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학교 급식 잔혹사
06/01/26  

“그게 도대체 무슨 냄새야? 겉에 시커먼 건 또 뭐야?”
1990년대, 미국에서 중고등학교를 다니던 시절의 점심시간. 큰맘 먹고 엄마가 싸준 김밥 도시락을 열었다가 주변 아이들의 호기심 어린, 그러나 한편으론 거부감 섞인 시선을 한 몸에 받았다. 당시만 해도 외국인 친구들에게 참기름 냄새와 김의 바다 향은 낯설고 이상한 자극일 뿐이었다. 얼굴이 화끈거려 도시락 뚜껑을 황급히 닫았다. 그날 이후로 나는 학교에 한국 음식을 싸가는 걸 스스로 금지했다.

그 시절 미국 학교 급식실은 거대한 냉동식품 가공 공장 같았다. 대량 생산되어 냉동된 채 넘어온 눅눅한 피자와 햄버거가 오븐에서 대충 데워진 채 배식되었다. 가격은 단돈 1달러 60센트. 냉장고에서 갓 꺼내 딱딱하고 퍽퍽했던 베이글과 크림치즈는 1달러, 따뜻한 물만 부어주는 미국식 컵라면(Cup Noodles)도 1달러였다. 고정적인 용돈이 없던 사춘기 시절, 내게 점심시간은 배를 채우는 시간이라기보다 '자금 조달의 시간'에 가까웠다. 1달러 60센트짜리 런치 대신 매일 60센트씩을 모으거나, 아예 점심을 통째로 건너뛰었다. 그렇게 몇 주를 참고 모은 돈으로 레코드숍에 달려가 좋아하는 가수의 CD 한 장을 손에 쥐었을 때의 쾌감은 배고픔보다 컸으니까.

그래도 매일 굶을 수는 없어 가끔 사 먹던 최고의 별미는 나쵸였다. 1회용 작은 플레이트 위에 나쵸 칩을 산처럼 꾹꾹 눌러 담고 치즈 소스와 몇 가지 토핑을 최대한 많이 얹어내는 것이 관건이었다. 그 나쵸 접시 하나를 보물처럼 들고 매일 점심 먹는 장소로 가면 서너 명의 친구들이 달려들어 나눠 먹었다. 눅눅한 감자튀김, 치즈 범벅의 나쵸, 맛없는 사과와 우유. 그것이 90년대 미국 공립학교가 내놓은 성장기 청소년의 점심이었고 지금 생각하면 영양식이라기보다 허기를 잠시 속이는 음식에 가까웠다.

세월이 흘러 내가 세 아이의 엄마가 되었고, 내 아이들도 캘리포니아의 공립학교에 다닌다. 놀랍게도 캘리포니아주는 전면 무상 급식을 도입했다. 예산이 대거 투입되어 모든 학생에게 공짜 점심을 준다는데, 학교에서 돌아온 아이들의 입에서는 여전히 30년 전 내가 했던 말과 똑같은 탄식이 터져 나온다. "엄마, 학교 런치 진짜 너무 맛없어. 차라리 도시락 싸줘."

결국 아침마다 전쟁이 시작된다. 내 출근 준비만으로도 머리가 터질 것 같은 이른 아침, 나는 다시 아이들의 도시락 통을 열고 음식을 채워 넣는다. 무상 급식이라는 제도가 무색하게도, 아침마다 엄마의 노동력이 통째로 갈려 나가는 셈이다. 우리 동네에는 한인이 많은 편인데 일부 한인 엄마들의 풍경은 더 극적이다. 점심시간 벨이 울릴 때쯤이면 학교 정문 앞으로 보온 도시락에 따뜻한 밥과 국을 담아 직접 들고 배달을 오는 엄마들도 있는 것이다.

더 진풍경은 요즘 아이들이 찾아낸 돌파구다. 점심시간이 되면 학교 사무실 한편에 마련된 배달 보관용 캐비닛 앞으로 아이들이 몰려든다. 아이가 원하는 브랜드의 버거나 치킨을 엄마들이 집이나 직장에서 배달 앱으로 주문해 학교 캐비닛으로 쏴주기 때문이다. 물론 아이들도 직접 주문할 수 있지만, 대개는 점심시간에 맞춰 엄마들이 원격으로 주문을 넣어주는 경우가 많다. 캐비닛에서 익숙한 유명 프랜차이즈의 로고가 박힌 맥도널드나 치킨 봉지를 찾아들고 나오는 아이들의 표정은 그저 신나고 활기차다. 맛없는 급식을 먹느니, 엄마의 원격 지원 아래 자기가 좋아하는 음식을 먹는 쪽을 택한 것이다. 내가 나쵸 한 접시에 목숨 걸던 90년대와는 사뭇 달라진, 디지털 시대의 새로운 풍경이다.

미국 학교 급식이 오랫동안 냉동·가공식품 중심으로 운영되어 온 데에는 구조적인 이유가 있다. 한국은 공립학교마다 정식 면허를 가진 영양사가 상주하며 직영으로 식단을 짜고, 조리원들이 매일 아침 신선한 식자재로 국을 끓이고 반찬을 만든다. 영양 균형과 맛, 위생을 학교와 교육청이 전적으로 책임지는 구조다.

반면 미국 학교 급식은 오랫동안 대형 식품 위탁 업체(Aramark, Sysco 등) 중심의 대량 조달 시스템으로 운영되어 왔다. 넓은 지역의 수많은 학교에 식사를 공급해야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냉동 및 가공식품 의존도가 높아졌고, 조리 역시 현장 요리보다 ‘데워 제공하는 방식’에 가까워진 경우가 많았다. 이 거대 기업들의 목적은 '아이들의 건강'이 아니라 '이윤 극대화'다. 단가를 낮추기 위해 가공식품과 냉동식품의 비율을 극단적으로 높였고, 조리실은 신선한 요리를 하는 공간이 아니라 냉동 팩을 뜯어 데우기만 하는 공장으로 전락했다.

미국으로 다시 돌아와 살면서 만족스럽고 좋은 점이 참 많다. 캘리포니아의 눈부신 햇살, 드넓은 자연, 그리고 아이들이 마음껏 즐길 수 있는 교육 환경까지. 하지만 점심시간이 될 때마다 한국이 사무치게 그리워지는 건 어쩔 수 없다.

매일 아침 출근길에 도시락을 싸며 전쟁을 치를 때마다, 혹은 학교 캐비닛에 배달된 맥도널드 봉지를 반갑게 찾아드는 아이들을 볼 때마다 나는 한국 학교의 그 영양 가득했던 식판을 떠올린다. 제철 나물과 따뜻한 국, 매일 바뀌는 정성스러운 반찬들이 채워지던 한국 학교 급식은 공공 교육이 아이들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돌봄이었다. 캘리포니아의 밤이 깊어가는 지금, 나는 내일 아침 또다시 채워야 할 아이들의 도시락 메뉴를 고민하며 잠자리에 눕는다.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이 거대한 풍요의 땅에서, 공짜라는 이름의 런치 잔혹사는 오늘도 조용히 계속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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