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부곡
06/16/25  

어릴 적 내게 아버지는 누구보다 젊고 누구보다 멋진 사람이었다. 또래 친구들이 말하는 아버지들보다 훨씬 활기차고 유머러스했고, 카리스마 있고 자신감 넘치는 에너지가 몸 전체에서 느껴졌다. 그런 아버지와 함께 있는 시간은 언제나 생기 넘쳤다. 나는 듬직한 아버지 팔에 매달려 장난을 쳤고, 아버지는 나를 등에 업고 산을 오르셨으며, 아버지 다리 위에서 시소를 타듯 흔들리며 깔깔대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아버지의 다리가 들썩일 때마다 나는 마치 하늘로 튀어 오를 것 같았고, 내려올 때면 그 넓은 무릎 위가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착륙지처럼 느껴졌다.

어린 내가 어쩌다가 차 안에서 잠이 들면 아버지는 엄마와 달리 나를 깨우지 않고 잠든 나를 조심스럽게 안고 방까지 옮기셨다. 나는 그 넓고 따뜻한 품이 좋아서, 잠이 깼는데도 두 눈을 꼭 감은 채 그대로 안겨 있곤 했다. 아버지와 함께라면 이 세상에 무서울 것이 하나도 없었다. 한 사람의 존재가 다른 누군가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확고한 감정의 형태였다. 그 시절 내게 아버지는 존재만으로도 충분히 세상을 막아줄 수 있는 사람, 그러니까 말하자면 살아 있는 방패 같은 존재였다.

하지만 그런 아버지도, 사춘기 시절의 나에게는 때때로 불편한 사람이 되었다. 마음속에 이유도 모를 억울함이 들끓던 시절이었다. 다 설명할 수는 없지만 어쩐지 부모가 나를 이해하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래서 말수가 줄고 눈빛이 차가워졌고, 때로는 아무 말 없이 방에 틀어박혀 나오지 않았다. 그럴 때마다 아버지는 뭐라 하지 않으셨다. 그땐 그게 무관심 같아 섭섭했는데 생각해 보니 마냥 가만히 계신 것도 아니었다. 어깨를 툭 치며 밥은 먹었냐 물으셨고, 괜히 내 주변 친구들의 안부를 묻기도 하셨다. 지금 생각해 보니 그건 아버지가 가장 다정한 방식으로 건네는 관심이자 기다림이었다.

시간이 흘러, 나는 어른이 되었고, 아버지가 서 있던 자리에 나도 서게 되었다. 아이를 키우고, 매일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책임이라는 단어를 실감하게 되면서, 어릴 적 내가 품고 있던 든든함이 얼마나 값진 것이었는지를 새삼 알게 되었다. 이제 와 생각해 보면, 아버지는 내 삶의 거의 모든 중요한 결정의 순간마다 내 편이었다. 내가 혼자 유럽 여행을 떠나겠다고 했을 때도, 영상학을 전공하겠다며 대학 진로를 정할 때도, 심지어 결혼을 결정할 때도 아버지는 늘 한 발 물러나 계시며 내 판단을 존중해 주셨다. 물론 그 모든 선택이 아버지의 가치관과 꼭 같지는 않았을 것이다. 때로는 걱정이 앞섰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버지는 한 번도 먼저 반대하거나, ‘내가 아빠니까’라는 말로 무언가를 강요하신 적이 없었다. 딸의 인생을 하나의 독립된 여정으로 바라보았고, 그 여정에서 내가 주도권을 쥐고 나아갈 수 있도록 뒤에서 지지해 주셨다.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나는 장면이 하나 있다. 대학에 들어가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무렵, 나는 내 방에 텔레비전을 들여놓고 싶다고 했다. 아버지는 단호하게 반대하셨다. TV는 거실에서 가족이 함께 보는 것이라는 원칙이 있었고, 공부방에 TV를 둔다는 건 아버지 세대의 기준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 자리에서 물러서지 않았다. 나는 영상학을 전공할 거라고, 그래서 다양한 영상을 접해야 하는데 집중해서 보려면 혼자만의 공간이 필요하다고, 하지만 어린 동생들 때문에 거실에서는 그것이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며칠 뒤, 내 방에 작은 텔레비전이 들어왔다. 나는 그날을 종종 떠올리곤 한다. 그것은 단순히 전자기기를 들여놓았다는 차원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나는 그날, 부모가 나를 믿어주고 나를 인정해 줬다는 감정을 똑똑히 느꼈다. 그것은 많은 것이 미숙했던 내가 어른이 되는 과정에서 반드시 거쳐야 하는 승인 같은 것이었고, 아버지는 기꺼이 그 첫 장면을 만들어주셨다.

이제 와 나는 아버지가 얼마나 단단한 방식으로 나를 이끌어주셨는지를 조금씩 알아가고 있다. 딱히 나를 앉혀놓고 무언가를 가르치시기보다, 아버지는 언제나 행동으로 보여주셨다. 무슨 일이든 적극적으로 임하셨고, 늘 열정이 넘쳤고, 자신감이 넘쳤다. 그 당당한 태도는 어린 내게는 막연한 동경의 대상이었고, 지금의 내게는 하나의 길잡이 같은 것이 되었다. 어쩌면 나는 살아오면서 늘 그 기준에 맞추려 애썼던 것 같다. 아버지처럼 용기 있게 결정하고, 아버지처럼 흔들림 없이 움직이고, 아버지처럼 항상 먼저 인사를 건네고. 그리고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다.

아버지는 어느덧 일흔이 넘으셨지만, 그 어떤 날보다 활기차게 살아가신다. 매일 아침이면 공원에 나가 걷고, 지역사회의 일이라면 작은 모임부터 공공 행사까지 관심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참여하신다. 지인들과의 모임이 있으면 늘 먼저 계산을 마치고 자리를 정리하시며, 주변에서는 그런 아버지를 따르지 않는 이가 없다. 누군가와 함께 있을 때면 분위기를 밝히고, 책임지는 자리에 서기를 주저하지 않으며, 늘 앞장서서 사람들을 챙기신다.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유쾌한 사람, 함께 있으면 든든한 사람, 누구든 기꺼이 곁에 있고 싶어 하는 사람. 그런 아버지를 생각하면, 나도 늘 아버지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마음이 절로 든다.

아버지, 아버지날을 맞아, 고백합니다. 어린 시절엔 아버지의 등에 업혀 세상이 두렵지 않았고, 사춘기엔 그 등을 등지고 방 안에 틀어박혀 있으면서도 마음 한편으론 늘 돌아갈 자리를 알고 있었습니다. 어른이 되어 아이를 키우고, 삶의 무게를 견디며 살아가다 보니 저는 비로소 알게 되었습니다. 말보다 앞선 행동으로, 책임 앞에서 망설이지 않던 그 태도로, 아버지는 언제나 저를 이끌어주셨다는 것을. 그 믿음과 신뢰, 그리고 흔들림 없는 뒷모습이 제 안에 얼마나 단단히 새겨져 있는지를. 저는 아버지를 닮고 싶습니다. 누군가에게 든든한 어른이자, 조용히 중심을 지켜주는 존재가 되고 싶습니다. 어느덧 세월이 흘러 아버지의 무릎이 조금씩 불편해지고, 제 머리에도 어느새 흰빛이 섞여가지만, 저는 여전히 그리고 언제까지나 당신의 딸입니다.

아버지, 당신이 있어 제 인생은 참으로 든든합니다. 오래오래 그렇게 함께해 주세요.

고맙습니다. 진심으로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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