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의 6월은 주변이 온통 졸업식 소식으로 들썩인다. 이맘때 캘리포니아의 학부모들에게 졸업식에 대한 기억을 물으면 열에 아홉은 뭉클한 감동과 함께 ‘지독한 더위’를 먼저 떠올릴지도 모른다. 나 역시 그랬다. 90년대 내가 치렀던 졸업식도, 친구와 동생의 졸업식도 늘 푸른 잔디가 깔린 거대한 풋볼 경기장에서 열렸다. 자기 학교 경기장이 좁으면 이웃 학교의 대형 경기장을 빌려서라도 온 동네 사람들을 불러 모으는 게 미국 식 졸업의 전통이다.
사방이 탁 트인 경기장 스탠드에 앉아 있으면 캘리포니아의 사정없는 땡볕이 온몸을 내리쬔다. 차양 하나 없는 금속 관중석, 그 위로 수직으로 쏟아지는 장엄한 햇살. 졸업 가운을 입은 아이들이 하나둘 그라운드를 메우기 시작하면 비로소 졸업식이 시작된다. 검정 천은 열을 빨아들이고, 사각모 아래 얼굴들은 금세 붉어진다. 축하하러 온 가족들이 저마다 팸플릿을 부채 삼아 연신 땀을 닦아내는 풍경, 선글라스 너머로 아이를 찾아 헤매는 눈, 그리고 이름이 불릴 때마다 터져 나오는 박수 소리. 한참 추울 때 온 가족이 두꺼운 외투를 껴입고 치르는 한국의 졸업식과 달리, 햇살 뜨거운 한여름의 초입에 마주하는 미국 졸업식은 그 자체로 하나의 계절처럼 기억된다.
올해도 어김없이 그 뜨거운 계절이 찾아왔고, 나는 며칠 전 어느 고등학교의 풋볼 경기장 스탠드에 앉아 있었다. 내 아이의 졸업식이 아니었다. 먼저 하늘나라로 간 내 아들 준이와 참 각별했던 친구의 졸업식이었다. 엄마들이 친구였기 때문에 태어나면서부터 자연스레 친구가 되었던 두 아이는 다툼 없이 참 잘 어울렸다. 자주 만나지 못하고 가끔씩 만나도 넓은 집에서도 꼭 붙어 앉아있거나 몸에 일부가 슬며시 닿아있는 모습을 쉽게 포착할 수 있었다. 그 아이의 졸업 소식을 들었을 때 내 마음속엔 묘한 일렁임이 일었다. "내가 꼭 가서 축하해주고 싶어." 아이 엄마인 내 친구에게 내 마음을 전하고 참석한 그곳은, 여전히 30년 전과 다름없이 눈이 시리도록 푸른 하늘과 숨이 턱 막히는 열기로 가득 차 있었다.
수백 명의 졸업생이 행진곡에 맞춰 경기장 안으로 걸어 들어오는 순간, 무어라 한마디로 정의할 수 없는 복잡 미묘한 감정이 불쑥 고개를 들었다. 슬픔도 아니고, 그렇다고 단순한 기쁨도 아닌, 몇 마디 섣부른 말로는 도저히 담아낼 수 없는 거대하고 먹먹한 감정의 덩어리였다. 만약 준이가 이곳에 있었다면 저 대열 속 어디쯤 서서 땀을 닦고 있었을까 하는 아스라한 생각이 스치기도 했다.
하지만 이내 내 시선은 준이의 친구에게로 향했다. 땡볕 아래서 당당하게 학사모를 쓰고 서 있는 아이의 뒷모습을 보는데, 기특함과 대견함, 그리고 가슴을 꽉 채우는 뭉클함이 번져왔다. 그 아이가 겪어냈을 시간과 방황을 알기에, 나는 속으로 그 아이의 이름을 부르며 세상에서 가장 깊은 축복을 건넸다. 참 잘 자라주었다고, 네가 걸어갈 앞날에 찬란한 축복만 가득하기를 바란다고. 소란스러운 환호성 속에서 나지막이 보낸 내 마음의 기도가 아이의 가슴에 포근하게 내려앉기를 바랐다.
졸업식은 언제나 두 가지가 동시에 일어나는 자리다. 끝과 시작. 이별과 출발. 지나간 것에 대한 박수이면서, 아직 오지 않은 것에 대한 응원. 그 경계가 이렇게 뚜렷하게 물리적으로 존재하는 의식이 또 있을까. 아이들은 저쪽에서 이쪽으로 걸어온다. 그 걸음 하나를 온 가족이, 온 학교가 지켜본다. 뜨거운 6월 햇살 아래, 땀을 흘리면서, 그래도 자리를 지키면서.
나는 그 자리를 지키는 사람들을 좋아한다. 더위와 불편을 무릅쓰고, 금속 관중석에 앉아, 땀을 닦으며 이름이 불리는 순간 제일 크게 소리 지르고, 사진을 찍으려고 팔을 뻗는 사람들. 졸업식이란 결국 그 사람들의 자리이기도 하다. 아이의 졸업이지만 그 아이를 여기까지 데려온 모든 사람들의 졸업이기도 하다.
그 찬란하고 뜨거웠던 의식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마음은 이상하리만치 풍요롭고 행복했다. 꼭 함께 해주고 싶었던 그 자리에 서서 아이의 시작을 눈에 담았다는 사실만으로도, 내 안의 무언가가 따스하게 채워지는 기분이었다. 누군가의 성장을 온전하게 축복해 줄 수 있는 마음의 공간이 내게 남아있다는 사실에 감사했다.
이제 내 삶의 타임라인에는 몇 번의 졸업식이 더 남아있다. 품 안의 새끼 같던 내 아이가 저마다의 속도로 자라나, 언젠가는 저 풋볼 경기장의 땡볕 아래 서서 학사모를 하늘 높이 던져 올릴 날이 올 것이다. 그때 내 마음은 또 얼마나 많은 설렘과 기대, 그리고 형언할 수 없는 사유들로 채워지게 될까. 아이들이 마주할 세상이 언제나 평탄할 수는 없겠지만, 저 불볕더위를 견뎌내고 마침내 푸른 잔디 위를 걸어 나오는 졸업생들처럼 단단하게 자라나 주기를 기도한다.
내일 아침이면 나는 또다시 세 아이의 서툰 일상을 챙기며 바쁜 일상의 걸음을 재촉할 것이다. 하지만 6월의 풋볼 경기장에서 마주했던 그 가늠하기 어려웠던 감정의 파동은 내 마음 한구석에 오래도록 마음에 남았다. 아이들의 서툰 오늘을 차분히 기다려 주고, 다가올 그들의 찬란한 순간을 온 마음으로 축하해 줄 준비를 하면서, 캘리포니아의 6월 하늘을 가만히 올려다본다. 여전히 뜨겁지만, 참으로 아름다운 계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