 있었다. 마음은 젊은 날로 돌아가 음성이 커졌고, 웃음꽃이 그치지 않았다. 그러나 육신은 그 전과 다름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우선 외모에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고 목소리에 기(氣)도 빠져있었다. 화제도 건강에 관한 내용이 주를 이루었다.

  

찻집에서 식당으로 자리를 옮겼다. 한 분은 지팡이를 짚고 걸었고 다른 한 분은 예전과 다름없이 꼿꼿하게 걸었다.

식당에서도 여전히 건강 얘기를 많이 했다. 전에 만나기만 하면 쏟아놓던 무용담이나 연애담은 나오지 않았다. 신장이 나빠 매주 투석을 하고 있다는 선배는 술잔을 받지도 않았고, 음식도 거의 들지 않았다. 귀가 잘 들리지 않는지 자주 한 말을 되풀이해달라는 눈짓을 보냈다. 예전에 말술을 자랑하던 다른 선배도 술은 입에도 대지 않는다며 술 대신 보리차를 맥주잔에 따라 마셨다. 한 분은 9년 선배, 다른 분은 7년 선배다. 바로 7년 뒤, 9년 뒤의 내 모습이라 생각하니 서글퍼졌다.

 

그들의 찬란한 5월은 어디에도 없었다. 다 죽어가던 알로에에 물을 주고 양분이 많은 흙을 뿌려주어 다시 소생시켰던 것처럼 우리 인간의 육신도 다시 되살릴 수는 없는 것일까? 그날 이후로 뒤뜰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토마토, 알로에, 플루메리아에 물을 주면서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내 마음의 소리도 들을 수 있었다.

 

바쁘게 오가는 마음의 소리를 듣는다. 그 마음이 하루에도 수십 번씩 바뀌고 있다. 태어나 늙고 병들어 죽는 인간사에 대한 내 마음조차 고정되어 있지 않았다. 병이 들면 약을 먹고 수술을 하고 어떻게 해서든지 고치려고 노력해야겠다는 마음이 어느 때는 굳이 고치려 하지 말고 모든 것을 하늘의 뜻에 맡기고 그대로 살다 가겠다는 생각으로 바뀐다. 죽으면 화장해서 산에다 뿌리라고 가족들에게 이미 말해 두었음에도 가끔은 남들처럼 흙속에 묻히고도 싶다.

 

어찌 사람 마음이 이렇게 극에서 극으로 변할 수 있을까 놀랍다. 그러나 그것이 마음의 실체이다. 마음은 계속해서 바뀌며 끝없이 흘러간다. 그 끊임없이 변하는 마음에 내 자신을 속절없이 맡기고 같이 흘러가다 보면 부대끼고 시달리게 마련이다. 수시로 변하는 마음일지라도 그 방향을 굳게 잡고 살다보면 평안의 실마리를 잡을 수 있으리라.

 

이제 6월이다. 한 해의 절반 속으로 들어간다. 2018년 후반기를 준비할 때다. 그동안 있었던 속상하고 가슴 아픈 일들은 남은 5월에 모두 담아 보내고 오는 6월을 희망과 감격으로 맞이해야겠다.

 

토마토 알이 제법 굵어졌다. 점점 붉어지고 있다. 첫 수확한 토마토는 선배들과 나눠 먹을 생각이다.

 

안창해. 타운뉴스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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