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픈 외국어
06/25/18  

미국에서 친구네 가족이 한국을 방문했다. 큰아들 친구로 인연을 맺기 시작해 엄마들끼리도 가끔 점심을 먹으며 고민을 털어놓을 수 있는 사이였고 자주 왕래하는 가장 가까운 이웃사촌이었다. 우리랑 똑같이 가족 모두 미국 시민이지만 원래 부모가 대만 출신이라 매년 연례행사처럼 방학 때마다 대만을 방문했다. 우리 가족의 한국행이 결정되었을 때부터 꼭 한번 한국에 놀러오겠다고 약속했었는데 이번 여름방학과 동시에 바로 약속을 이행한 것이다.

 

방학 때마다 가족 여행을 즐기고 한국 드라마 애청자에 한국 음식도 즐겨먹지만 한국 방문은 처음이라고 했다. 맛집 탐방부터 쇼핑, 관광까지 계획은 원대했으나 모든 것에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며 비협조적인 초등학생 두 아들 때문에 여행이 아주 순조롭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우리와는 삼 일을 함께 보냈고 하룻밤은 우리집에서 아이들을 함께 재웠는데 일주일간의 여행 중 가장 즐거웠던 시간으로 꼽아주니 그나마 다행이었다.

 

아이들의 재회에는 벅찬 감동 대신 어색한 눈빛 교환만이 있었지만 이는 5분도 채 되지 않아 게임 이야기로 대동단결되며 자연스럽게 흘러갔다. 형식적으로 근황을 묻거나 뻔한 이야기만 장황하게 늘어놓는 어른들의 대화와 달리 마치 어제 만나고 헤어진 사람들처럼 곧바로 본론으로 들어가 활기를 찾는 이들의 대화가 어쩐지 부러웠다. 그렇게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과 하루종일 실컷 웃고 떠들다가 온 아이에게 “오늘 하루가 어땠냐?”고 묻자 아이의 표정이 복잡해지며 이내 눈시울이 붉어졌다. 오늘 친구와 마음껏 대화할 수 있어서 너무 좋았다며 그동안 한국에서 한국어로 소통할 때 느꼈던 답답함에 대해 토로하는데 나는 조금 당황스러웠다.

 

아이가 한국에 와서 생각보다 훨씬 더 잘 적응하고 있다고 생각하며 안심하고 있었는데 실은 많이 힘들어 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아이는 본인이 태어나고 자란, 환경적으로나 언어적으로 가장 익숙하고 편안한 곳을 떠나 다른 환경, 낯선 문화, 서툰 언어,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며 크고 작은 시련을 겪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수많은 변화 중에서 가장 힘들었던 것이 바로 언어였을 것이다. 언어를 통해서 모든 것이 시작되고 가능해지며 결정되기 때문이다.

 

언어는 모든 종으로부터 인간을 구별할 뿐 아니라 생각이나 느낌을 나타내고 전달하는 가장 기본적인 수단으로 의식주만큼 중요하며 우리네 삶에 가장 가깝게 밀착되어 있다. 이 때문에 언어 구사가 자유롭지 않을 때 우리는 단순한 불편을 넘어서 캄캄한 좌절을 맛보게 된다. 외국어를 배워 본 사람은 모두 경험했겠지만 유창하지 않은 언어로 말한다는 것은 절대 쉬운 일이 아니다. 외국어로 말할 때는 눈알을 굴려가며 아는 단어를 조합해내느라 머릿속이 복잡해지는 반면 모국어로 이야기할 때는 특별한 수고 없이 편안하고 자연스럽게 대화를 즐길 수 있다. 이렇게 너무나 자명한 사실을 알면서도 어쩔 수 없이 그 유창하지 않은 외국어로 살아야 한다면 누구나 수백 번 아니 수만 번 더 머릿속이 새하얘지거나 얼굴이 시뻘게지는 상황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그래서 누가 정해 놓은 법도 아닌데 미국으로 이민 온 대부분의 한인들이 한인타운 근교에 모여 살고, 한인을 상대로 비지니스를 한다. 무엇보다 가장 편하기 때문이다. 뭐가 어쨌든 그래도 내가 제일 잘 하는 언어이고, 제일 잘 아는 민족이며, 제일 익숙한 문화이기 때문에 우리는 모여 사는 것을 선택한다. 그렇게 우리는 타지에서 외국어로 살아가는 고초와 외로움을 공감하고 위로하며 어떻게든 버티고 살아간다.

 

그동안 이런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친구조차 없이 서툰 한국어로 혼자 고군분투 했을 아이를 생각하니 어쩐지 짠한 감정이 넘실댄다. 바쁘다고, 힘들다고 흘려 넘겼던 아이의 풀 죽은 목소리와 어두운 낯을 이제는 절대로 그냥 지나치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해 본다.

 

미국에서 놀러왔던 친구와는 주말마다 온라인 게임을 함께 하기로 약속하고 헤어졌다. 마지막 날 아이들이 선뜻 다음 만남을 기약하지 못하는 것을 보며 아무 말도 해 줄 수 없었다. 그렇게 아이들은 하루 하루 스스로 커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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