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시 세끼
07/02/18  

작년 한국에서는 “삼시 세끼”라는 TV 프로그램이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았다. 이 프로그램은 고즈넉한 농촌이나 어촌에서 연예인 서너 명이 하루 세끼를 차려 먹는 이야기인데 식사를 준비하고 맛있게 먹고 치우는 과정 속에서 출연진들의 진솔한 매력이 발견되어 잔잔한 재미와 감동을 안겨주었다.  하루 종일 이들은 출근도 하지 않고 다른 일정도 없이 마치 시골로 휴가온 사람들처럼 삼시 세끼 해 먹는 데만 열중한다. 출연진들이 연예인들이기는 하나 그저 밥 해 먹는 이야기가 볼거리가 될 수 있을 거라는 것을 예전에는 미처 생각해 보지 못했다.

 

그런데 내가 주부가 되어 보니 정말 삼시 세끼 해 먹는 일은 보통 일이 아니다. 자, 밥 한 끼 준비한다고 생각해 보자. 무엇을 해야 할까?  일단, 식사 준비에서 가장 오랜 시간이 걸리고 피곤한 부분은 뭐 해 먹을까 고민하고 연구하는 단계에 있다. 이게 딱 한 번 하는 거라면 이렇게까지 고민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삼시 세끼 매일이기 때문에 이리도 힘든 것이다. 최근에 먹은 메뉴와 겹쳐서도 안 되고 가능하면 냉장고에 있는 식재료들을 최대한 이용하는 게 좋고 아이들을 생각해서 너무 맵거나 자극적이어서도 안 되고 그러면서도 맛이 괜찮아서 아이들이 잘 먹어야 하고…… 등등을 고려해서 메뉴를 결정하는 과정이 왠만한 회사원 프로젝트 준비 저리 가라 할 정도이다. 그러다보니 요리를 하고 있지 않아도 하루 종일 기본적으로 ‘오늘 뭐 해 먹지?’라는 생각이 한시도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메뉴가 정해지면 식자재를 준비하는데 아침에 간단히 시리얼을 먹으려고 하면 우유가 없고, 저녁에 된장찌개를 끓이기로 마음 먹으면 꼭 두부가 없는 상황은 어찌나 비일비재한지 그렇다고 이것저것 잔뜩 사서 냉장고에 쟁여 놓으면 또 며칠 지나 금방 상하거나 변질되니 경험 많은 주부 9단일지라도 이런 상황을 피해가기란 어려울 것이다.

 

겨우겨우 심사숙고 끝에 메뉴가 결정되고 식재료가 준비되면 요리가 시작된다. 요리를 상상하면 도마에서 칼이 박자에 맞춰 춤을 추고 능숙하게 프라이팬을 뒤집고 화려하게 양념을 뿌리는 모습을 상상할 수 있으나 사실 현실은 그렇지 않다. 굉장히 귀찮고 지루한 과정들이 앞서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하다못해 세상에서 가장 만들기 쉬운 요리로 손꼽는 카레만 해도 그렇다. 물에 야채 대충 때려넣고 카레 넣고 몇번 휘휘 저으면 끝나는줄 알지만 그건 누가 카레에 넣을 야채 손질을 다 끝내 주었을 때나 통하는 이야기이다. 카레 재료가 있는 것을 확인하고 메뉴를 카레로 정했지만 막상 감자를 꺼내 보니 벌써 싹이 나기 시작했네.  ‘감자 산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벌써?’ 긴 한숨과 함께 그나마 상태 좋은 감자들을 골라 내니 아이들은 배고프다며 성화고 감자 껍질은 왜 이리 안 벗겨지는지, 당근은 또 왜 이리 단단해서 잘 안 썰어지는지 시간이 촉박해지면 다 집어던지고 “오늘은 외식!” 이라고 소리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그래도 준비한 음식을 식구들이 맛있게 많이 먹어주면 그나마 다행이다.  말없이 후다닥 먹고는 혼자 냉큼 자리에서 일어나는 남편을 보내고 식탁에 앉아 한가득 입에 물고 씹지도 않고 삼키지도 않는 녀석, 옆에 앉은 동생과 말 같지도 않은 소리하며 싸우는 녀석, 먹는 건지 흘리는 건지 모르게 숟가락질을 하고있는 녀석들에게 잔소리 해가며 한 숟가락이라도 더 먹여보겠다고 실랑이를 벌이고 나면 입맛이 뚝 떨어지고 모든 에너지가 소진되어 마치 파워버튼이 꺼진 기계처럼 그자리에서 멈춰버리고 싶어진다. 하지만 치우는 것 역시 나의 몫이다. 그리고 가장 재미없는 단계이다.

 

매일매일 삼시 세끼를 걱정해 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아침에 눈 뜨면 끼니 걱정, 돌아서서 바로 끼니 걱정, 해질 무렵이면 또 끼니 걱정. 쉴새 없이 뭐 해 먹을까 연구하고 장보고 준비하고 요리하고 차리고 먹고 치우고를 반복하는 매일매일이란 참으로 대단하며 고단한 여정이라는 것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사노동은 참으로 낮게 평가되어 맞벌이를 하지않는 전업주부에게 “무슨 일을 하세요?”라고 물으면 대부분 조금 자신없는 눈빛으로 “그냥 집에 있어요.” 혹은 “집에서 놀아요”라고 대답하는 경우가 많다.

 

밥 하는 일이 참 그렇다. 가장 중요한 일이고 매우 가치있는 일이지만 너무나 당연하고 매일 있는 일이다 보니 표가 나지 않고 인정받기도 어렵다.  이번 저녁 식사가 유난히 맛있었다고 보너스가 나오는 것도 아니고 주부 연차가 올라갔다고 승진을 하거나 연봉이 올라가지도 않는다. 엄마가 밥 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로 알고 있어서 밥 안 하는 엄마는 욕을 먹어도 밥하는 엄마는 따로 알아주지 않는다. 아무리 주부 스스로가 자존감을 갖고 ‘나는 가족을 위해 가장 가치 있는 일을 하고 있다’라고 자신의 자리를 존귀하게 여겨도 주위에서 그렇게 인정을 하지 않으니 수시로 무기력함과 쓸쓸함이 찾아온다. 여기까지 쓰고나니 곧 닥쳐올 여름 방학에 삼시 세끼를 어떻게 해결해야 하나 걱정이 몰려오기 시작한다. 죽을 때까지 끝나지 않을 삼시 세끼에 대한 고민 때문에 오늘도 나는 고민이 많다. 아이고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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