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나지 않은 여행
06/09/25  

올해도 어김없이, 우리는 함께 여행을 계획했다. 여섯 명의 친구가 모여 어느새 익숙해진 방식대로 각자의 역할을 나눴고, 채팅방은 날마다 설렘으로 채워졌다. 호텔을 예약하고, SRT 열차표를 예매하고, 가보고 싶은 맛집과 카페도 지도 앱에 차곡차곡 저장했다. 매년처럼 맞춰 입을 파자마도 준비했고, 올해는 어떤 복장이 좋을까, 여행 전에 살을 빼지 못해 아쉽다는 말들이 오갔다. 어떤 친구는 “지난 여행에 입었던 바지는 이제 들어가지도 않네”라고 너스레를 떨었고, 누구는 “이번 여행까지는 일단 먹자”며 기대 섞인 체념을 던졌다. 현실적인 고민들 속에서도 우리는 설렘을 키워갔다. 일상에서 벗어나 잠시 ‘함께’로만 존재할 수 있는 시간. 우리는 그 시간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었다. 그렇게 모든 준비가 거의 끝나가던 바로 그때, 예상치 못한 일이 일어났다.

여행을 나흘 앞둔 날이었다. 여섯 명 중 한 친구의 중학생 아들이 자전거를 타다 넘어져 신장이 파열됐고, 급히 응급 치료를 받은 뒤 중환자실로 옮겨졌다. 다음날 일반 병실로 옮겨졌지만 친구는 밤샘 간병에 들어갔고, 우리는 갑작스럽게 정적에 휩싸였다. 전날 채팅방에서 웃으며 나눈 이야기들이 무색할 만큼 모든 흐름이 바뀌었다. 누군가 “완전체가 아닐 바엔 가지 말자”라고 조심스럽게 말했고, 나머지 넷은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우리는 한치의 미련도 없이 이번 여행을 접었다. 여행을 멈춘 건 분명한데, 이상하게도 그 선택이 하나도 아쉽지 않았다.

삶이란 본디 그런 것이었다. 단단히 준비하고, 치밀하게 계획해도, 전혀 다른 방향에서 그 계획을 무너뜨리는 일들이 너무도 쉽게 일어난다. 그것은 무언가 잘못했다기보다, 인생이 원래 그렇게 설계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가 어떻게든 통제하려 애쓰는 것들은 실상 그리 오랫동안 우리 손안에 머물지 않는다. 하루를 단단히 붙잡고 있는 것 같아도, 어느 순간 손가락 사이로 흘러내리는 것이 삶이다.

그 사실을 처음으로 뼈아프게 체감했던 순간이 있다. 몇 해 전, 여름이었다. 가족 모두가 손꼽아 기다리던 여름휴가를 앞두고 있었다. 그해 8월 초, 우리 가족은 부산 바닷가 근처 숙소를 예약해 두었고, 아이들도 들떠 있었다. 첫째의 수영복이 작아져 새로 주문해 두었고, 가족이 함께 입을 가족티도 맞춰 두었다. 나는 아이들 옷을 개고, 물놀이 용품을 점검하며 앞으로의 여행을, 그리고 그 이후의 일상까지도 당연한 듯 그려보고 있었다. 하지만 그해 7월의 마지막 주, 첫째는 세상을 떠났다. 예고도, 전조도 없이. 그 이후로, 나는 ‘계획’이라는 말을 더 조심스럽게 바라보게 됐다. 확신보다는 바람에 가깝고, 기대보다는 감사에 가까운 마음으로.

어떤 장소에 함께 간다는 일, 아프지 않고 하루를 살아낸다는 일, 아이들이 무탈하게 등교하고 저녁에 웃으며 돌아오는 일. 모두가 해내고 있는 평범한 하루가, 알고 보면 하나하나 기적 같은 일들이라는 걸 나는 너무도 뼈저리게 알고 있다. 그런 하루가 아무렇지 않게 지나가는 세상이 얼마나 드문지를, 나는 너무 뼈아픈 이별을 통해 배웠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번 일을 통해 다시금 절감했다. 별일 없이 살아간다는 일이 얼마나 위대한 축복인지. 아침에 눈을 떠 저녁까지 무사히 살아내는 일이, 그저 다녀오고, 돌아오고, 아무 일 없이 밥을 먹는 일이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병원이라는 공간에 발을 들이는 순간, 혹은 누군가 사랑하는 이가 누워 있는 병상을 바라보는 순간, 우리는 비로소 그것을 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던 날들이 사실은 가장 특별했던 날들이라는 것을. 그리고 그 평범했던 날들이, 얼마나 쉽게 깨어질 수 있는지를 경험한 사람만이 진짜 평온의 가치를 안다.

예전에는 몰랐다. 아이 넷을 키우며 하루하루를 버티던 시절엔 더 많은 것을 바랐고, 더 나은 미래를 꿈꿨다. 그런데 지금은 안다.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살아가는 날들이, 얼마나 감사한지를. 오늘이 무사히 흘러갔다는 것만으로도, 그 하루가 충분하다는 걸 안다. 욕심도 목표도 아닌, ‘무사히 지나는 평범한 하루’를 바라는 마음이 되었다는 건 아마 인생에서 가장 조용한 성장일지도 모른다.

우리가 계획한 여행은 멈췄다. 일정도, 숙소도, 예매한 표도 모두 취소되었다. 하지만 멈춘 건 그뿐이었다. 서로를 향한 마음은 더욱 깊어졌고, 완전체를 기다리는 우리의 약속은 더 단단해졌다. 우리는 함께 떠나지 않았지만, 여전히 함께 있었고,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여행은 이어지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조급해하지 않기로 했다. 반드시 함께 떠날 수 있는 날이 올 거라는 말을 굳이 약속하지 않아도, 우리가 여전히 서로를 향해 마음을 두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언젠가 다시 짐을 꾸리고, 다시 웃으며 모일 수 있을 것이다. 그때가 언제든, 우리는 이미 오래전부터 같은 방향을 바라보고 있었으니까. 이 여행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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