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리더들의 약진 - 상징을 넘어 제도로
10/13/25  

2025년 가을, 세계 종교와 정치 무대가 ‘첫 여성’이라는 제목으로 흔들리고 있다. 영국 성공회는 역사상 최초로 사라 멀릴리(Sarah Mullally)를 캔터베리 대주교로 내정했고, 일본에서는 다카이치 사나에(高市早苗)가 자민당 새 총재로 선출되며 일본의 첫 여성 총리가 사실상 확정되었다. 이 두 인물의 등장은 오랜 세월 남성 중심으로 닫혀 있던 최고 권력 구조를 깼다는 점에서 인류가 또 다른 ‘유리천장’을 부수는 장면으로 기억될 것이다.

유엔여성기구(UN Women)가 2024년 말 기준으로 발표한 통계에 따르면, 세계 193개 회원국 가운데 여성이 국가원수나 정부수반인 나라는 25개국에 지나지 않는다. 즉 전체의 약 13%에 불과하며, 내각 내 여성 장관 비율은 평균 22.9%에 머무르고 있다.

여성 리더의 비중은 지역별로 큰 차이를 보인다. 북유럽은 평균 40%대의 여성 장관 비율을 기록하며 성평등 선진 지역으로 꼽히지만, 아시아 전체의 평균은 12~15% 수준에 머무른다. 한국은 여성 국회의원 비율이 19%, 일본은 10% 내외로 정치의 중심부는 여전히 남성의 공간이라는 사실이 통계로 드러난다.

한편 세계경제포럼(WEF)이 발표한 ‘2025 세계 젠더격차보고서(Global Gender Gap Report)’는 전 세계 평균 젠더격차 해소율을 68.8%로 집계했다. 2024년 68.5%에서 0.3%포인트 오른 수치다. 특히 정치적 권한 부여 영역은 격차가 가장 심각하다. 여성 의원, 장관, 정상급 인사 비율이 다른 영역보다 훨씬 낮기 때문이다. 변화는 진행 중이지만 그 속도는 느리고 구조적 장벽은 여전히 견고하다.

다카이치 사나에의 총리 지명은 일본 정치 140년 역사에서, 멀릴리의 대주교 내정은 성공회가 제도화된 이후 약 500년, 그리고 캔터베리 대주교좌의 1,400년 역사에서 전례 없는 사건이다. 이는 그 자체로 거대한 상징이다. 권력과 신앙의 최고 자리에 여성이 있다는 사실은 “여성도 최고 결정권자가 될 수 있다”는 집단적 인식의 전환을 불러온다.

그러나 상징은 변화를 여는 문일 뿐, 변화 그 자체는 아니다.
다카이치 총재는 보수적 안보 노선과 전통적 가족관을 중시하는 정치인이다. 그의 리더십이 곧 ‘페미니즘 정치’로 이어질 것이라고 기대하긴 어렵다. 반면 멀릴리 대주교는 간호사 출신으로서 돌봄의 영성을 강조하며, 교회내 성평등과 사회적 약자 포용을 주요 과제로 내세우고 있다. 하지만 성공회 내부의 보수 성직자들 사이에서는 여전히 논쟁의 대상이다.

이처럼 여성 지도자들의 등장은 정치적 진보의 보증서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성별이 아니라 그 리더가 어떤 가치와 정책을 실천하느냐이다.

젠더평등지수(GGI)의 세부 항목을 보면, ‘교육 기회’와 ‘건강·생존’ 부문은 이미 대부분의 나라에서 95% 이상 해소되었다.
하지만 ‘경제 참여’와 ‘정치 권한 부여’는 여전히 절반에도 못 미친다. 즉, 여성들이 공부하고 일할 수 있는 길은 열렸지만, 결정권과 보상의 영역에서는 여전히 불평등이 지속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정치·경제의 핵심 자리에 여성이 드물다는 것은 ‘대표성의 한계’를 넘어, 의사결정의 편향을 의미한다. 예산, 복지, 안보, 기후정책 등 국가의 중대 사안이 남성 중심 시각으로 설계될 가능성이 높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진정한 평등을 원한다면 상징적 인물의 등장을 넘어 제도와 문화의 재편으로 나아가야 한다. 정당 공천제도의 성별 균형, 육아·돌봄 지원, 기업 내 승진 구조의 투명성 등이 병행되지 않는다면 평등의 속도는 더딜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사라 멀릴리와 다카이치 사나에의 등장은 분명한 ‘시대의 표지(標識)’다. 이들의 존재 자체가 다음 세대 여성과 남성 모두에게 새로운 기준을 제시한다. “리더십에 성별은 없다”는 메시지가 사회적 상상력을 확장하는 것이다.

다음 세대가 이 상징을 현실로 완성하기 위해서 교육과 정치 참여, 미디어와 기업 문화 전반에서 성평등의 감수성을 체득해야 한다. 평등의 완성을 위해 여성의 진입뿐 아니라 남성의 인식전환도 필요하다. 남성들이 돌봄과 협력의 가치속에서 새로운 리더십을 배울 때 비로소 사회 전체의 구조가 변한다.

GGI의 0.3%포인트 상승은 미미해 보일 수 있다. 그러나 그 뒤에는 수많은 개인과 단체, 그리고 무명의 여성들이 쌓아온 노력이 있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 작은 변화들이 모여 결국 사회의 궤도를 바꾼다.

여성 리더들의 등장은 분명 인류가 평등으로 향하고 있다는 신호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아직 가야할 길은 멀다. 다카이치 총리실 책상과 멀릴리 대주교좌(座)는 그 여정의 중간 지점에 놓인 이정표다. 온 세계가 그들이 어떤 가치를 실천하며, 어떤 사회를 만들어가는지 지켜볼 것이다. 상징은 문을 열었다. 이제 그 문을 넘어 평등의 길을 걸어가는 일은 우리 모두의 몫이다.

안창해. 타운뉴스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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