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을 향한 꿈
04/23/18  

사람들은 결혼 전 결혼에 대해 저마다의 꿈과 환상을 갖고 있다. 나에게는 결혼에 대한 소박한 꿈이 세가지 있었다. 고등학교 때부터 이 꿈들은 크고 작은 시련과 변화를 겪으며 성장했고 구체화 되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첫 번째로 나는 초등학교 동창을 만나서 결혼하고 싶었다. 둘째, 너무 어리지도 너무 늙지도 않은 만 스물여섯이 되는 해에 결혼을 하고 싶었으며 마지막으로 결혼식 때 눈물을 보이지 않는 씩씩하고 밝은 신부가 되고 싶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놀랍게도 이 세가지 꿈을 다 이루었다. 나의 소망이 현실적이고 수수했기 때문인지 아니면 이게 바로 그 운명이라는 것인지 기적처럼 모든 것이 일사천리로 진행되는 것이 놀랍기만 했다.

 

나는 거침없이 사랑에 빠졌고 3년 간의 열애 끝에 꿈꾸던 결혼까지 하게 되었다. 이 글을 읽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이 이와 비슷한 혹은 훨씬 근사하고 멋진 연애와 웨딩 스토리를 가슴에 간직하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세상을 살아가며 몸과 마음이 지치고 고단할 때 아름다웠던 순간들을 하나씩 꺼내보며 행복해 하기도 하고 또 그 시절을 그리워하기도 한다는 것을 안다.

 

내가 그랬다. 연애시절에 남편에게 선물했던 일기장을 펼치면 어느새 뜨거웠던 이십대 초반으로 날아가 있었다. 매일같이 만나는게 부담스러워서 일주일에 삼일만 만나면 어떨까라고 말했을 때 “어떻게 사랑한다면서 매일같이 내가 보고싶지않을 수 있어?”라며 불같이 화를 내던 남편의 얼굴을 떠올리며 빙그레 미소를 짓기도 한다.

 

연애와 결혼, 남편 험담과 자랑은 언제나 아줌마 모임의 단골 이야기 소재이고 그 날도 동네 아줌마 모임에서“남편”에 대한 이야기가 도마 위에 올랐고 순식간에 분위기롤 압도하고 있었다. 이런 자리에서 남편 자랑이라던지 알콩달콩 닭살부부의 행각들이 밝혀지면 부러움은 살망정 별재미가 없는 법이지만 적당한 험담이 시작되면 공감대가 200% 형성되고 처음 보는 사람도 금방 친구가 되어 하하호호 웃음이 만발하게 된다.

 

우리들 중 가장 성격이 좋고 유창한 말솜씨를 자랑하셨던 한 분의 사연인즉 가끔씩 남편이 너무 미울 때가 있는데 그럴 때면 정말 자고 있는 남편의 숨소리도 싫고 밥 먹는 모습은 또 얼마나 조잡한지 정이 뚝뚝 떨어진다는 것이었다. 그 이야기를 들으며 단 한명도 빠짐없이 모두 웃음을 터트렸고 그것은 공감에서 비롯된 것이었을 것이다‘. 어째서 사람이 미워지면 가장 원초적인 모습일 때, 정말 사소하고 아무것도 아닌 작은 부분이 못마땅하고 신경 쓰이는 것일까’생각하면서 나에게도 그런 순간이 있었다는 것을 부인하지 않았다.

 

두 번째 사연이 단연 최고였다. 이 분은 한동안 시댁과의 문제로 남편에게 맺힌 것이 많았고 틈틈이 복수의 기회를 노리다가 드디어 일을 저지르고 마는데 그 복수가 얼마나 기가 막힌지 듣는 순간‘헉~’하고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가도 그런 복수를 하고 말았다는 것이 너무나 귀엽고 사랑스러워서 웃음을 자아내게 만들었다. 복수인즉 남편의 칫솔을 살며시 꺼내 변기에 한번 푹 담근후 다시 원위치 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날밤 양치하러가는 남편을 바라보며 어찌나 통쾌하던지 그동안 담아두고 참아왔던 분노와 미움이 눈녹듯 사라졌다고 한다. 이 이야기를 들으며“왜 그러고 사나……”하며 한심해 하기는커녕 웬일인지 이 부부의 모습이 참으로 정답게 느껴졌다.

 

모두들 이렇게 살아가고 있구나 생각하니 외롭지 않았다. 앞으로 굳이 한창 때 주고 받았던 연애편지를 들추며 지난날을 추억하지 않아도, 우리에게도 열정적인 시절이 있었다는 것을 확인하지 않아도 괜찮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다른부부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만으로도 나는 마치그럴듯한 복수를 한 것처럼 가슴이 확 트이고 시원해져 버렸다.

 

아름다운 결혼을 꿈꾸던 아가씨는 어디 가고 결혼 생활의 복수를 공유하며 즐거워하고 있는지 스멀스멀 흐르는 세월을 탓하는 것도 부질없는짓임을 안다. 하지만 나는 계속해서 꿈을 꾸리라. 결혼의 꿈은 누구와 언제 어떻게 결혼하느냐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기에 아름다운 결혼 생활을 위해 예전처럼 세 가지 소원을 만들고 열심히 사랑하며 살아가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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