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52시간의 변화
05/29/18  

한국에 와서 좀처럼 적응하기 힘들었던 것은 남편의 출퇴근 시간이었다. 매일 아직 동이트지 않은 새벽에 일어나 회사 셔틀 버스에 오르고 주 삼사 일은 야근을 하고 아이들이 모두 잠든 밤이 되어야 귀가, 그야말로 깜깜할 때 나가서 깜깜할 때 들어오는 어두운 날들의 연속이었다. 미국에서는 언제나 육아와 가사일에 적극적이던 남편도 서서히 관망자처럼 변해갔고 매일 아이들이 나에게 아빠 언제 집에 오냐고 물을 때마다 스트레스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의논할 일이 있어도 대화할 시간이 없어서 문자 메시지나 이메일로 대화를 대신하는 일도 잦았고 만성피로에 시달리는 남편을 바라보는 것도 안쓰러웠다.

 

무엇을 위해 이렇게까지 살아야하나, 서서히 불만이 쌓여 갔고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를 읊조려 보아도 그다지 위로가 되지 않았다. 옛날에는 더 심했다. 다들 그렇게 살고 있다며 체념하고 받아들이라는 주위의 조언도 어쩐지 야속하게 들려 왔다.  남편의 잘못이 아니고 어쩔 수 없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꿈틀대는 불편한 심기를 숨기지 못하는 일도 생겨났다.

 

그러던 남편이 5월부터 일찍 집에 오기 시작했다.  7월부터 시행되는 주 52시간 근무 예행 연습 기간으로 두 달 먼저 시작된 것이다. 원래 남편은 삼시세끼를 모두 회사에서 먹었지만 귀가 시간이 앞당겨지며 저녁 식사를 집에서 할 수 있게 되었다. 남편이 없을 때는 아이들과 저녁 6시 전에 저녁 식사를 했지만 이제는 조금 기다렸다가 남편이 집에 오면 다 함께 저녁식사를 한다.  남편은 식사 후에 아이들 숙제를 봐주기도하고 함께 동네 산책을 가기도 하고, 좋아하는 TV 프로그램을 시청하고, 쇼핑을 가기도 한다. 귀가 시간이 한 시간 앞당겨지고 야근이 사라졌을 뿐인데 그야말로 삶의 질이 달라졌다.

 

국내 최초로 도입되는 법정 근로시간 시행을 앞두고 경쟁력 약화, 생산성 저하, 임금 감소 등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끊이지 않지만 나는 희망을 본다. 한국에서 주 6일 근무에서 주  5일제로 바뀐 것이  불과 십여 년밖에 되지 않았다. 처음 시행할 때 주말에 일하지 않고 놀게 되면 당장 나라가 망하기라도 할 것처럼 곧 경제가 위태로워질 것이라는 우려와 반발이 엄청났지만 어느덧 자리를 잡아 이제 누구 하나 주 5일제를 문제시 하지 않는다.  이 모든 것이 좀 더 풍요롭고 윤택한 삶을 위해 나아가는 과정이라 생각된다.

 

한 시간 일찍 집에 오는 것이 뭐가 그리 달라지는 것이냐는 사람들도 있지만 분명 다르다. 나는 그저 하루에 한 끼쯤은 가족 모두 함께 밥을 먹고 싶은 것이다. 거창하게 일과 삶의 균형이라는 뜻의 워라벨 (Work and Life Balance) 까지 들먹이며 설명하지 않아도 우리 모두에게는 개인의 삶을 즐길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한 시간이 모든 것을 바꿔놓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적어도 우리집에서는  변화가 시작되었고 나는 이 변화를 두 손 들어 열렬히 환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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