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월이 끝나간다. 문득 휴대폰 앨범을 열어봤다. 언제부턴가 사진보다 짧은 영상이 많아졌는데, 하나씩 넘기다 보니 누군가와 밥을 먹는 장면이 유독 많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식당이 다르고, 사람도 다르고, 때론 말없이 음식만 찍혀 있는데도 그 공통의 공기는 분명히 느껴졌다. 7월에 나는 자주 누군가와 밥을 먹었다. 특별한 계기가 있었던 것도 아닌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이유는 있었다. 내 생일이 있어서 챙겨주는 이들이 있었고, 블로그에 쓸 리뷰를 위해 외식도 잦았다. 누군가의 초대를 받아 함께한 자리도, 내가 먼저 건넨 식사 제안도 있었다. 그렇게 이유는 다 달랐지만 결국은 하나였다. 우리는 밥 한 끼를 나누고 있었다. 따뜻한 그릇과 마주 앉아 말 대신 수저 소리를 주고받으며 그날의 온도를 나누고 있었다.
밥 한 끼가 뭐라고, 그게 사람을 살리기도 한다. 위로가 말로 오지 않을 때, 밥으로 온다는 걸 이제야 조금 알 것 같다. “밥이나 먹자”는 말은 흔히 관계의 시작이거나, 관계의 회복이거나, 그 어느 쪽도 아닐 때 마지막 남은 마음이기도 하다. 말로 다 못하겠을 때, 밥을 먹자며 밥을 사는 사람이 있다. 마음을 설명하지 않고, 괜찮냐고 묻지도 않고 그저 “밥 먹자”라고 한다. 별말 없이 마주 앉아 숟가락을 들고, 국물을 떠먹고, 몇 번의 웃음과 고개 끄덕임이 오간다. 그러고 나면 이상하게도 마음 한쪽이 조금 정리된다. 따뜻한 밥 한 끼가 말보다 먼저 도착한 마음일 때가 있다. 미지근하지만 묵직한 온도. 그 온기가 오래도록 남는다.
나는 원래 아침밥을 잘 못 먹는 아이였다. 특히 학창 시절, 엄마가 새벽같이 깨워놓고 상에 밥을 차릴 때마다 괜히 화가 났다. 아침에는 유독 입맛이 없는데 졸린 눈으로 꾸역꾸역 삼키는 그 시간들이 버겁기만 했다. 따뜻한 밥과 김이 모락모락 나는 국을 앞에 두고도, 나는 늘 반쯤 눈을 감은 채 불만을 품고 앉아 있었다. 그땐 몰랐다. 엄마가 매일 그 아침을 준비하기 위해 얼마나 일찍 일어났는지도, 그 밥상이 어떤 마음으로 차려졌는지도. 그냥 왜 이렇게 귀찮게 구는지, 왜 꼭 먹어야 하는지 그것만 생각했다. 그런데 참 이상하지. 지금 나는 엄마가 했던 그대로 하고 있다. 아이들이 아무리 늦잠을 자고 입맛이 없다고 해도, 나는 꼭 아침밥을 챙기고 싶다. 억지로라도 한 숟갈을 먹게 하고 싶어 하는 내 마음은, 아주 오래전 엄마의 마음과 똑같을 것이다.
밥 한 끼의 힘이란 게 있다. 따뜻한 국에 말아먹는 밥처럼, 어지러운 마음이 조금씩 정돈되는 순간이 있다. 자주 보지 못했던 사람과 밥을 먹으면 괜히 그날이 오래 기억된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의 식사는 말이 없어도 편하고, 처음 보는 사람과의 밥상은 서로의 리듬을 맞추는 작은 모험 같다. 찬이 나올 때까지 어색했던 분위기가 국물 한 모금 후엔 느슨해지고, 누군가가 수저를 내밀고 반찬을 권하면, 그건 마음을 조금 더 가까이 내어준다는 뜻이다. 우리는 그렇게 밥상 위에서 천천히 서로를 받아들이게 된다. 어색함은 젓가락 사이사이에 흩어지고, 사소한 말들과 쿡쿡 웃는 숨소리로 자리를 채워나간다. 밥을 함께 먹는다는 건, 나와 당신 사이에 하나의 테이블이 있다는 뜻이고 우리는 그 위에 각자의 삶을 조금씩 올리며 나눌 수 있다는 것이다.
블로그를 하면서는 일부러라도 식당을 많이 간다. 일을 핑계로 누군가를 불러내기도 하고, 주로 남편과 새로운 식당을 찾아간다. 사진을 찍고, 분위기를 관찰하고, 음식 맛을 기억한다. 때로는 일처럼 느껴지지만, 어떤 날은 그것 덕분에 한 사람과 가까워지고, 그 핑계로 남편과 데이트를 하기도 하고, 또 어떤 날은 그냥 나를 위한 시간이 되기도 한다. 맛있는 걸 먹는 건 기분이 좋아지고, 기분이 좋아지면 말수가 늘고, 말이 오가면 관계가 이어진다. 음식은 핑계가 되고, 맛은 마음을 열고, 밥상은 관계를 놓지 않게 한다. 그렇게 밥은 내 일이고, 쉼이고, 관계가 되었다.
아이들과 밥을 먹는 시간도 그렇다. 말이 많지 않은 날에도, 서로 투덜대며 앉은 저녁식탁에서도, 결국 한 그릇씩은 비워낸다. 그 시간만큼은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는 시간이다. 엄마로서 그 밥상을 꾸리는 건 때론 귀찮고, 서글프고, 반복되는 일이지만, 동시에 내가 가장 나다워지는 시간이기도 하다. 고기를 구울 땐 미리 환풍기를 켜야 한다는 것, 아이들이 싫어하는 파나 양파는 국물만 내고 조용히 건져내야 한다는 것, 가족들 입맛에 맞게 된장의 농도를 조절하다 보니 이제는 손이 먼저 간을 기억하게 된 것도, 전부 이 식탁에서 배운 일이다.
어릴 적 내가 그랬듯, 지금 아이들도 언젠가 이 밥상을 떠올릴까. 그건 잘 모르겠다. 다만 나는 그들의 기억에 따뜻한 밥 한 공기쯤은 남겨주고 싶다. 그것이면 충분하다.
밥은 일상이고 습관이며, 누구와 시간을 나누는 방식이기도 하다. 무심코 찍어둔 영상들을 다시 보며 무엇을 먹었는지보다 누구와 있었는지가 더 오래 남는다는 걸 알게 된다. 특별한 대화가 오간 것도 아닌데 이상하게 기억에 남는 자리들이 있다. 말수가 적었지만 편안했던 날, 많이 웃진 않았지만 어색하지 않았던 순간들처럼 말이다. 내 생일을 챙겨준 사람도, 블로그 취재를 핑계로 마주 앉은 사람도, 오래된 친구도, 처음 본 인연도 모두 그 식탁에 있었다. 생각해 보면 밥상은 늘 비슷했지만, 그 안에 담긴 분위기와 눈빛은 하나같이 달랐다. 그렇게 우리는 음식을 사이에 두고 조금씩 서로를 알아가고, 다시 연결되곤 했다.
그리고 오늘도 나는 누군가에게 조심스레 말을 건다. “우리, 그냥 같이 밥이나 먹자.” 그 말엔 특별한 이유도, 거창한 목적도 없다. 밥은 하루에도 몇 번씩 반복되는 너무나 평범한 일이고, 세수나 양치, 잠처럼 익숙한 루틴이지만, 유독 밥은 혼자보다 함께할 때 더 따뜻해진다. 말이 없어도 괜찮고, 오래 앉지 않아도 괜찮다. 같은 음식을 나누는 그 순간, 우리는 아주 자연스럽게 서로의 하루에 들어간다. 식탁을 마주한 짧은 시간이 쌓여 관계가 되고, 기억이 되고, 그 사람의 얼굴이 된다. 그러니 밥을 먹는다는 건, 결국 함께 살아간다는 뜻인지도 모른다. 아무렇지 않게 시작된 한 끼가 마음에 남고, 그 마음이 또 다른 하루를 살아가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