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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을 포기 못하는 이유
07/12/25  

필라테스 양말을 신다가 문득 멈칫했다. 발가락 끝이 조금 해지고 미끄럼 방지가 흐릿해진 그 낡은 양말을 바라보다가, 그제야 깨달았다. 내가 필라테스를 시작한 지도 10년이 넘었고, 본격적으로 꾸준히 다닌 시간만 따져도 5년이 훌쩍 넘는다는 사실을. 한두 달 등록했다가 그만두는 식의 반복이 아니라, 주 1~3회씩 내 생활의 한 부분처럼 자연스럽게 자리 잡고 있었다는 것을.

나는 운동을 못한다. 그래서 싫어한다. 운동과는 상관없는 사람이라고 오랫동안 믿으며 살았다. 학창 시절 체육 시간은 늘 부담이었고, 줄넘기나 뜀틀, 피구, 발야구 같은 종목들은 참여보다는 회피가 익숙한 종류의 일이었다. 나는 공이 날아오면 잡는 대신 눈을 감았고, 달리기를 하면 언제나 가장 늦게 들어왔으며, 땀이 흐르기 시작하면 스스로가 어색해졌다. 자연스럽게 몸을 움직이는 사람들을 부러워했지만 그게 내 몫은 아니라고 단념하는 쪽이 더 편했기에 운동이라는 세계는 늘 나와 멀리 떨어진 자리에서 흘러가고 있었다.

그런 내가 운동을 시작한 건 30대 중반부터였던 것 같다. 고질적으로 따라다니던 허리 통증이 어느 순간 일상의 기본값이 되어버렸고, 그 상태로는 버틸 수 없겠다는 위기의식 속에서 운동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살기 위해서였고, 통증을 줄이고 어떻게든 몸을 관리하기 위해 억지로 몸을 움직였다. 그런데 막상 시작하고 보니, 조금씩 몸이 반응하기 시작하면서 삶 전체에 예상하지 못한 변화가 따라왔다. 아침에 덜 무겁게 눈을 뜨게 되었고, 쉽게 지치던 일상에서도 전보다 여유가 생겼고, 숨이 차기 전에 멈춰야 했던 일들 앞에서 조금 더 오래 견딜 수 있는 힘이 생겼다. 에너지가 회복된다는 것이 단지 몸의 기능만을 뜻하지 않는다는 것을 그때 처음 알게 되었고, 몸이 달라지니 마음도 따라 달라졌고, 그 감정은 하루 전체의 밀도를 바꿔놓았다. 그렇다고 늘 꾸준히 운동을 해왔던 건 아니다. 몇 달 하다가 그만두고, 다시 시작하고, 또 멈추고를 반복해 왔다. 그럼에도 이상하게도 ‘운동은 해야 한다’는 확신만큼은 점점 더 또렷해졌고, 하고 나면 기분이 좋아진다는 감각은 중단 속에서도 잊히지 않았다.

물론 여전히 운동을 잘하는 편은 아니다. 동작이 완벽하지도 않고, 유연하지도 않고, 지구력이나 근력 면에서도 쉽게 어려움을 느낀다. 그렇다고 대단한 성과가 있는 것도 아니다. 기록이 좋아지는 것도 아니고, 체형이 드라마틱하게 바뀌었다거나, 누가 봐도 몸이 좋아졌다고 할 수 있을 만큼의 변화는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계속 운동을 한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니고, 어디에 보여주기 위한 것도 아니며, 오직 내가 선택한 시간으로 운동을 한다.

그렇게 못하면서 왜 운동을 하냐고. 그렇게 안 맞으면서 왜 계속하냐고. 정답은 단순하다. 성취감 때문이다. 운동은 나를 바꾸지 않았다. 드라마틱한 몸매도, 특별한 능력도 생기지 않았다. 그런데도 운동은 늘 무언가를 해냈다는 감정을 준다. 놀랍게도 그건 아주 쉽게 찾아온다. 딱 30분, 혹은 1시간 몸을 움직이기만 하면 된다. 숨이 찼고, 땀이 났고, 힘들었는데 그걸 끝냈다는 사실이 나를 기분 좋게 만든다. 그건 꽤 강렬한 감정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귀하다. 일상 속에서는 그런 감정을 느낄 기회가 거의 없으니까.

‘해냈다’는 감정을 얻기 위해 무언가를 시작하고 끝낼 수 있는 기회는 생각보다 흔치 않다. 특히 나처럼 아이 셋을 키우며 주부로 살아가는 일상에서는 더 그렇다. 하루 종일 바쁘게 움직였지만 정작 내가 무엇을 했는지 말하기 어려운 날이 많고, 끝냈다고 생각한 일이 다시 시작되고, 내 수고가 기록되지 않고 잊히는 일이 반복된다. 밥을 하고, 설거지를 하고, 정리를 하고, 다시 아이들을 챙기다 보면 하루가 순식간에 지나가 있지만, 내가 오늘 이뤄낸 것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선뜻 떠오르는 답이 없다.

주부의 삶은 구조적으로 성취감과 멀어지기 쉽다. 대부분의 일은 결과가 아니라 과정만 남고, 누군가의 인정을 기대하기 어렵고, 당연히 해야 할 일로 간주되기에 특별함을 부여받지 못한다. 아이가 무탈하게 자라주는 것, 집안이 큰 탈 없이 굴러가는 것, 배우자와의 갈등 없이 하루를 넘기는 것. 이 모든 일이 사실은 얼마나 많은 감정과 시간과 노동을 필요로 하는지 우리는 알고 있지만, 밖에서는 그것이 늘 ‘보이지 않는 일’로 취급되기 마련이다.

운동은 그와 다르다. 운동은, 어쩌면 드물게도, 내가 나를 위해 한 일이 눈에 보이고 몸에 남는 종류의 일이다. 러닝을 하면 숨이 차고 땀이 흐르며, 필라테스를 하면 몸이 당기고 근육이 피로해진다. 그 피로가 기분 좋게 느껴지는 이유는,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내가 나를 위해 움직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시간만큼은 누구의 엄마도 아니고, 누구의 아내도 아닌, 오로지 ‘나’로서 존재한다는 것을 확인하게 되기 때문이다. 운동은 내 이름으로 사는 삶의 순간을 마련해 주는 드문 일 중 하나다.

사람들은 말한다. 운동을 하면 몸이 달라진다고. 살이 빠지고 자세가 좋아지고, 체력이 생기고 건강이 나아진다고. 물론 그렇다. 하지만 나에게 운동이 주는 가장 큰 변화는 몸이 아니라 마음이다. 몸은 크게 달라지지 않아도 마음이 조금씩 단단해지고, 그 마음으로 하루를 버틸 수 있게 되는 것.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도 ‘오늘은 괜찮았어’라는 말을 스스로에게 건넬 수 있게 해주는 감정. 나에게 운동은 그것을 가능하게 한다.

그래서 나는 운동을 계속한다. 잘하지 않아도, 누구에게 보여줄 만큼 멋지지 않아도, 기록이 남지 않아도. 이건 내 삶에서 나를 위한 가장 분명한 시간이고, 내가 나를 지키는 방식 중 하나다. 누구에게도 증명할 필요 없이, 스스로에게만 말하면 되는 고요한 성취. 그 작고 조용한 기분이 내 일상에 남는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나는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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