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픈 외국어 – 늘지않는 영어, 잊혀져 가는 한국어
04/23/18  

이런 제목은 왠지 마음을 무겁게 하지만 미국에 사는 이민자들이라면 제목만으로도공감대를 형성하지 않을까 싶다.

 

우리는 일생 동안 특별히  노력을 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언어를 습득하고 사용하게 된다그렇게 태어나고 자란 곳에서 익숙한 언어로 생활을 하다가 미국에 오면서 언어의 장벽에 부딪혔고 수없이 많은 좌절과 굴욕불편과 불이익을 경험하지 않을 수 없었다.새로운 규칙의 언어를 배우고 익숙해지는데 꽤나 오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함은 물론 그저 오래 산다고 해서 자연스레 극복할 수 있는 성격의 문제가 아님을 깨달으며 또 다시 좌절한다외국인이 엉터리로 우리말을 하면 귀엽다재미있다잘한다.’라고 좋아들 하면서 한국인이 영어에 미숙한 건 마치 크게 부끄러운 일처럼 여기기도 한다그래서 이제는 영어를 못해도 큰 불편없이 생활할 수 있는 머리 희끗희끗한 노인들이 영어를 배우겠다며 의지를 불태우는 경우도 주위에서 쉽게 볼 수 있다

나는 부모를 따라 중학교 2학년 때 미국으로 이민을 왔는데 나에게도 언어의 장벽은 꽤나 높고 험했다본래 활달하고 적극적인 성격이었지만 미국에서 학교를 다니는 내내 나는 조용한 아이였다수업시간에는 선생님의 지시 사항을 이해하지 못해 눈치껏 주위 학생들을 따라서 해야 했고 누군가 나에게 말을 걸까봐 일부러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고 이곳 저곳 시선을 옮겨야만 했었다자연스럽게 말이 통하고 함께 있으면 편안한 한인 친구들과 어울리게 되었고 영어에 대한 조바심은 가라앉지 않은 채 그렇게 세월만 흘러갔다. 

대학교 1학년때 일본인 사회학 교수의 강의를 들은 적이 있었는데 그는 일본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미국에 온 이민자로 억양이나 발음이 서툴러 집중하지 않으면 무슨 말인지 이해하기가 쉽지 않았다그러나 미국학생들은  문제없이 일본인 교수의 강의를 소화해내고 있었다. -뒤에서 그의 억양을 흉내 내며 킥킥거리는 녀석들도  있었지만그 교수 역시 언어의 장벽에 괴로워했을 지 모르지만 교수가 원어민 수준의 영어를 구사하지 못한다고 무턱대고 무시하는 사람은 없었다나는 마음속으로 그에게 힘찬 박수를 보냈다언어 때문에 불편이 찾아올 때마다 그를 떠올렸다. ‘그래영어에 자신감을 갖자어차피 이곳에서 태어나고 자란 미국인과 같아질 수는 없다.’

 영어를 완벽하게   없는 것이 자랑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기죽어야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영어 미숙으로 설움 받던  어린 날의 기억을 되살려보면 영어 못한다고말할  작게 웅얼거리면 미국사람들이  우습게 보기 십상이다발음이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으니 크게 말하자. 한번 얘기해서  알아들으면 다시 말하고 그래도 못 알아들으면 스펠링을 불러주면 된다오히려 당당하게 말하는데 누가 뭐라고 하겠는가.’ 

영어 서툴다고   다물고 지냈던 지난 날이 너무 아쉬운 요즘이다영어에 자신감을 갖고 좀 더 학업에 열중할 걸 하는 아쉬움보다는 그때 조금 더 용기를 갖고 적극적으로 임했다면 더 즐거운 학창 시절의 추억을 많이 만들 수 있었을 거라는 후회이다그때 내 자신을 감추며 숨어있지 않고 나의 부족함을 솔직히 드러내고 도움을 청하고 노력했더라면 훨씬 더 많은 즐거움을 누렸을 거라 생각한다

1.5세들끼리 농담처럼 즐겨 쓰는 말이 있다. ‘늘지 않는 영어잊혀져 가는 한국어.영어 실력은 제자리 걸음을 계속하는데 우리말까지 잊어 먹는다는 가슴 아픈 얘기다

미국살이 이십여 년이 넘어가는 나도 여전히 R L 들어가는 단어 발음이 꼬인다. 한글로 문서 작성하려면 단어가 생각나지 않아 한참 고민을 하거나 사전을 뒤적여야 한다역시 평생 늘지않는 영어잊혀져 가는 한국어를 몸소 체험하며 살아가고 있다이는 단지 언어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Korean American으로서 살아가는 우리의 숙명같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슬픈 외국어 상실의 시대의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수필집 제목이다작가는  제목에 관하여 다음과 같은 설명을 한다.  슬픔이라지만 외국어를 쓰지 않을  없다든가  못한다든가 해서 슬프다는  아니다. 물론 조금은 그런 점도 있겠지만내가 마음으로부터말하고 싶은  나에게 있어 자명성을 갖지 못한 외국의 언어가 무슨 인과 관계인지 이방인인 나를 둘러싸고 있는  상황 자체에어떤 종류의'슬픔' 같은 것이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다 인간으로서,  작가로서 나는 아마도  <슬픈 외국어> 안고서 줄곧 살아가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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