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이터
06/12/18  

요즘 해가 일찍 뜨는 탓인지 우리집 아이들은 오전 6시만 넘으면 하나둘 일어나기 시작한다. 학교 시작이 9시이니 7시 반 정도에만 일어나도 충분한데 너무 일찍 일어나서 자꾸 큰 소리를 내니 이른 기상이 엄마는 별로 탐탁지않다. 휴일이나 주말이면 아이들은 평소보다 더 일찍 일어나 몸을 배배꼬며 심심해 한다.  지난 현충일에도 마찬가지였다. 공휴일이라 엄마 아빠는 모처럼 늦잠이라도 자고 싶은데 아이들은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일찍 일어나서 몰려다니며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아침을 다 먹이고 났는데도 겨우 오전 8시, 일찍부터 시작된 휴일을 어찌 보내야할지 고민하다가  에너지 넘치는 이 아이들을 밖에 나가 좀 놀게하는 것이 좋겠다 싶어서 온 가족이 함께 집 앞 놀이터에 갔다.

 

아파트 단지 내 놀이터인데 바로 집 앞이다보니 참새 방앗간처럼 우리 아이들이 오며 가며 자주 들르는 곳이다. 하지만 요즘에는 놀이터에서 또래의 초등학생 보기가 드물고 고학년의 경우는 더욱 그러하다. 아직 유치원도 들어가지 않은 영유아들이 주로 보호자와 함께 오고 유치원생이나 초등학생들은 학원 버스에 오르기 전후 10-15분 잠시 머물다가 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내가 어릴 때는 딱히 만나자는 약속을 하지 않아도 밖에 나가면 항상 친구들이 있었다. 그 당시 놀이터는 아이들의 천국이었고 놀이터가 없는 주택가에 사는 아이들에게 아파트 놀이터는 부러움의 대상 그 자체였다. 군더더기 없는 기본형의 미끄럼틀, 그네, 시소, 철봉만 있었는데도 할 수 있는 놀이가 무궁무진했다. 놀이터는 비가 오면 물이 고이고 눈이 오면 눈이 쌓이는대로 아이들에게 최고의 놀잇감을 선사했다.

 

어릴 때 운동신경이 발달하지 못했던 나는 그네에서 뛰어 내리기, 철봉에서 한 바퀴 돌기 등을 잘 하는 친구들을 부러워하면서 미끄럼틀에서 하는 “탈출”이라는 놀이를 제일 좋아했다. 술래가 눈을 감고 땅에서 열을 샌 후 계단 위로 오르기 시작하면 나머지 친구들은 미끄럼틀 안에서 눈감은 술래를 피해 다니다가 계단 아래로 내려오면 종료되는 놀이였다. 원숭이처럼 미끄럼틀의 구석구석을 재빨리 옮겨 다니는 놀이이다 보니 민첩성과 팔 근력이 좋을수록 유리했다. 땅에 몸이 닿거나 술래가 터치를 하면 그 사람이 술래가 되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과연 술래는 처음부터 끝까지 줄기차게 눈을 감고 있었을까? 진짜 눈을 감고 시작했더라도 결국 본인의 안전을 위해서라도 샛눈을 뜰 수밖에 없지 않았을까 싶다. 하지만 아이들은 대체적으로 술래를 믿고 놀이를 계속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머릿속으로 탈출 놀이 방법을 추억해 내다보니 갑자기 다시 해 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요즘 미끄럼틀은 복합형 구조로 진화해서 “탈출” 놀이를 하게 된다면 쉽게 놀이가 끝나지 않아 술래가 꽤나 곤혹스러울 수 있으므로 아예 술래가 눈을 감지 않아도 괜찮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강산이 서너 번 바뀔 만큼 세월이 흘렀고 환경이 달라졌다지만 사실 아이들 자체는 우리 때나 요즘이나 별반 달라진 게 없다. 요즘 아이들도 흙이나 모래를 좋아하고 놀이터에 몇 개 안 되는 그네를 타기 위해 줄을 서고 놀이터 주변에 모든 것을 놀이 도구로 활용하며 가르쳐주지 않아도 알아서 잘 논다. 아이들은 어른이 개입되지 않은 상황에서 함께 어울려 놀면서 놀이 규칙도 스스로 만들고 서로 존중하고 경쟁하며 이기고 지는 방법도 자연스레 습득하며 성장하는 것이 가장 건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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