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전 게임
06/25/18  

멕시코가 유럽의 전차군단 독일을 물리치고, 일본이 콜롬비아를 격파하더니, 동유럽의 작은 나라 크로아티아는 남미의 강호 아르헨티나를 대파했다. 이런 이변이 속출하면서 러시아에서 열리고 있는 월드컵 16강의 윤곽이 잡혀가고 있다. 이 글을 읽을 때쯤이면 8강으로 향하는 싸움이 전개되고 있을 것이다.

한반도에서는 지난 4월 27일 열렸던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 간의 남북정상회담에 따른 후속 행사로 7월 6일부터 남북 농구 대표팀이 평양에서 경기를 하고, 8월에는 이산가족 상봉 행사가 열리는 등 남북 평화의 무드가 급물살을 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 한반도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일련의 국제 정세를 지켜보며 곧 통일의 문이 열릴 것이라는 기대보다 오히려 분단이 고착화되는 것이 아닐까 하는 걱정이 앞서는 것은 지나친 기우일까.

지난 5월 막내아들의 성적표를 보다가 깜짝 놀랐다. 지난 학기 수강 과목 중에 ‘Two Koreas and Northeast Asia’가 있었다. 아들이 그 과목을 선택한 것은 한국인의 피가 흐르는 사람으로서 당연하다고 할 수 있지만 메인 주의 조그만 시골 마을 Brunswick에 있는 학생수 2,000여명에 불과한 작은 학교에서 ‘두 개의 코리아와 극동아시아’라는 과목을 개설했다는 것은 충분히 놀랄 만한 일이다. 과목의 제목도 극동아시아라 하지 않고 ‘두 개의 코리아와 극동아시아’라고 했으니 극동아시아 국가들 가운데에서도 남북한이 세계인들의 관심을 받는 나라임에 분명하다.

언젠가 아들과 한반도 통일에 관해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당시 아들은 한반도의 통일은 절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리고 남북한 위정자들과 기득권층이 절대로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것을 내려놓으려 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이유로 들었다.

최근 벌어지고 있는 한반도 관련 상황들은 아들의 주장에 힘을 실어주고 있는 느낌이다. 서로의 체제를 인정하는 순간 이미 분단은 고착화되는 것이다. 상호체제를 인정하지 않고 대립되어 있을 때는 힘이 강한 쪽이 약한 쪽을 흡수할 수 있지만, 상호체제를 인정하고 평화가 유지되고 있는 상태에서 어느 한 쪽이 다른 쪽으로 병합될 것이라는 기대를 할 수는 없지 않은가?

더구나 미국과 중국과 같은 강대국은 물론 러시아, 일본 등 한반도 주변 국가들이 지금처럼 한반도의 분단 상황을 그들 국가들의 이익 추구의 도구로 삼으려 하는 이상 한반도 통일은 결코 남북한만의 의지로 이루어질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북미 정상회담 이후 트럼프는 마치 북한이 곧 미국의 손아귀에 들어온 것처럼 떠들고, 이를 자신의 공적으로 삼아 오는 11월 중간선거 승리를 기대하고 있다. 여기서 더 나아가 이를 바탕으로 재선을 위한 캠페인에도 돌입했다. 하지만 김정은은 싱가포르 회담 후 중국을 3번째 방문하며 중국과의 밀월 관계가 끝나지 않았음을 증명했다.

한반도 주변국들의 행보도 주목할 만하다. 일본은 한반도 상황 변화를 조성하는 일에서 ‘일본 패싱’을 우려하며 북한의 비핵화로 북한에 보상이 필요할 때 일본이 담당해야 할 역할이 있다고 존재감을 드러냈고, 러시아도 김대중 대통령 이후 19년 만에 문재인 대통령을 국빈으로 초청하며 한반도 문제에서 소외될 수 없음을 각인시켰다. 이처럼 한반도의 통일 문제는 비단 남북만의 문제가 아니라 세계 각국의 이해관계가 얽히고설킨 복잡한 양상을 띠고 있다. 그래서 더더욱 통일로 가는 길이 힘들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한반도 통일에 대한 의지를 접을 수는 없다. 비록 남북 상황이나 주변국들과의 상황이 한반도의 통일보다 오히려 분단을 고착시키고 있는 형국이라고 할지라도 상황의 변화는 언제든지 올 수도, 만들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어느 누구도 이번 월드컵에서 멕시코가 독일을, 일본이 콜롬비아를, 크로아티아가 아르헨티나를 이길 것이라고 예측하지 못했다. 예측은 과거와 현재의 객관적인 자료를 바탕으로 한다. 그 자료를 바탕으로 확률을 계산하고, 확률이 높은 쪽으로 예측하는 것이다. 하지만 결과는 언제나 높은 확률만을 따르지 않는다. 모든 사람들이 0.001%의 확률이라고, 그래서 가능성이 전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여겼을지라도 사람들의 예상을 뒤엎는 결과가 나오는 경우를 우리는 수도 없이 보아왔다.

한반도 통일의 문제도 그렇다. 상호체제 인정으로, 혹은 주변국들의 이해관계 때문에 한반도 통일은 갈수록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고 할지라도 우리는 0.001%의 가능성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 통일은 한국인이라면 이념과 세대를 뛰어 넘어 추구해야 할 절대 가치 가운데 하나이기 때문이다.

이 글을 쓰는 다음 날 아침 8시(미국시각)에는 한국과 멕시코의 한 판 승부가 벌어진다. 이른 시간이지만 몇몇 장소에서 한인들이 모여 단체 응원을 펼친다. 멀리 외국땅에 살면서 우리는 축구경기의 승리를 바라는 열정 이상으로 조국 통일을 기원하고 있다. 응원의 함성이 그대로 통일로 이어지기를 갈망한다.

안창해. 타운뉴스발행인
목록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