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토
06/04/18  

나는 토마토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샌드위치, 햄버거, 샐러드나 요리에 들어있는 토마토를 굳이 골라내지는 않지만 토마토를 맛있다고 생각해 본 적은 별로 없는 것 같다. 나에게 토마토는 곁들여 먹으면 조합이 괜찮지만 아무리 몸에 좋아도 따로는 먹고 싶지 않은 그런 식자재라는 점에서 과일이 아닌 채소임을 인정하게 된다 (1893년 이 논란이 미국 법정에까지 올라갔는데 미국 대법원은 “식물학적 견지에서 토마토는 덩굴식물의 열매이므로 과일이 맞지만 토마토는 식사 후 먹는 후식같은 것이 아니고 식사의 중요한 일부이므로 채소다”라는 판결을 내렸다고 함). 그런데 요즘 우리집에서 토마토가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 남편도 아이들도 엄청 좋아하는 디저트 메뉴인데 토마토가 갑자기 인기 메뉴가 된 이유는 바로 설탕 때문이다.

 그렇다. 이미 잘 알고 있겠지만 토마토에 설탕을 뿌리면 비타민 B가 파괴되기 때문에 토마토는 살짝 데쳐 먹는 것이 가장 좋다고 한다. 건강식품의 대명사인 토마토가 설탕에 버무려 설탕 알갱이와 함께 씹히는 순간 불량식품으로 전락하는 것이다. 요즘 세상에도 토마토에 설탕을 뿌려 먹는 사람이 있다고 하면 기겁을 할 지도 모르지만 가끔은 효능이나 건강 따위는 상관하지 않고 마음껏 내 마음대로 맛있게 먹고 싶을 때가 있다. 물론 토마토가 달면 달수록  무자비하게 뿌려진 설탕이 떠오르며 묘한 죄책감이 스멀스멀 올라오기도 하지만.   

 내가 어릴 때 더위에 지친 오후가 되면 엄마가 종종 토마토에 설탕을 뿌려 내오셨다. 그때는 비타민 파괴 그런 건 모르고 토마토가 좋다고 하니 어떻게든 아이들을 먹여볼 심산이셨던 것 같다. 워낙 먹성이 좋았던 오빠와 내가 토마토 국물 질질 흘려가며 맛있게 먹으면 꽤나 흐뭇하셨을 것이다. 에어컨도 없던 그 시절 덥고 습한 여름날 새빨간 토마토 위에 보석처럼 반짝이던 설탕은 내  마음 속에 남은 그리운 이미지 중 하나이다.

 땀이 삐질삐질 나는 여름날 시원한 수박도 좋지만 먹기 좋게 자른 토마토에 아낌없이 설탕을 뿌린 후 시원하게 보관했다가 먹으면 그야말로 꿀맛이 따로 없다. 설탕 많이 묻은 토마토 먼저 골라 먹기 시작해 토마토가 다 사라지면 바닥에 남은 시럽같은 끈적한 액기스 국물이 바로 하이라이트이다. 이 달짝지근한 국물은 그릇채 들고 마셔야 제맛인데 마지막 한 방울의 국물까지 남김 없이 흡입하고 나면 온 세상이 달콤해지는 기분이 든다. 피로할 때 꿀물 마시는 효과라고 할까?  설탕 토마토는 건강이나 다이어트와는 거리가 먼 간식이지만 한 입 베어 무는 것만으로도 기운이 솟고 추억이 샘솟는 배시시 웃음이 터져 나오는 맛, 단맛에 익숙한 요즘 아이들마저 사로잡는 그런 맛이다. 이제 칠순이 된 엄마도 설탕이 안 좋다며 요즘엔 신선한 토마토 그대로를 즐기시지만 나는 이따금씩 달큰한 설탕 뿌린 토마토가 생각난다. 설탕 뿌린 토마토마저 귀하고 소중한 추억이 되는 걸 보니 인생은 참 살수록 재미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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