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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랏빛 봄, 아직 오지 않은 날들을 위하여
05/04/26  

캘리포니아의 5월은 보랏빛으로 물든다. 올해는 유독 날씨가 일찍 더워진 탓인지 4월 중순부터 짙은 보랏빛이 거리 곳곳에 번지기 시작했다. 오렌지카운티의 거리마다 흩날리는 자카란다 꽃잎은 일상에 지친 이들에게 뜻밖의 선물을 건네는 듯하다.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마치 캔버스 위에 물감을 덧칠하듯 몽환적으로 피어나는 이 보랏빛 꽃은 언제나 나의 시선을 한눈에 사로잡는다. 캘리포니아 사람들에게는 마치 '보라색 벚꽃'처럼 봄을 알리는 신호로 사랑받고 있다.

아, 물론 이 나무가 낭만만 있는 것은 아니다. 바닥에 떨어진 보라색 꽃잎들은 어찌나 끈질기게 아스팔트나 자동차에 달라붙는지, 동네를 걷다 보면 누군가의 골칫거리인지 금세 알 수 있다. 아름다운 것의 이면엔 늘 약간의 현실적인 대가가 따르는 법이라며 쓴웃음을 짓게 된다.

처음 이 나무를 봤을 때가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열네 살, 서울에서 날아와 캘리포니아의 낯선 공기를 처음 들이마셨던 그 시절이었다. 그 시절의 나는 늘 어딘가에 속하지 못한 채 서 있었고, 그 낯섦을 설명할 언어조차 갖고 있지 못했다. 모든 것이 낯설고 새로운 것 투성이었던 환경 속에서, 이 보랏빛 나무는 유독 이질적이면서도 강렬하게 다가왔다. 한국에서 보았던 벚꽃이 바람에 수줍게 흩어지는 연분홍빛이었다면, 자카란다는 완전히 달랐다. 더 짙고, 더 무겁고, 때로는 뻔뻔할 정도로 화려하게 아름다웠기 때문이다. 뜨거운 태양 아래 짙게 뿜어내는 그 보랏빛은, 낯선 언어와 문화 속에서 스스로를 증명해야 했던 어린 시절의 두려움과 설렘을 동시에 떠올리게 하는 색채이기도 했다.

자카란다라는 이름은 과라니어로 ‘향기롭다’는 뜻을 품고 있다고 한다. 남미에서 건너온 이 나무는 20세기 초 로스앤젤레스에 들여온 이래, 지금은 이 도시의 봄을 대표하는 풍경이 되었다. 원래 이곳의 나무가 아니었지만, 기후에 스며들고 시간에 길들여지며 어느새 가장 이곳다운 나무가 되었다. 어디선가 흘러와서 이 땅에 깊게 뿌리내리고, 매년 가장 눈부신 봄을 피워내는 그 모습은 낯선 땅에 정착해 살아가는 이민자의 시간과도 닮아 있다. 어쩌면 우리는 모두 그렇게 살아가는지도 모른다. 완전히 내 것인 땅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떠날 수도 없는 자리에서 조금씩 뿌리를 내리면서.

올해 자카란다를 바라보고 있으면, 이상하게도 그 짙은 보랏빛이 내 삶의 한 장면으로 훅하고 밀려들어 온다. 이전의 봄들과 달리 올해는 이 풍경 속에서 문득 낯설고 외로운 내 모습이 겹쳐 보였기 때문이다. 아이들을 위해 다시 미국으로 돌아왔고 남편은 서울에 남아, 우리는 기러기 부부가 되었다. 기러기라는 단어는 참으로 가볍게 들린다. 하지만 따로 먹는 저녁, 시차를 계산해서 거는 전화, 이런저런 현실적인 문제와 고민으로 새벽을 버티는 그 무거운 시간들을 '기러기'라는 두 글자가 다 담아낼 수 있을 리 없다. 미국 땅에서 아이들의 활동을 챙기고, 학교 행사를 돕고, 마케터로서의 커리어를 다시 이어가며 하루하루를 빈틈없이 채워나가는 삶. 그 치열한 일상 속에서도 문득문득 찾아오는 적막감은 결국 내가 온전히 감당해야 할 삶의 무게일 것이다.

파스칼 브뤼크네르는 그의 저서 《아직 오지 않은 날들을 위하여》의 첫 챕터에서 단호하게 말한다. "포기를 포기하라." 그는 나이 듦에 대한 두려움, 상실에 대한 좌절, 낯선 환경 앞의 위축을 향해 더 이상 뒤로 물러서지 말라고 조언한다. 나이라는 숫자도, 이미 잃어버린 것들도 포기의 이유가 될 수 없다고. 당장 죽을 것처럼 치열하게, 그러나 영원히 살 것처럼 여유를 가지고 살아가라고 말한다. 그 문장은 나에게 잊고 지냈던 삶의 감각을 깨우는 신선한 바람이었다. 포기하지 않는다는 건 거창한 결심이 아니라, 그저 오늘 하루를 다시 살아내겠다는 조용한 선언과도 같다는 것을 깨달으면서 말이다.

자카란다의 꽃말은 ‘화려한 변신’과 ‘지혜’로 알려져 있다. 낯선 땅에서도 자기만의 색을 피워내는 나무에게 어쩌면 가장 잘 어울리는 말이다. 매년 봄이 오면 이 나무는 다시 짙은 보랏빛을 쏟아낸다. 화려한 변신 뒤에는 일상의 무게도 따르지만, 우리는 그 대가를 감내하며 나만의 깊이를 만들어간다.

자카란다 꽃은 결국 다 떨어진다. 바닥에 쌓였다가 치워지고, 나무는 다시 푸르른 잎을 틔우며 평소의 모습으로 돌아간다. 매년 같은 계절이 반복되지만, 그 과정을 지켜보는 내 마음은 늘 조금씩 다르다. 올해의 봄을 나는 이렇게 지나가고 있다. 보라색 꽃 아래에서 잠시 멈춰 서 있다가, 다시 조용히 걸음을 옮기는 방식으로. 자카란다는 매년 삭막한 가지 위로 화사한 행복과 사랑하는 기억, 그리고 지혜와 새로운 시작을 한꺼번에 피워낸다. 그 보랏빛 꽃잎이 바람에 흩날리는 모습을 바라보며, 나는 이 나무가 묵묵히 전하는 위로를 읽는다.

완벽한 삶이 아니어도 괜찮다. 삶이 고되고 외로움이 밀려와도, 삶은 여전히 다음 계절을 준비하고 있다. 나는 지나온 날들을 품고 아직 오지 않은 날들을 향해 조용히 걸어간다. 자카란다의 보랏빛이 도시에 스며들 듯, 이 낯선 땅 위에서 나만의 지혜로 나다운 삶을 피워내 본다. 계절이 오면 받아들이고, 지나가면 보내주는 연습을 하면서. 내 삶의 모든 계절과 무게를 온전히 마주할 것이다. 흔들림 없이, 나만의 보랏빛을 이 땅에 깊고 단단하게 뿌리내리며 걷기로 한다. 아직 내게 오지 않은 날들이 더 많이 남아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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