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탈을 꿈꾸는 흐린 날
04/23/18  

비가 귀한 캘리포니아에 오래 살다보니 비가 내리는 날이면 괜히 마음이 설렙니다며칠 전하늘에 구멍이라도 뚫린 듯 비를 퍼붓는데 한참 동안 밖을 내다 보며 좋아했답니다.

 

어릴 때부터 그랬지만 이런 날은 학교에 가도 공부할 기분이 아니고 직장에 가도 기분이 싱숭생숭하고 하물며 그냥 집에 있어도 매일 하던 집안 일이 손에 잡히지 않습니다.

그냥 이불 속에 쏙 들어가 뒹굴뒹굴하다가 일어나고 싶을 때 일어나서 간단하게 라면이나끓여 먹고 재미있는 TV 프로를 보거나 읽고 싶은 책 속에 푹 빠지거나 컴퓨터 앞에 앉아 사고 싶은 위시리스트를 작성하며 그냥 소소하게 하루를 만끽하고 싶습니다.

 

이런 날은 드라이해도 헤어가 부시시공들여 화장을 해도 피부가 푸석푸석 칙칙하고 대중교통을 이용하기도 불편하고 운전하고 나가도 고생이고 미리 잡아놓은 약속도 캔슬하고만싶고 오늘 꼭 해야지하고 다짐했던 수많은 것들을 내일로 미루고만 싶습니다.

 

흐린 날비오는 날을 싫어해서가 아니에요이런 날 괜히 무기력해지고 만사 귀찮기

때문만은 아니에요.  비오는 날에 대한 나의 감수성이 그렇게  형성이 되어서 그냥 그렇게하고 싶다는 욕구가 생겨나요.  회색 하늘에 찬 바람비에 젖은 땅 냄새만으로 감수성100% 충전 완료!

 

학창 시절 비 오는 날 수업하러 들어오시는 선생님을 향해 "선생님!!! 오늘 수업  안 하면안돼요?"라며 아이들을 선동하고 난처해하는 선생님을 향해(나의 목표는 노련한 베테랑 선생님들이 아니고 이제 막 교직에 입문하신 파릇파릇 젊은 선생님들첫사랑 이야기첫 키스 이야기 해 달라며 졸라대던 ""이기에 삼십대의 어른인 지금도 여전히 비오는 날은 어떠한 일탈…... 원래 해야 하는 루틴 일상을 벗어난 그 무엇을 기대하고 꿈꾸는 것 같아요.  

 

그 일탈이 그저 매일 먹던 밥 대신 라면을 먹는 거, 30분 조퇴하고 집에 일찍 가는 거,  요리 안 하고 투고 음식 사먹는 거샤워를  스킵하고 자버리는 것과 같이 사소한 것일지라도

 "절대 안 돼!"하는 것들로부터 한 번쯤은잠깐은 해방되었다는 짜릿함에 야릇한 웃음이흘러나오는 걸요흐린 날이 많은 시애틀에 살지 않는 것을 다행이라 여기며 소소한 일탈을즐기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요?

 

오늘 여러분이 계신 곳의 날씨는  여러분 마음의 날씨는 어떤가요?

늦가을 햇살이 좋아 룰루랄라 외출하고픈 날인가요?

어제 먹은 야식이 아직 채 소화되지도 않았는데 또 뭘 먹을까…... 먹고 싶은 게 많은 날인가요?  

밀린 일들이 많지만 반나절쯤 푹 쉬고 싶은 날인가요?

아니면 묵은 먼지를 털어버리고 깨끗이 시작하고 싶은청소가 나를 부르는 날인가요?  

 

날씨를 명목으로 하루쯤 색다르게 보내보는 것도 우리가 누릴 수 있는 최고의 호사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비오는 날의 빈대떡이 제일 맛있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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