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미는 내 국민학교 시절을 통틀어 가장 따뜻한 기억의 색을 가진 친구다. 초등학교 4학년 때 같은 반이었지만 그땐 그저 아는 얼굴 정도였다. 진짜 친구가 된 건 6학년 성당에서 세례를 함께 받으면서부터였다. 그때의 보미는 세상 모든 빛을 조금씩 품은 사람 같았다. 명랑했지만 결코 시끄럽지 않았고 조용히 늘 주변을 밝히는 온기를 지닌 아이였다. 목소리는 부드럽고 다정했는데 이상하게 그 말을 듣다 보면 자꾸 귀를 기울이게 됐다. 이야기를 하면 사람을 몰입시키는 힘이 있었고 말끝에는 늘 다정함이 남았다.
그녀는 사람을 기억하는 법이 남달랐다. 내가 좋아한다고 말한 사소한 물건과 지나가듯 흘린 말과 그날의 표정 같은 것들을 마음속에 담았다가 한참 후에 꺼내며 웃었다. "그거 좋아했잖아. 그때 이렇게 말했잖아." 그렇게 기억으로 마음을 잇는 사람이었다. 나는 그런 보미를 닮고 싶었다. 다정하고 세심하고 따뜻한 사람. 누구와도 친구가 될 수 있는 사람. 그래서 그녀가 좋은 문장을 적으면 나도 따라 적었고 편지를 쓰면 나도 편지를 썼다. 그 당시 보미가 좋아하던 파란색은 나의 색이 되었다. 왜 그랬는지는 설명할 수 없지만 그저 보미가 좋아하던 것들을 함께 좋아하고 싶었다. 그 시절 내게 닮고 싶은 마음이란 그런 거였다.
하지만 지금 생각하면 우리는 참 다른 사람이다. 성격도 다르고 살아가는 방식도 다르고 세상을 대하는 온도도 취향도 다르다. 하지만 그 차이 속에도 묘하게 닮은 결이 있다. 억지로 맞춘 적 없는데도 통하는 마음이랄까... 말하지 않아도 이어지는 어떤 감각. 그 끈이 오래된 우정의 본질일지도 모르겠다. 서로의 삶이 다른 방향으로 흘러도 그 결은 항상 조용히 이어지고 있었다.
중학교 2학년 여름, 나는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 그렇게 멀리 떨어져 살게 되었지만 우리의 연결은 끊기지 않았다. 보미는 내 생일이면 어김없이 전화카드로 국제전화를 걸어왔다. 몇 분 안 되는 통화였지만, 그 시간은 세상의 모든 거리를 무너뜨렸다. 편지 릴레이도 끊기지 않았다. 우리는 편지를 주고받으며 서로의 삶을 이어갔다. 우리는 각자 좋아하는 노래를 녹음한 테이프를 보냈고, 일상과 친구들, 마음에 남는 글귀들을 편지지에 꾹꾹 눌러 담아 보냈다. 그 시절의 편지엔 푸르른 싱그러움이 가득하다.
20년 넘게 타국에서 살았지만, 그 편지들 덕분에 나는 늘 연결되어 있다고 느꼈다. 낯선 나라에서 서글프고 외로웠던 날들 속에서도 보미는 내 삶에 들어오는 빛 같은 존재였다. 외로움에 젖은 마음을 데워주던 사람, 내 기도의 시작이자 끝이었다. 그리고 그건 지금도 변함이 없다. 세월이 흘러도, 거리가 아무리 멀어도, 그 기도의 자리는 여전히 그녀의 이름으로 시작해 그녀의 이름으로 끝난다.
대학생이 되어 잠시 한국에 나왔을 때 우리는 다시 만났다. 전라남도 땅끝마을, 보성, 부산, 강릉, 오동도... 가고 싶은 곳은 망설임 없이 며칠씩 짬을 내어 함께 떠났다. 차도 없었지만 우리는 어디든 갔다. 버스를 타고, 시골 마을버스를 갈아타고, 때로는 동네 주민의 트럭을 얻어 타며 웃었다. 낯선 곳에서 길을 잃어도 웃음이 먼저 터졌고, 어딜 가든 “좋다”는 말이 입에서 흘러나왔다. 그 시절의 여행은 가난했고 어설펐지만 그 어떤 럭셔리한 일정보다 풍성했다. 아마도 마음이 가벼워서였을 것이다. 지도와 스마트폰이 없어도 길은 늘 있었다. 길을 잃는 것도 여행의 일부였고, 낯선 곳에서도 우리는 금세 익숙해졌다. 보미는 그런 친구였다. 낯선 곳에서도 곁에 있으면 길이 생기고 불안이 사라지는 사람. 그때의 여행은 내 인생에서 가장 오래 남는 장면 중 하나가 되었다.
그리고 며칠 전 우리는 구례로 여행을 다녀왔다. 평소 꼼꼼하게 일정을 짜는 보미가 이번엔 아무 계획도 세우지 말자고 했고 나도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그때 마음이 가는 대로 휴게소에 들러 간식을 사 먹고 길가의 풍경이 너무 예쁘면 잠시 차를 세웠다. 구례는 처음이었지만 관광이랍시고 여기저기 들리지 않았고 풍경을 오래 바라보고 서로의 말을 들으며 쉬었다. 우리는 연신 “좋다, 아 너무 좋다”를 되풀이했다. 그 말은 풍경을 향한 감탄이기도 했지만 어쩌면 오래전 우리를 향한 인사에 가까웠다. 여행 내내 마치 시간을 거슬러 올라간 사람들처럼 푸르던 시절로 돌아간 기분이었다. 모든 것이 새로웠고, 별것 아닌 일에도 감탄이 터졌다. 한때는 그렇게 세상을 바라보던 우리가 있었다. 중년의 나이에 다시 그 마음으로 웃고 있는 게 이상하면서도 좋아서 참으로 행복했다. 오래 전의 우리를 잠시 빌려온 듯한 시간이었다.
돌아오는 길, 창밖으로 들판이 길게 이어져 있었다. 추수를 앞둔 벼들이 고개를 숙이고 있었고, 그 사이로 바람이 지나가며 잎들이 파도처럼 흔들렸다. 우리는 음악도 끄고 조용히 그 풍경을 바라봤다. 아무 말이 없었지만 마음은 같은 방향으로 흘렀다. 오래된 친구와의 여행은 꼭 무언가를 해야 완성되는 게 아니라,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은 순간으로 채워진다는 걸 이번에 다시 알았다.
나는 다음 날 사진과 영상을 정리하다가 작은 우연을 발견했다. 녹화 버튼을 모르고 눌러 찍힌 몇 초짜리 영상 속에서 내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구례에 누가 가자고 했지. 아 너무 잘했다." 그 며칠이 오래오래 나를 지탱해 줄 거라고. 아마 인생의 어떤 순간은 그렇게 단순하게 남는지도 모르겠다. 이유 없이 좋았던 시간, 함께 있어서 더 따뜻했던 마음, 그리고 그 기억 하나로도 삶이 조금은 덜 외로워지는 시간.
보미와 나는 여전히 같은 하늘 아래, 서로 다른 속도로 살아가고 있다. 삶의 방향은 달라졌고, 걸음의 리듬도 달라졌지만, 이상하게도 같은 결의 마음이 남아 있다. 오래된 친구 사이에는 설명할 수 없는 묘한 온도가 있어서 말하지 않아도 안다. 연락이 뜸해도 마음은 늘 제자리로 돌아온다. ‘다음엔 어디 갈까’라는 말은 하지 않았지만 나는 알고 있다. 우리가 어딘가에서 또 함께 걷게 될 거라는 걸. 같은 하늘을 바라보며 다른 길을 걸어도 결국 우리는 같은 계절을 통과한다. 그리고 그렇게 서로의 세상을 오랫동안 비추며 살아간다. 그것이면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