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얼마 전부터 가끔씩 가슴이 욱신거렸다. 운동 후에 오는 근육통과 비슷했지만, 하필 위치가 심장 근처라 신경이 쓰였다. 비슷한 통증이 주기적으로 반복되자 마음 한켠이 불편해졌다. 가족력에 심장질환도 있는 터라 점점 불안해지기도 했다. 그래도 하루 자고 나면 증상이 잦아들었기에 ‘별일 아니겠지’ 하며 몇 달을 미루었다.
그러다가 며칠 전 고양이 화장실을 치우다가 다시 그 통증이 찾아왔다. 냄새를 피해 코로 숨을 참은 채 입으로만 숨을 쉬었는데 허리를 펴는 순간 가슴 한가운데가 찌릿하게 아팠다. 순간 몸이 얼어붙었다. 숨을 깊이 들이쉬면 통증이 번졌고 가슴을 펴기도 어려웠다. 손으로 가슴을 눌러보니 근육이 뻣뻣하게 당기는 느낌이 들었다. 심장이 문제인가, 근육인가, 그 사이 어디쯤인가.
다음날 아침에도 통증은 사라지지 않았다. 심지어 잠에서 깰 때 병원에서 암 진단을 받는 꿈을 꾸고 있었으니 나름 스트레스를 단단히 받은 모양이었다. 결국 오전 시간을 내 병원으로 향했다. ‘심장내과’라는 글자가 유난히 눈에 들어왔다. 접수대 앞엔 혼자 온 어르신들이 서 있었고, 대기실 의자엔 주로 남성들이 하나둘 앉아 있었다. 조금 지나니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 온 듯한 여성 환자들이 들어왔다. 그들 중엔 나보다 젊은 사람도, 나보다 더 지쳐 보이는 사람도 있었다. 다들 각자의 통증을 품은 채 순서를 기다리는 얼굴이었다.
엑스레이를 찍고 진료실에 들어가자 의사가 말했다. “심장 크기도 정상이고 폐도 깨끗합니다.” 그 말에 안도감이 밀려왔다. “통증이 심하면 소염제를 드릴게요.” 담담한 말투였지만, 그 말이 내겐 처방전보다 큰 약이 되었다. 의사는 덧붙였다. “상체 운동을 좀 많이 하셨나요?” 나는 고개를 저었다. 필라테스를 주 2~3회 하긴 하지만 그마저도 ‘운동했다’고 부르기 민망할 정도로 가볍다. 무리한 적도 땀을 쏟을 만큼 격하게 한 적도 없다. 그렇다면 도대체 왜일까. 나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스스로에게 물었지만 도무지 떠오르는 게 없었다.
하지만 병원을 나서며 마음이 이상하게 편안해졌다. 아마도 의사의 “별일 아닙니다”라는 한마디가 마음의 단단한 매듭을 풀어준 것 같다. 몸의 통증보다 ‘혹시 심장이 문제면 어쩌지’라는 불안이 더 아팠던 걸지도 모른다. 집에 돌아오자 신기하게도 통증이 더 줄어들었다. 마치 가슴 한가운데 숨겨둔 걱정이 빠져나가듯 가벼워졌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자 통증은 거의 사라졌다. 약 때문인지, 안도감 때문인지, 아니면 둘 다인지 알 수 없지만 어쨌든 괜찮아졌다.
사실 그보다 얼마 전에는 허리 때문에 고생한 적도 있었다. 평소에도 허리가 약한 편이라 조금만 무리해도 바로 신호가 온다. 그런데 그날따라 유난히 강하게 아팠다. 앉았다 일어날 때마다 찌릿했고, 침대에 누워 뒤척이는 것도 힘들었다. 남편이 자기 전 파스를 붙여주고 소염제도 챙겨주었다. 나는 늘 하던 대로 “괜찮아, 하루 자면 나아질 거야” 하며 버텼지만 이틀째 되는 날엔 일상생활이 어려울 만큼 악화되었다. 설거지를 하다 허리를 펼 수가 없어서 한참을 싱크대에 매달려 있었다. 결국 남편의 성화에 못 이겨 한의원으로 갔다.
침을 맞고, 부황을 뜨고, 찜질을 하며 이틀을 꼬박 다녔다. 의사는 “요추 주변 근육이 꽉 뭉쳤네요”라며 웃었다. 치료를 받자 조금씩 나아졌고, 사흘째 되는 날엔 간신히 허리를 펴고 걸을 수 있었다. 그제야 일상으로 복귀했지만, 몸이 회복된 후에도 마음은 한동안 가라앉은 채였다. 허리가 아팠던 며칠 동안은 마치 세상이 전부 무겁게 내려앉은 듯했다. 움직임이 줄어들면 생각이 많아지고, 생각이 많아지면 또 몸이 무거워진다. 몸이 아프면 마음도 따라 눌린다.
어쩌면 몸을 챙기는 일은 단순히 건강을 유지하는 게 아니라 마음을 돌보는 일이기도 하다. 내가 스스로를 무시하고 버티면 몸이 대신 말을 건다. “이제 좀 쉬자” “조금만 덜 애써도 돼” 하고. 가슴 통증도, 허리 통증도 어쩌면 다 그런 신호였던 것 같다.
병원에서 돌아오던 날의 따뜻한 햇살이 기억난다. 가을 공기가 차가웠지만 햇살만큼은 마음속 응어리가 녹듯 따스하고 부드러웠다. 그때 나는 조용히 결심했다. 아프기 전에 멈출 줄 아는 사람이 되자고. 마음이 조급해질 때, 몸이 피곤할 때, 그저 괜찮다고 넘기지 말고 조금만 나를 아껴주자고.
몸은 마음보다 훨씬 솔직하다. 마음은 얼마든지 숨길 수 있지만, 몸은 언제나 그 거짓말을 알아챈다. 괜찮은 척해도, 아무렇지 않은 척해도 결국엔 가장 약한 곳부터 신호를 보낸다. 그게 가슴이든 허리든, 어쩌면 마음의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것들이 몸을 통해 터져 나오는 것인지도 모른다.
아픔은 여전히 불편하지만, 동시에 나를 잠시 멈추게 하는 표식이기도 하다. 너무 오래 참고 있지 않은지, 내 마음을 또 소홀히 하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게 만드는 작은 멈춤 사인이랄까. 언젠가 또 다른 통증이 찾아올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때는 두려워하기보다 내 몸과 마음에게 조금 더 다정하게 반응하고 싶다. 그렇게 내 안의 신호와 대화하며 사는 것, 그것이 나이가 들수록 배워야 할 새로운 방식의 자기 돌봄이자 가장 단순한 건강의 비결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