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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전 하나
09/29/25  

나는 동전을 떠올리면 가장 먼저 포장마차의 풍경이 그려진다. 국민학교 다니던 시절, 집 주변에는 늘 떡볶이를 파는 포장마차가 있었다. 학교가 끝나면 아이들은 책가방을 한쪽 어깨에 걸친 채 그곳으로 몰려들었고, 포장마차의 커다란 냄비에서는 김이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특제 양념장과 간장이 뒤섞인 국물 냄새는 바람을 타고 골목 어귀까지 퍼져 우리를 유혹했다. 그 시절 내 주머니에 들어 있던 건 동전 몇 개뿐이었는데, 이상하게도 그 몇 개만으로도 세상이 다 내 것인 듯 든든했다.

실제로 백 원짜리 동전 하나만 있어도 충분했다. 떡볶이 50원 워치도 팔던 시절이었으니깐. 포장마차 아주머니께 “떡볶이 50원어치 주세요”라고 말하면, 비닐을 씌운 작은 접시에 떡이 다섯 개, 운이 좋으면 어묵 한 조각까지 담겨 나왔다. 떡은 쫄깃했고, 붉은 국물은 매콤하고 달콤했으며, 김이 눈앞에서 피어올라 내 얼굴까지 데워주었다. 접시를 한 손에 들고 젓가락으로 떡 하나를 집어 입에 넣으면, 혀끝이 얼얼하도록 매웠는데도 이상하게 자꾸만 손이 갔다. 남은 50원으로는 쭈쭈바를 사 먹기도 하고, 신호등 모양의 사탕을 사기도 했다. 빨강, 노랑, 초록 세 가지 색깔이 층층이 쌓여 있던 그 사탕은 입에 물고 거리를 걸으면 세상이 갑자기 알록달록 해지는 것만 같았다. 100원으로 두 가지 즐거움을 누릴 수 있었던 시절, 동전은 어린 마음을 가득 채워주는 풍요같은 것이었다.

500원짜리 동전은 그보다 더 특별했다. 조금 더 커다란 은빛이 유난히 반짝였고, 지갑이나 주머니 속에서 발견되면 심장이 두근거렸다. 그 동전 하나면 혼자만이 아니라 친구들과도 함께 즐길 수 있었으니까. 우리는 가끔 서로 모은 돈을 합쳐 200원어치, 300원어치씩 떡볶이를 시켰다. 길가에 서서 먹는 그 순간은 우리만의 잔치였다. 매운 국물에 입술은 금세 빨갛게 물들었고, 서로 먼저 떡을 건지겠다며 장난을 치다가 국물을 흘리기도 했다. 그때의 떡 하나 값은 10원쯤이었으니 동전 몇 개만 있으면 배가 불렀고, 세상 근심이 다 사라졌다.

나는 그런 동전을 모으는 재미도 알았다. 돼지 모양의 저금통에 동전을 하나씩 넣을 때마다 울리던 경쾌한 소리, 또각거리며 바닥에 부딪히는 진동은 어린 마음을 설레게 했다. 하루가 다르게 무거워지는 저금통은 그 자체로 기대였다. 책상에 가만히 두어도 묵직한 존재감을 풍겼고, 가끔 들어 올릴 때마다 ‘이제는 꽤 모였구나’ 하는 기분이 들었다. 언젠가 가득 차면 뚜껑을 열어볼 순간을 기다리며, 나는 미래를 상상했다. 바비인형을 사거나, 동네 서점에 가서 읽고 싶은 책을 마음껏 고르거나, 아니면 부모님의 기념일에 조그만 선물을 사드리겠다고 다짐했다. 동전은 단순한 돈이 아니라, 기다림과 상상의 원천이었다. 작은 희망이 조금씩 쌓여가는 소리를, 그때만큼 실감 나게 들었던 적은 없는 것 같다.

그러나 언제부턴가 동전은 내 일상에서 멀어졌다. 지갑 속 동전 칸은 늘 텅 비어 있고, 가끔 마트에서 거스름돈으로 받으면 괜히 번거롭다는 생각부터 든다. 예전 같으면 허리를 기꺼이 숙여 줍던 동전도 이제는 귀찮게 느껴진다. 아이들에게 동전을 건네주면 그 옛날 나처럼 눈이 반짝이지 않는다. “이걸 어디에 써?” 하는 표정이 동전의 운명을 대변한다. 아이들의 세상에서는 이미 교통카드와 휴대폰 간편 결제가 당연해졌다. 동전은 그저 서랍 구석에 굴러다니거나, 어쩌다 세탁기 속에서 발견되는 철 지난 손님이 되어버렸다.

이제 동전은 손에서 거의 쓰이지 않는다. 하지만 손바닥에 올려둔 동전을 천천히 바라보고 있으면, 묘한 감정이 차오른다. 오래된 동전의 뒷면에 새겨진 연도를 들여다보면, 그 숫자마다 내가 몇 살이었는지, 어떤 계절을 살고 있었는지가 선명히 떠오른다. 1988, 1992, 2001. 숫자는 단순한 연도가 아니라 나의 한 시절을 부르는 암호 같다. 동전의 반짝임 속에는 나라의 상징이 새겨져 있고, 그 금속의 표면에는 수많은 손길이 스쳐 간 시간이 묻어 있다. 그렇게 작은 원 안에 시간과 기억이 고스란히 새겨져 있다는 사실은, 오히려 지금이라 더 크게 다가온다.

동전은 이제 많은 사람들에게 그저 불편한 짐일지 모른다. 하지만 내게 동전은 여전히 총천연색의 기억으로 남아 있다. 신호등 사탕의 달콤함, 포장마차 떡볶이의 뜨거운 국물, 또각 소리를 내며 무거워지던 저금통. 그 장면들은 오래된 영화처럼 빛바랜 것이 아니라, 아직도 눈앞에 생생하다. 세월이 흘렀어도 그때의 공기와 냄새, 웃음소리와 설렘은 그대로 남아 있다.

그래서 요즘도 가끔 동전 하나를 손에 쥐면, 어디에 쓸 수 있을까보다 먼저 떠오르는 건 그 시절의 풍경이다. 동전 하나로 두 가지 간식을 살 수 있던 단순한 행복, 친구들과 떡볶이를 나눠 먹던 뜨거운 웃음. 그 기억이 손바닥 위에 고스란히 되살아나는 순간, 나는 괜히 미소가 번진다. 동전은 이제 사라져 가는 화폐일지 몰라도, 내 마음속에서는 여전히 가장 반짝이는 보물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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