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야 1.5세 아줌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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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나나를 떠올리는 연말
04/23/18  

 세상에서 바나나가 제일 맛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내가 초등학교때까지 바나나는 꽤나값비싼 과일이었습니다엄마가 유독 과일을 좋아하셔서 철마다 과일을 냉장고에 넉넉히 넣어놓고 매일 저녁 식사  과일을 종류별로 먹었지만 바나나만큼은 그렇지 못했지요.  보통 아프거나 특별할   개씩  주곤 하셨는데 (그나마 엄마는 "어머니는 짜장면이 싫다고 하셨어"노래 가사처럼 바나나를 드시지 않았죠.) 정말 이리 맛있을  있는 걸까요입에서 살살 녹다가 부드럽게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달콤함이 정말 이루 말할  없었지요.  한꺼번에  개씩 먹을  없는 과일이었던만큼 입에서 살살 녹여 먹었고 학교에 간식으로  갖고 가면 친구들과 한입씩 베어물고 좋아하던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과일이었습니다.

 

바나나가 시들해지기 시작한 것은 내가 중학교에 들어간 이후바나나가 엄청 저렴해지면서부터입니다학교  손수레에서 500원에 팔기도하며  흔하고 저렴한 과일이 되어버린 거죠그때부턴 우리집 식탁 위에 거무티티하게 변해버린 바나나가 돌아다니는 일이  생겨나기 시작했고  이상 바나나는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과일이 아니었답니다.  

 

바쁜 연말에 접어들며 바나나를 먹는 대신 표현으로 즐겨 사용하고 있습니다몸과 마음이 바쁘고 분주해서 하루 하루가 어떻게 가는지 모르는 정신 없는 상태를  속된말로 “go bananas”라고 말하기도 하는데 “go crazy”, “go nuts” 비슷한 의미입니다우리 식으로 말하자면 미쳤다”, ”정신나갔다 표현의 속어로 “Sorry, I just went bananas for a minute” 이런식으로 사용되곤합니다정확한 어원은 모르지만 바나나를 보고 흥분한 원숭이의 모습에서 비롯된 것이라 추측됩니다.

 

일년  가장 정신 없는 시기가 바로 연말연시입니다.  새해가 밝아올 것이라는 것을 알면서도올해가 가기 전에 해야  일들이 어찌나 많은지 빼곡히 적어 놓은 리스트가 쉽게 줄어들지 않습니다.  소속된 단체가 많은 것도 아닌데  주말마다 선약이 잡혀 있고 올해까지 마무리하기로 다짐했던 일들을 차마 끝내지 못한  마음에 걸려서 괜히 머릿속이 뒤숭숭합니다미리 준비했던 크리스마스 카드는 막판에 시간이 촉박해서 내용도 없이 이름만 표기한  보내지고막바지 크리스마스 쇼핑에 박차를 가합니다.  이렇게 정신 없는 것은 어른들뿐만은 아닌 모양입니다우리집 아이들도 하나같이 모두 굉장히 흥분된 상태로 매사에 퍽이나 들떠 있는 모습입니다성탄을 전후로 최고점이   초절정 흥분된 분위기에 스멀스멀 불안감이 엄습합니다.  자신 없는 시험 답안지를 제출하는 학생처럼 뭔가 기분이 시원치 않고 답답합니다바쁜스케줄을 소화하느라 식구들은 모두 감기에 걸려버렸고 연이은 식사 모임에 몸무게는 눈에 띄게 늘어났습니다.  바나나를  앞에  원숭이처럼 이리 뛰고 저리 뛰는 사이에 정작 돌봐야할중요한 것들에 소홀했던게 아닌가 싶습니다.  

 

Go bananas 되는 연말불현듯 어릴  이맘때가 되면 즐겨 듣던 고요한 밤의 가사를 읊조려봅니다.

 

고요한  거룩한  어둠에 묻힌 

주의 부모 앉아서 감사 기도 드릴 

아기 잘도 잔다 아기 잘도 잔다

 

감사 기도를 드리는 거룩한 아기는 잘도 자는 고요한 밤이야말로 가장 행복하고 따뜻한 연말의 풍경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2016  해가 지고 있습니다 해를 마무리하고 새해를맞이하는 마음가짐이야 저마다 다르겠지만 모두에게  시간은 더없이 특별하고 소중할 것입니다.  부디 건강 유의하시고 마음이 따뜻하고 풍요로운 연말연시 보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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