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노을
07/02/18  

생일을 맞은 중학교 동창생을 축하하고자 친구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저녁 무렵이 되면서 한낮의 무더위는 힘을 잃어가고 있었고, 뒤뜰에는 바람도 살랑살랑 불어 바비큐 파티를 하기에 아주 그만이었다. 고기를 불판에 얹어 이리 저리 뒤집어 구워 가면서 옛이야기로 웃음꽃을 피우던 중, 한 친구가 소리쳤다. “야! 멋지다.” 친구가 가리키는 곳으로 시선이 모아졌다

 

그곳에는 한낮을 뜨겁게 달구었던 태양이 온 세상을 주홍빛으로 물들이며 저물고 있었다. 재빨리 스마트폰을 꺼냈다. 친구들과도 공유하고 싶을 만큼 멋진 풍경이었기 때문이다.

 

SNS에 올리니 친구가 바로 답글을 달았다. 일출 사진이 참 보기 좋다고. 그래서 해 뜨는 광경이 아니고 해 질 때의 모습이라고 알려 주었다.

 

사실 일출과 일몰은 사진만으로는 구별하기 쉽지 않다. 2000년 하와이 방문 길에 그림을 한 점 샀다. 일출 모습인지 일몰 모습인지 구별하기 모호한 풍경화였다. 몇 년 동안 거실 벽에 걸려 있었지만 모호하기는 그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이다. 하긴 그림을 살 때도 화랑에 근무하는 사람이 등불의 밝기를 높이면서 ‘이렇게 보면 일출’이고 다시 불빛을 약하게 하면서 ‘이렇게 하면 해지는 광경’이라고 설명했으니 일출이라고 생각하고 보면 일출의 모습을 담은, 일몰이라고 생각하고 보면 일몰의 풍경을 담은 그림이었다. 결국 사진이나 그림만 놓고 본다면 일출과 일몰은 같은 자연현상을 일컫는 두 가지 이름인 셈이다.

 

어찌 보면 우리네 인생도 사진이나 그림 속의 일출 혹은 일몰과 같다. 인생이 선사하는 아름다움은 태어나 젊었을 때도, 저물어가는 노년기에도 다르지 않은 것이다. 다만 한 가지, 우리네 삶에 투영된 아름다움은 삶의 어느 시기이든지 스스로 만들어 내야만 한다. 그렇게 만들어진 아름다움은 비록 겉모습의 변화에도 가치의 차이는 있을 수 없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주변의 노인을 보고 이런 생각을 하는 경우가 있다. ‘저 연세에? 젊은 사람도 하기 힘든 일을’, 혹은 ‘돈도 안 되는데 남 위하는 일에는 왜 그렇게 앞장서는지’ 젊은 시절, 나도 아버지를 보며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아버지는 60대에 접어들면서 주로 다른 사람들을 위한 일에 많은 힘을 쓰셨다. 수지침과 쑥뜸을 익혀 노인들을 위한 봉사에 나섰다. 그러자 소문을 듣고 많은 분들이 아버지를 찾아 왔다. 때론 집이 비좁다고 느낄 정도로 모여들기도 했다. 하루 종일 일하고 지친 몸을 눕힐 기대를 하며 집에 왔을 때 많은 사람들이 북적거리고 있으면 짜증부터 났다. 몇 차례 그런 일이 있은 후 결국 아버지에게 불평을 늘어놓고야 말았다. 그러자 아버지는 아버지의 손길이 필요하다는 사람들의 집을 찾아가면서까지 그 일을 계속 하셨다. 그것도 당신 돈으로 수지침을 사고 쑥뜸에 사용할 재료들을 구입하면서까지. 그리고 한 달에 한 번은 노인들에게 나눠 주는 잉여농산물을 지급하는 일에도 앞장서서 봉사했다.

 

이제 와서 생각해 보면 아버지는 노년의 아름다움을 스스로 만들고 계셨던 것인데, 그 땐 알지 못했다. 아무런 욕심 없이, 그저 봉사하는 즐거움에 하신 일이 당신의 인생을 아름답게 하는 행위였음을 미처 깨닫지 못했다. 그러고 보면 인생의 아름다움이란 자신이 아무리 아름답다고 말해도 다른 사람의 공감 없이는 만들어지지 않는다. 물론 반대의 경우도 가능하다. 하찮은 인생이었다고 말한다 해도 그 이야기를 듣는 사람은 말 하는 사람의 인생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도 있다. 이는 젊었을 때도, 나이 먹어서도 동일하다. 삶의 아름다움은 삶의 주인이 스스로 만드는 것이며, 주위 사람들에 의해 발견된다.

 

말을 하다 보니 며칠 전에 세상을 떠난 김종필 씨가 자신의 묘비명이라며 썼다는 내용이 생각난다. 중간 중간에 들어가는 한문 구절들을 우리말로 풀어 보았다.

 

‘한 점 허물없는 생각을 인생의 도리로 삼고 한평생 어기지 않았으며 생활이 안정되지 않으면 바른 마음을 견지하기 어려움을 나라를 다스리는 근본으로 삼아 국리민복과 국태민안을 구현하기 위하여 몸 바쳐 힘썼거늘 나이 90에 이르러 되돌아보니 제대로 이룬 것 없음에 절로 한숨짓는다. 많은 물음에는 ‘웃고 대답하지 않던’ 자, 내조의 덕을 베풀어준 영원한 반려자와 함께 이곳에 누웠노라.’

 

그의 삶이 아름다웠는지, 혹은 그렇지 않은지에 대한 평가는 부질없어 보인다. 다만 그가 자신의 묘비에 적어달라고 쓴 ‘나이 90에 이르러 되돌아보니 제대로 이룬 것 없음에 절로 한숨짓는다’라는 것으로 미루어 보아 그도 자신의 삶에 그다지 만족하지 못하고 세상을 하직한 것은 아닐까?

 

찬란한 일몰을 보여 주며 하루는 저물어 갔고 다시 돌아 올 내일은 아직 밝지 않았다. 어둠 속에서 추워진 우리는 집 안으로 들어가 친구의 생일을 축하하며 케이크를 나눠 먹었다.

안창해. 타운뉴스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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