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즘 자주 알고리즘에 뜨는 방송이 있다. '이혼 숙려 캠프'라는 이름의 프로그램이다. 이혼을 고민하는 부부들이 마지막으로 함께 며칠을 보내며 각자의 감정을 정리하고 결정을 내리는 과정을 담는다. 처음에는 별생각 없이 클립을 하나 재생했는데, 그날 이후로 내 피드엔 이 방송의 짧은 영상들이 계속 올라왔다. 부부가 싸우고, 침묵하고, 눈물 흘리며, 결국 각자의 마음을 조심스레 꺼내 보이는 장면들. 내 결혼과는 상관없다며 넘기다가도, 어느새 나도 모르게 끝까지 보게 된다. 어쩌면 그들도 한때는 나처럼 뜨겁게 사랑하고 평범하게 시작했을 텐데.
어느 날은 남편과 같이 방송을 보게 되었다. 그는 의외로 진지하게 화면을 바라보더니, 한 회가 끝나자 이렇게 말했다. "이런 방송 보고 나니까 어때? 결혼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들지 않아?" 나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지만, 마음속엔 묘한 파문이 일었다. '정말 잘한 걸까?'라는 질문이 아니라, '우리는 어떻게 여기까지 왔을까?' 하는 질문이었다.
결혼 생활은 나에게 언제나 선명하지 않은 감정의 연속이었다. 사랑과 감사, 실망과 원망, 기대와 포기, 안도와 후회가 섞여 마치 연한 수채화처럼 번져 있었다. 어느 하나만 뚜렷하게 말하기 어려운, 그런 세월이었다.
결혼 21년 차. 나는 지금의 남편을 처음 만났을 때보다 훨씬 더 많이 알고 있고, 훨씬 더 모른다. 그가 무슨 음식을 좋아하고, 언제 말을 걸면 싫어하는지, 어떤 농담에 웃는지 잘 안다. 동시에, 어떤 날은 이 사람에게 낯선 면이 보인다. 함께 살아도 끝끝내 모르는 세계가 존재한다는 사실. 그건 결혼 초엔 두려움이었고, 지금은 약간의 안심이다. 그가 나와 다르다는 것, 우리가 서로 같지 않다는 것이 이제는 그리 놀랍지만은 않다.
결혼은 하나의 목표가 아니라 흐름이라는 걸 알게 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행복한 결혼, 성공적인 결혼이라는 말이 얼마나 허상처럼 느껴지던지. 때때로 나는 우리가 겨우 유지되고 있다고 느꼈고, 또 어떤 날은 우리가 의외로 단단하다고 느꼈다. 아이들이 자라고, 시간이 흐르고, 큰 슬픔도 지나가면서 그 모든 감정들이 서로를 붙잡는 끈이 되어준 것 같다.
우리 사이에는 수많은 계절이 있었다. 여행을 앞두고 싸우던 봄날, 아이들과 바닷가를 걷던 여름, 말없이 앉아 차를 마시던 가을 저녁, 각자의 이불을 덮고 등을 돌렸던 겨울밤. 모든 계절이 지나면서 조금씩 나를 바꾸었고, 조금씩 그를 받아들이게 했다. 어떤 시절은 놓치고 싶지 않았고, 어떤 날은 다신 떠올리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돌아보면, 그 모든 계절이 쌓여 지금의 우리를 만들었다.
내가 결혼에 대해 가장 확신하는 한 가지는 이것이다. 누구랑 했든, 이것보다 덜 힘들지는 않았을 거라는 믿음. 모든 인간관계가 그렇듯, 누구와 어떤 삶을 꾸려도 결국은 나 자신과의 싸움이라는 걸. 배우자를 바꾼다고 내 상처가 사라지진 않고, 내 결핍이 채워지진 않는다. 그 사실을 받아들이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렸고, 지금에서야 나는 조금씩 자유로워지는 연습을 시작한 것 같다.
남편은 나에게 가장 가까운 타인이다. 서로를 너무 잘 알아서 편한, 동시에 너무 익숙해서 소홀해지는 관계.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지금도 서로에게 웃는다. 어떤 날은 짜증이 나서 말도 섞기 싫다가도, 다음 날이면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밥을 먹고, 이야기를 나눈다. 미안하다는 말은 줄었지만, 대신 그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거나 집안일 하나를 내가 더 하는 방식으로 사과를 건넨다.
가끔은 이런 생각도 든다. 결혼 전으로 돌아간다면, 나는 이 사람을 또 선택할까? 예전 같으면 망설였겠지만, 지금은 비교적 단순하게 대답할 수 있다. 그럴 거라고. 왜냐하면 그는 내 삶의 많은 부분을 이미 채워버린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의 방식대로 나를 사랑했고, 나도 내 방식대로 그를 이해해 보려 애썼다. 우리는 서로의 인생에 스며들어 지워지지 않는 흔적처럼 서로에게 남아 있다.
같이 늙어간다는 건, 그런 것이다. 서로를 완전히 이해하려는 시도를 멈추고 그 대신 다르다는 사실을 껴안는 것. 익숙한 만큼 낯설고, 미운만큼 고마운 이 사람과 함께 하루하루 나이 들어가는 일, 그것이 바로 결혼이 아닐까?
언젠가는 우리가 지금보다 훨씬 느려지고, 더 많은 것을 잊고, 더 자주 병원에 가야 할 날이 올 것이다. 그가 먼저 지팡이를 짚을지, 내가 먼저 귀가 어두워질지 모르지만, 그때도 나는 아마 지금처럼 생각할 것 같다.
그래, 결혼 참 잘했다. 재미있게 장난치고 치열하게 싸우며 같이 나이 들어갈 사람이 바로 당신이라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