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
06/18/18  

성조기와 인공기가 번갈아가며 휘장처럼 드리워져 있었다.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이 양편에서 걸어 나왔다. 두 정상은 중앙에서 만나 손을 마주 잡았다. 두 정상은 악수를 하고 어깨를 나란히 하고 회담장으로 들어갔다. 능수능란한 배우들의 연기를 보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단독 회담을 하기 전에 트럼프 대통령은 "우리는 아주 크게 성공할 것으로 믿는다"며 "전혀 의심 없이 좋은 관계를 맺을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는 회담을 앞둔 사람으로서 의례적으로 할 수 있는 평범한 말이다.

 

이에 대해 김 위원장은 "우리한테는 우리 발목을 잡는 과거가 있고, 그릇된 편견과 관행들이 때로는 우리 눈과 귀를 가리기도 했는데, 우리는 모든 것을 이겨내고 이 자리까지 왔다"고 말했다. 참으로 의미심장한 발언이다. 이 한 마디 속에 담긴 수많은 의미들을 찾아 읽어야 한다. 김정은 위원장이 태어나기 훨씬 전부터 오랜 시간 쌓인 역사를 한 마디로 표현한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That''''s true"라고 하면서 김 위원장에게 악수를 건네고 엄지손가락을 들어보였다.

 

약 45분간의 단독 회담 이후 이어진 확대 회담에서는 한층 더 무르익은 대화가 오갔다. 김 위원장은 "우리는 무겁게 우리의 어깨를 짓눌러온 과거를 성공적으로 털어냈다"며 "우리는 이 회담에 대한 회의와 의심들을 극복했다"고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나도 그렇게 믿는다(I believe, too)"고 화답했다. 김정은 위원장의 발언은 한 마디 한 마디가 오랜 기간 숙성시킨 장같은 맛과 깊이가 느껴지는데 비해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은 그저 그 말 그 자체의 의미 이외에는 큰 느낌을 주지 않는다. 마치 밭에서 갓 딴 오이나 토마토를 씻지도 않고 그대로 먹는 느낌이라고 할까.

 

북미정상회담 합의문에는 ‘양국은 평화와 번영 열망에 따라 새로운 관계를 수립한다’ ‘양국은 한반도 지속·안정적 평화 구축을 위해 협력한다’ ‘북한은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위해 노력한다’ ‘북한은 신원 확인된 전쟁포로·실종자 등을 즉각 송환한다’ 등의 총 4가지 협약이 담겨 있다.

 

두 정상은 북미 공동 합의문에 대해 자신감을 드러내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합의문은 상당히 포괄적"이라며"양측 모두 굉장히 놀랄 것이다. 오늘 일어난 일에 대해 굉장히 자부심을 느낀다"고 했다.

김 위원장 역시 "세상은 아마 중대한 변화를 보게 될 것"이라며 "역사적인 이 만남에서 지난 과거를 딛고 새로운 출발을 알리는 역사적인 서명을 하게 된다"고 말했다.

 

이 합의문을 비판적인 입장에서 보자면 ‘북한 비핵화에 대해 흐리멍텅하다. 비핵화 일정, 검증, 이행 절차 등을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북한은 한미 연합 군사훈련 중단 등의 성과를 이끌어냈지만 미국은 구체적 일정도 없는 비핵화 약속만을 얻는 데 그쳤다’ 등의 견해를 나타낼 수 있다.

반면 ‘북한과 미국이 서로 전쟁 위협을 하며 극한 대치를 했을 때보다는 평화를 향해 커다란 진전을 이룬 것이다’, ‘북미 간 의견 일치를 이뤄 공동합의문을 발표한 것 자체로도 큰 역사적 의미가 있다’ 등의 긍정적인 시각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북미 간의 싱가포르 정상회담은 길고 어려운 협상의 시작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이번 회담으로 고위급 협상과 비핵화 검증 절차를 시작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는 점에 그 의의를 두어야 한다.

합의문대로 시행이 되어 남북긴장이 해소되면서 한반도에 평화가 정착되고, 한반도에서의 군사비 지출을 줄인다면 미국과 한국은 막대한 경제적 이득을 얻을 것이고 북한도 이에 상응하는 이득을 얻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개인적으로는 많은 아쉬움이 있다. 핵실험을 하면서 미사일을 펑펑 쏴 올리며 세계를 위협하던 북한이 마치 세계 평화에 크게 기여라도 한 양 세계 언론들의 북한 띄우기가 연일 계속되고 있으니 말이다.

트럼프 대통령 역시 마구잡이 발언을 해대며 뉴스거리를 연일 제공하더니 급기야 성추문에 러시아스캔들까지 연루되며 제기된 대통령 자격에 대한 국내외의 회의적인 여론을 희석시키기 위해 희대의 쇼를 펼치고 있다는 생각도 든다.

 

북미간의 싱가포르 정상회담이 김정은 위원장이 주도면밀하게 기획하여 그와 트럼프 대통령이 주연으로 참여한 연극이 아니기를 바란다. 이런 생각이 필자만의 기우에 지나지 않기를, 더 나아가 이번 정상회담이 한반도 평화와 세계 평화의 출발을 알리는 신호탄이 되기를 바란다.

안창해. 타운뉴스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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